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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뚜루 Sep 23. 2021

쓰고 싶은데 뭘 써야 할지 모르겠다면

관찰의 힘

"글 주제는 어떻게 정해?"


추석 명절상 앞에서 기습적인(?) 질문을 받았다. 매일 브런치에 올리는 글의 주제를 어떻게 정하냐는 질문이었다. 시댁 가족들이 모인 장소에서 나올 법한 대화의 주제가 아니라 당황한 나머지 "그냥.. 그때그때요..." 하고 얼버무리고 말았지만 속으로는 고마웠다.  아, 내 글을 꾸준히 읽어주고 계시구나.(우리 엄만 내 책 읽지도 않았는데ㅋㅋ)



출근 후 혼밥을 하는데 문득 제대로 답하지 못했던 그 질문이 스쳐갔다. 나는 글의 주제를 어떻게 정하는가!  사실 그분도 1일 1창작 하시는 분이라 남들은 대체 어떻게 소재를 정하나 궁금하셨을 것이다. 회사 동료와도 비슷한 결의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기사 말고 자기 글을 써보겠다고 막상 책상 앞에 앉았더니 뭘 써야 할지 모르겠더라고.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매일 이렇게 질문을 던진. 오늘  쓰지? 가 아니라 오늘 뭐 먼저 쓰지? (갸가 갸 아이가? 싶으시겠지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서 그렇다. 이 얘기도 하고 싶고 저 얘기도 하고 싶은데 하루에 글쓸 수 있는 시간은 제한돼 있고 그렇다면 오늘은 이걸로 써야겠다, 하는 선택의 반복이랄까.


물론 업무적 콘텐츠를 만들 때는 쥐어짜는 경우가 많지만, 오롯이 나의 글을 쓸 때는 머릿속을 떠다니는 활자들을 붙잡기만 하면 되었다. (그 글의 퀄리티는 묻지 않기로 하자ㅋㅋ)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이유는 생각이 많기 때문이다.



예컨대 혼밥 후 공원에서 글 한자락 쓰겠다고 입구에 들어서는데 떡 하고 보이는 빈 벤치. 점심시간 벤치 경쟁률이 치열한 이곳에서 텅 빈 벤치가 눈에 띈 순간 내 마음은 들썩이기 시작하는데. (내 대퇴부는 이미 캥거루 대퇴부임. 뛰어가고 있음ㅋㅋ) 엉덩이를 털썩 앉히고 나서 '와, 내가 앉았다^^' 하는 희열보다는 이런 감정이 움트는 것이다. 아니 벤치 이깟게 뭐라고, 왜 이렇게 최선을 다해? 그 찌질한 순간의 생각을 글로 옮기고 나면 그토록 짜릿할 수가 없다. 찌질이에서 수퍼찌질이로 한 단계 올라선 기분이랄까.


생각이 넓고 깊어지려면(내가 그렇다는 건 아니고)  감정을 끝까지 붙들고 늘어지면 된다. 주변을 세밀히 관찰하면 된다. 이름을 불러주면 된다. 내가 개발한 방법이 아니라 내로라하는 작가들이 권하는 방법이다. 꽤 효과를 보았고 지금도 가끔씩 꺼내보는 문장을 옮겨본다.



그냥 '꽃'이라고 말하지 말라.

- 어떤 종류의 과일인지 분명히 밝혀 주라. 사물의 이름을 불러 주어 그 사물의 고유성을 만들어 주라.

- '창가의 꽃'이 아니라 '창가의 제라늄'으로 묘사하는 편이 훨씬 좋다.

- 사물의 이름을 알고 있을 때 우리는 근원에 훨씬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 그냥 '꽃'이라고 부르는 대신 '제라늄'이라고 말할 때 당신은 현재 속으로 더 깊게 뚫고 들어가게 된다.

- 사물들 속으로 파고들라. 새, 꽃, 치즈, 트랙터, 자동차, 비행기... 이 모든 것의 이름을 배우라.


ㅡ 나탈리 골드버그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자연의 표현

- 이렇게 친애를 가지고 본다면 풀 한 포기, 벌레 한 마리, 정 쏠리지 않는 것이 없다. 정이 쏠리면 무시할 수 없는 감상이 일어날 것이요, 감상이 일어나면 표현하고 싶은 것은 또한 인정의 본능이다.

- 태어나서 오늘 처음으로 보는 현상이거니 하고 느끼면 남이 이미 말하지 못한, 새로운 경지, 새로운 경이를 발견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ㅡ 이태준 <문장강화>


오늘 내가 캥거루로 빙의해 뛰어다닌 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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