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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뚜루 Nov 05. 2021

공원에서 발견한 것들

관찰일지

짧은 혼밥을 끝내고 공원을 걸었다. 신발이 낙엽 위를 스치며 사락거린다. 폭신한 느낌이 꼭 두툼한 이불 위를 퐁당퐁당 걷는 것 같다.


"점심시간인가 보네."


어느 할머니의 중얼거림에 공원을 주욱 둘러본다. 사람들이 흐른다. 빌딩에서 공원을 거쳐 저 빌딩으로, 학교에서 공원을 거쳐 집으로 저마다 흘러가는 시간. 다만, 흐르지 않고 공명하는 사람들만이 와글와글 떠들썩한 소리를 낸다. 남녀 직장인 여럿이 농구공을 통통 튕기며 3점슛을 시도, 해 보지만 실패.


맞은편엔 아홉 살쯤 되어 보이는 초등학생 남녀 무리가 머리통보다 큰 농구공을 퉁퉁 바닥에 튀긴다.


"야, 여기 너무 높아. 딴 데서 하자."는 남학생의 요구는 단번에 묵살되고. 제 키보다 세 배는 높은 골대를 어떻게든 해보지만 어쩌지는 못하는 아이들은 우왕좌왕. 공이 아이를 튕기는지 아이가 공을 튕기는지 모르겠을 정도로 난해한 초딩 농구의 세계.


그 와중에 가장 키가 작달만한 또 다른 남학생이 농구공을 코트 밖으로 퉁퉁 몰고 나간다. 야! 너 왜 혼자만 해!! 아이들의 볼멘소리. 내가 공원을 한 바퀴 돌고 다시 그 농구 코트에 도착했을 때 그 남자아이는 그새 친구들에게 농구공을 넘기고(줬는지 뺏겼는지 모르겠지만) 축구공을 튕기고 있는데, 안 튕겨지지 당연히. 여튼 아이는 농구공 무리에 낀 유일한 축구 플레이어였으니, 뭔가 이질적이지만 아이라서 허용되는 이 조합. 어째 피식 웃음이 난다.


같은 시각 또 다른 지점. 핑크색 잠바를 입은 채 친구들과 까르르 내달리던 초등학생 소녀는 노란색 머플러가 축 내려와 땅바닥에 닿을듯 말듯 아슬아슬 매달린 사실을 모르는지 그저 종으로 횡으로 달린다. 깔깔깔깔. 적당히 데시벨 높고 적당히 공원을 울리는 여자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내 마음에 찰싹 달라붙는다.


나는 풍경들을 사람들을 낙엽들을 사락거리며 계속 공원을 걷는다. 그러다 문득 없던 사람이 지하세계로부터 솟구쳐 오르는 모습을 본다. 하얀색 안전모를 쓴 아저씨가 송수구 밖으로 모래주머니를 옮기고 있다. 철망으로  닫힌 그 지하공간을 뭐라 부르는지 모르다가 (꼭 사람 이름 같은) 송수구 아저씨 덕에 배운다. 고마워요, 송수구 아저씨. 송수구를 알게 해줘서(송수구 옆에 송수구라 적혀 있었다).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줘서. 한 바퀴 돌고 오니 그새 송수구 패밀리가 늘어나 중년 남성 셋이 쪼르르 송수구에 걸터 앉아 있다. 맛있게 담배를 물고서. 아저씨, 공원은 금연구역이에요, 라고 텔레파시로 건네본다. 내 뇌파가 전달되지 않았는지 담배 연기는 계속 피어 오르는데. 그래, 작업 마치고 나면 그럴 수도 있지. 속으로 너른 마음을 품게 되는 건 내가 나이 들어서일까, 가을을 타서일까.


공원 앞자락엔 어린아이 둘이 얼굴보다 큰 손가락 모양의 낙엽을 들고서 낙엽밭을 뛰어 다닌다. 얘들아, 그 낙엽 참 공룡 발자국 같구나! 하는 생각을 품다가 나는 저 나뭇잎의 이름조차 모르고 있다는 생각에 미안해졌다.

칠엽수라고 한다(오엽수 아니고??). 구글신이 그랬다.


최근에 조성된 화단으로 걸음을 옮긴다. 사진을 찰칵 찍는다. 프레임 안에 들어온 풀과 나무와 꽃들 중 이름을 아는 것이 없다. 드라마 작가를 꿈꾸는 사람이 사물들의 이름을 꿰지 못하다니!! 그러나 네이버에 검색해봐야지 생각하며 일단 사진만 찍어둔다.

미안. 국화 말곤 니들 이름을 모르겠어..


걷고 또 걷는데 빛을 받은 낙엽이 반짝거린다. 낙엽 곁을 구르는 돌멩이덩달아 빛이 난다. 사물이건 사람이건 볕을 쬐면 빛이 나는구나. 모든 생명체는 양지를, 빛을 향하게 되어 있다는 이름 모를 작가의 문장을 떠올리며 찰칵.


나는 공원에서 배운다. 사람도 사물도 생물도 모두 이곳에서 살아난다. 좀 더 많은 것들의 이름을 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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