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저녁, 다섯 식구가 산책을 나섰다. 어른 걸음으로 10분이면 주파할 거리를, 8살 3살 아이들과 속도를 맞추며 걸으니 가는 둥 마는 둥 제자리 걸음이었다.
나 지금 걷는 거 맞지?ㅋㅋㅋ (T^T)
그러다 교차로를 지나는데 갑자기 3살 아이들이 펄쩍 뛰며 흥분하기 시작했다. "요이요이호! 엄마,요이요이호!!"
고개를 돌려보니 경찰차였다. 엄밀히 따지면 순찰차. 핑크퐁 경찰차 동요에서 '요이요이호'라는 노랫말이 나와서 아이들에겐 경찰차가 요이요이호였다. 빨간불 파란불이 번쩍이는 경광등을 바라보며 눈을 떼지 못하는 아이들. (망부석인 줄?) "응, 그래.요이요이호네.." 영혼 없는 리액션을 해주고는 소몰이를 하듯 아이들을 안길로 몰고 있는데.
"거기 잠깐 서 계세요."
순찰차에 타고 있던 경관님이확성기로 우리를 향해외치는 게 아닌가! 저, 저희요?! 다섯 식구는 꼼짝 않고 기다렸고 순찰차는 유턴 신호를 받아 우리 가족 앞에 멈춰섰다. 운전하던 남자 경관님과 조수석에 타고 있던 여자 경관님이 동시에 내렸다. 차문을 활짝 열어두고서.
"타세요. 사진 찍어드릴게."
목이 터져라 요이요이호를 외치던 3살 둥이는 경찰사람 실물 영접에 얼음이 되어 버리고ㅋㅋㅋ(정지화면인 줄?) 난 그 경관님의 '오지랖'에 마음이포근해져 슬라임처럼 바닥에 녹아내리고 있었다. 저마다의 이유로 땅바닥에 붙어 있는 우리 가족을 소떼 몰듯 순찰차 곁으로 몰아낸 건 50대 중년으로 보이는 남 경관님이었다.
"카메라 주세요. (얼결에 폰 내드림) 저짝으로! 저짝으로! (엉겁결에 포즈 잡는 중) 그렇지, 그렇지! 자, 찍습니다! 하나 둘 셋!"
찰칵, 찰칵. (심지어 동영상도 찍어주심ㅋㅋㅋ) 촬영을 마친 경관님은 나에게 폰을 돌려주시고는 쿨하게 차에 올라타셨다. 고마운 마음에 연신 고개를 조아리고 있는데 우리의 경관님, 마지막 선물로사이렌 한번 울렸다 끄는 센스(?)까지 시전하시는데ㅋㅋㅋ 그렇게 3살 둥이의 시선을 강탈하고는홀연히 사라지셨다.
그때 처음 생각했다.
누군가의 오지랖이 이토록 유쾌할 수도 있구나!오지랖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물론 타인의 삶을 깔아뭉개며 참견하는 악성 오지랖은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속을데우는, 뜨끈한 국물 같은 살뜰한오지랖도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위해 내가 가진 시간을 내어주는 그 마음. 그것은 나쁜 사람은 결코 모르는 마음이다.
사실 살뜰한 오지랖은 진작부터 곁에 있었다. 애기들 태우라며 남들이 버린 킥보드와 지붕카를 갖다주신, 70대 아파트 미화원 할머니.
"애기들 크는 거 금방이여. 왜 돈 주고 사아. 여기(자전거 보관대에) 둘 텐께 태워, 잉?"
(감사해요. 너무 잘 이용했어요♡)
어린이집 등원 중인 3살 둥이가 공손히 인사하는 모습이 너무 예쁘다며 주섬주섬 호주머니를 뒤져 고사리손에 천 원씩 쥐어주신 70대 경비원 할아버지.
집 앞에서 뛰어노는 3살 둥이가 그저 예쁘고 귀하다며 각 1만 원 씩 무려 2만 원을 손에 쥐어주신 80대 동네 할머니의따뜻한 플렉스.
"아이고, 이뻐라. 할미가 이거밖에 못 줘서 어쨔.미안해서 어쨔."
난 그분들의 성함도 모르는데 그분들은 당신이 가진 커다란 것들을, 이름도 모르는 아이들에게 내어주셨다. 그 마음들이너무 풍성해서 나도 모르게 결심이 서 버리고 마는데.
나도 오지랖 부릴 거야. 막막, 팍팍 부릴 거야!!!
경비 아저씨가 내어주신 귀한 돈, 2000원. 이런 복돈은 따로 보관해둬야지. 평생 기억해둬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