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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뚜루 Dec 13. 2022

"그런 아이는 좀 그런데요"

다시 말해 줄래요?

읽는 내내 구체적인 장면들이 떠올라 마음으로 꺽꺽 울어대는 통에 힘들었던, 그러나 마음에 깊이 스며들었던 책, 황승택 선배의 <다시 말해 줄래요?>


S# 1. 선배가 청력을 잃었을 때 병실에 앉아 <내가 듣고 싶은 소리 목록>을 꾹꾹 적고 있는 장면

S# 2. 병원 복도에서 한 팔을 쭉 뻗어 고요히 우주를 유영하는 장면

S# 3. KTX에서 큰소리로 떠들어(?) 기어코 앞좌석 꼬마를 깨우고 마는 장면

S# 4. 혜린이가 행여 아빠가 볼까 싶어서 "우리 아빠 귀 다시 잘 들리게 해주세요"라는 소원을 빠르게 슥슥 적어내는 장면

S# 5. 백혈병 초진을 받고 나와 화장실에서 무너져내리는 선배의 모습

S# 6. 간단한 시술이라는 말에 반차만 내고 갔다가, 도무지 간단하지만은 않았던 시술이 끝난 후 수술 방 시계를 보자마자 눈물이 솟은 선배의 모습


나는 선배가 꾹꾹 눌러 쓴 활자들을 통해 내가 몰랐던 세계를 알게 되었다. 그런데 사실 그 세계는 내가 이미 알고 있는 세계와 상당히 겹치는 곳이기도 했다.


선천성 심장병인 팔로4징증(TOF). 임신 20주차 때 태아에게 TOF라는 진단명이 붙었을 때 나는 무너져내렸다. 하지만 곧장 다짐했다. "아가야, 엄마 오늘 하루만 울고 앞으로는 절대 울지 않을게."


그 다짐은 출산 직후 분노가 되었다.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신생아 중환자실로 옮겨졌던 때였다. 수술 없이 퇴원해도 좋다는 주치의 의견에 따라 당장 입소 가능한 산후조리원을 알아보았는데 한 조리원 상담원이 곤란하다는 어투로 말했다. "네? 그런 아이는 좀 그런데요."


심장 기형을 가진 아기의 엄마로서, 처음 겪어본 차별이었다. 그래서인가. 어느 순간부터 '결정 장애'니 '암 유발'이니 하는 단어들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실재하는 고통이 다른 누군가의 농담으로 소비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개인의 서사에서 시작해 국내 37만 7000명 농인의 이야기로 뻗어나가는, 이 글의 구성 방식이 좋다. 나는 이 글을 통해서 농인의 세계와 관점을 어렴풋하게나마 배운다. 그리고 선배가 '장애가 없는 사람들만 주로 선택받아서 일하는 한국의 직장 사회에서 내 역할은 무엇일까' 고민하는 대목에서 나 역시 내 역할은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앞으로 내가 써나갈 이야기들의 크기와 깊이와 밀도에 관하여 생각해본다.


덧,

아이는 생후 88일째 되던 날 개흉 수술을 받았고, 만 3세 때 두 번째 개흉 수술을 했다. 지금은 꾸준히 정기 검진을 받으며 (담당 교수님이 체중 관리를 권하실 정도로;) 건강하고 활달한 아이로 자라고 있다:)


#황승택 #다시말해줄래요? #내돈내산 #자발적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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