작년 이맘때 당신은 뭘 하고 있었나?
'어떤' 표정
드라마 스터디 멤버들과 매일 30분씩 한 달여간 <글쓰기 좋은 질문 642>를 교본 삼아 초단편을 썼다. 작가지망생 셋의 글을 모아 넥서스에 투고했는데 광탈. 묵히면 똥 되니까 꺼낸다. (번호는 임의 선정, 퇴고는 안 했음)
165. 작년 이맘때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었나?
정확히는 1년하고도 8일 전, 여느 집에 다 있다는 젠가를 처음으로 장만했다네.
누구나 다 아는 젠가의 쓰임새를 생각하며 난 소녀와 함께 낱장 빼기와 도미노 놀이를 할 마음의 준비를 했지.
자고로 이 낱장 빼기란 말이지, 균형감을 유지하는 게 가장 중요하며...
자고로 도미노란 말이지, 일렬로 쭉 늘어놓는 것보다 동그라미나 하트 등 모양을 만들면서 늘어놓는 것이 가장 재미있으며...
뭐 이런 시답잖은 일장연설을 늘어놓을 생각이었는데, 소녀가 젠가를 바닥에 후두둑 쏟아붓더니 대뜸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닌가.
엄마, 나한테 벽돌 쌓아줘.
침대에 가지런히 누운 채 제 몸에 벽돌이 올려지길 조용히 기다리고 있는 그 품새란.
소녀의 표정은 아주 강렬하고도 선명한 감정 하나를 담고 있었네.
행복.
그래, 그건 행복이었네.
하필이면 그때가 곧 잘 시간이었다지.
난 손으로 벽돌을 한 움큼 끌어다가 소녀의 장단지에 쌓고, 또 한 움큼 끌어다가 소녀의 몸 위에 쌓고, 마지막 한 움큼을 소녀의 얼굴 주변에 흩뿌려 놓았다네.
행여 얼굴에서 벽돌이 떨어질세라 소녀의 얼굴은 그 어떤 미동도 하지 않았지. 숨조차 조심스레 내쉬는 게 보일 정도였다네.
다만 입꼬리가 들썩들썩 움직이는 모양만이 소녀가 얼마나 웃음을 참고 있는지를 보여줬지.
난 확신하네.
소녀는 그날 밤 젠가 나라에서 아주 행복한 꿈을 꿨을 걸세.
걸리버 여행기의 걸리버가 됐을 수도 있고, 잠자는 숲속의 공주에 나오는 오로라 공주가 됐을 수도 있겠지.
중요한 건, 그날만큼은 소녀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날이었다는 게야.
내, 자네에게 묻지.
자네는 그런 표정을 지은 적이 있나?
그렇다면, 지금인가? 아니면 과거인가?
난 알고 있네.
자넨 글을 쓸 때 그런 표정을 짓더구만.
집에서, 회사에서 사람들에게 치이다가도 노트북 앞에만 앉으면 어느새 소녀와 똑같은 표정을 짓고 있더군.
축하하네.
자네는 꽤 행복한 사람이군.
작년 이맘때 자네가 남긴 일기장을 내 몰래 훔쳐보았네. 자네가 '역사적인 첫 대본 완성일'이라 명명한 날일세.
그 글은 다음 문장으로 끝을 맺지.
나는 알고 있다.
난, 될 거라는 걸.
지.호.락.
아는 건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건 즐기는 것만 못하다.
드라마 대본은 작가의 사상이자 '나 자신'이기에, 글쓰기를 즐기는 난 될 수밖에 없어.
난 작가가 될 운명이야.
1년하고도 8일이 지난 지금 자넨 여전히 글을 쓰며 웃고 있으니 그거야말로 행복이 아니고 뭔가.
자네, 앞으로도 쭉 행복한 표정을 간직하게나.
* 추신:
1년 전 그 글엔 추신이 있더군.
"나 오늘 췠다ㅋㅋㅋㅋㅋㅋ"
ㅋ이 여섯 개인 걸 보니 자네 정말 그때 췠구먼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