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문장이 있다. 북한에서 내려온 10대 새터민 소녀의 엄마가 죽었다. 소녀는 발붙인 이 땅에서 영영 혼자가 되었다. 소녀를 인터뷰한 기자가 심경을 물었다. 엄마가 돌아가셔서 너무 슬퍼요,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요, 정도의 감각을 예상했던 나는 소녀의 문장을 읽고나서 온몸의 장기가 팽팽하게 부풀어오르는 것 같았다.
매일 끌어안고 자던 엄마가 없어서 허전해요.
사랑하는 엄마로 꽉 차 있던 마음 속 공간이 존재의 상실로 인해 급격하게 쭈그러들 때그 공간을 지켜내려고 맞서는 소녀의 몸부림이 그림처럼 그려졌다. 이제는 닿을 수 없는 존재를 이부자리에서 애써 더듬어 찾아보려는 소녀의 손동작이 그려졌다.슬픔보다 더 슬픈, 아픔보다 더 아픈, 상실의 언어 '허전하다.' 나는 허전하다는 말의 새로운 용례를 알게 되어서, 무척 슬펐다.
2.
얼마 전 소방관 세 분의 영결식을 지켜보며 문득 '허전하다'는 문장이 떠오른 것은 남겨진 사람들의 감각이 느껴져서다. 통통하고 작은 손이었다가 이제는 제법 큼직해진 손으로 십수년 간 소방관 아빠를 끌어 안았을 자식들의 손. 곧 부부가 될 남자의 얼굴을 숱하게 쓰다듬고 어루만졌을 예비신부의 손. 같은 꿈을 꾸고 한발짝 한발짝 앞으로 나아가면서 서로를 지탱해줬을 소방관 여자친구의 손. 그 남겨진 사람들의 손이 더는 사랑하는 존재를 감각할 수 없다는 사실에 나는 덩달아 허전해졌고 슬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