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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뚜루 Oct 27. 2021

흔들리지 않고 '나만의 글' 쓰기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려면

"쓰고 싶은 글이 아니라 읽히는 글을 쓰세요."


페이스북에 

종종 이런 광고가 뜬다. 무심코 읽다간 나도 앞으로 남들이 좋아하는 글만 써야지, 하고 마음이 휩쓸리기 십상이다. 사실 요새 글밥 먹는 사람들의 글을 보면 내 문장이 초라하게 느껴지곤 한다. 나도 저렇게 씩씩한 문체를 가졌으면!  나도 저렇게 뼛속까지 내려가서 쓰는 뚝심이 있었으면! 그런 생각들에 파묻힌 채 글 마실을 나서면 영락없이 마주치는 게 꼭 저 문장이다. "남들에게 읽히는 글을 쓰세요!"


그런데

내가 남의 눈치를 보며 쓴 글은 단박에 티가 난다. 생각이 종으로 횡으로 확장되는 글이 아니라 안으로 푹 꺼지는, 죽은 글이다. 문장을 위한 문장이다. 그런 글은 쓰고 나면 찝찝한 마음이 된다.


내가 도대체 뭐라고 씨부리쌌노?!


좋은 글

내가 쓰고 싶은 글이면서, 동시에 남들이 공감하는 글일 것이다. 드라마 <한번 다녀왔습니다>의 양희승 작가가 어느 강연에서  이야기를 그대로 옮겨보자면.


다 오징어 게임 같은 것만 쓰면 어떻게 되겠어요? 흐름을 일률적으로 쫓아가지 말고, 다양한 소재로 다양한 사이즈로 본인이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를 쓰세요.


아멘! 할렐루야! 스파시바! 그라씨야스!!

내 말이 그말입니다만.

어떻게 하면 좋은 글을 쓸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내가 쓰고 싶은 글을 남들도 공감하도록 쓸 수 있을까. 이게 요즘 내 머릿속을 꽉 채운 고민이었다. 그런데 그 답이 어린이집 수첩에 쓰여 있을 줄은?!!



3살 쌍둥이 꼬마 2호의 어린이집 선생님블록으로 사람 모양을 만드신 모양이었다.


선생님: (A군에게) 이것 봐.^^
A군: (관심 없고)
선생님: (속상한데)
2호: (선생님이 만든 블럭을 가리키며) 이것 봐.^^
A군: (그래도 관심 없자)
2호: (살짝 샤우팅하며) 관심 좀 가져라.


관심 좀 가져라.


3살

저런 말을 했다고? 일단 애미인 내가 빵 터졌음은 말할 것도 없고. 3살 꼬마의 말 한마디에서 강렬한 깨달음을 얻었다. 관심! 그래, 관심이구나. 다른 사람에게 시선을 기울여야 좋은 글도 나올 수 있구나.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쓴 글과, 타인을 관찰하고 쓴 은 뚜렷하게 다르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 글은 글의 중심이 자기자신에게 있지만, 타인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쓴 글은 타인에게 중심을 둔 글이다. 둘 다 타인을 매개로 하지만 출발부터가 다른 글이다.



소설가 설흔이  <멋지기 때문에 놀러 왔지>에도 비슷한 대목이 나온다. 조선 정조 시대 때 소설체 문장을 썼다는 이유만으로 차례로 유배당한 성균관 출신 이옥김려. 이옥이 유배 시절 묘사한 시장의 풍경을 발췌한다.


소와 송아지를 몰고 오는 자, 두 마리 소를 끌고 오는 자, 닭을 안고 오는 자, 문어를 끌고 오는 자, 돼지의 네 다리를 묶어서 메고 오는 자, 청어를 묶어서 오는 자, 청어를 엮어서 늘어뜨려 가져오는 자, 북어를 안고 오는 자...(중략)... 표주박에 두부를 담아서 오는 자, 주발에 술이나 국을 담아서 조심스럽게 오는 자가 있다.

ㅡ 이옥이 기미년(1799년)에 지은 <시기>라는 글


이에 대해 김려는 이옥만이 쓸 수 있는 글이었다고 평했다. 시장에 사람이 많다고 한 줄만 쓰면 그만인 것을, 쓸데없는 묘사에 그 많은 시간과 정력을 낭비한 글. 그러니까 임금이 그토록 싫어했던 소설 문체가 제대로 발휘된 글이었다고, 소설가 설흔은 적었다.


임금이 자네를 왜 그렇게 못마땅하게 여겼는지 알 것 같네. 천 명, 만 명 하나하나에 기울이는 자네의 그 시선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게야.


반면 열여섯 이른 나이에 김려체가 탄생했다는 칭송을 들을 정도였던 김려는 기나긴 유배 시절을 보내고 난 뒤 외려 자신만의 문장을 잃었다. 현감이 된 후 날마다 시 한 수씩 썼지만, 김려가 아닌 누구라도 쓸 수 있는 이었다. 아무런 색깔도 없는 맹탕한 글.



사람을

넉넉하게 바라볼 줄 아는 시선. 그 사람이 되어 보려마음가짐. 거기에 버무려진 자신만의 고유한 생각. 그러면 비로소 나만이 쓸 수 있는 글이 된다. 오직 나만이 쓸 수 있는 글. 김뚜루체, 생각만 해도 너무 힙하잖아?!

 

나는 지금 세상의 사람이라네.
나 스스로 나의 시, 나의 글을 지으니
저 먼 옛날 중국의 문장과 시가
도대체 나와 무슨 상관이겠는가? ㅡ 이옥


나도 이옥 선생처럼 나만의 글을 짓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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