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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뚜루 Dec 07. 2021

동네공원 할머니의 반전

비둘기가 스스로

동네공원 초입에 들어서는데 전광판만 한 크기의 플래카드가 시선을 잡아끌었다.


"비둘기가 스스로 먹이를 찾아 생태계의 당당한 일원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비둘기 먹이주기 금지,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지 마세요, 라는 경고문은 숱하게 봐왔으나 '생태계의 당당한 일원'이라는 표현을 접하는 건 낯선 경험이었다. 여하간 나는 비둘기를 일컫는 이 새로운 표현에 마음을 빼앗겨 나도 모르게 그 당당한 일원들의 행적을 파악하는데 몰두하게 되었다.


어딨니? 생태계의 당당한 일원들아. 그들을 좇아 길을 따라 걷는데 예닐곱 마리의 비둘기들이 푸득거리며 낙엽더미에 내려앉는 모습이 보였다. 오, 저깄다! 생태계의 당당한 일원들!


과연, 그들은 늠름하고 당찬 모습이었다. 나풀거리는 낙엽을 부리로 헤쳐가며 흙 속으로 사정없이 부리를 쪼아댔다. 사람의 시선으로는 비둘기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어서 부리에 콕 찍힌 것이 벌레였는지 마른풀이었는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비둘기가 회색 아스팔트가 아닌 황색 땅을 딛고 서 있는 것만은 분명했다. 사람의 손에서 흘러내린 부스러기를 받아먹는 비둘기가 아니라 땅을 스스로 개척하는 비둘기들. 오, 당당해! 저 생태계의 당당한 일원들! 그런데,


'뭐야, 비둘기 처음 봐?'


마치 내가 거슬린다는 듯 나를 흘겨보는 듯한 비둘기들의 시선이 은근히 느껴지는 바람에 쪼그려 앉았던 몸을 일으켜 세우고 말았다. 나도 참 주책이지, 비둘기 먹방이나 보고 앉았고. 허허실실 웃으며 다시 산책로에 들어섰다.



마른 먼지를 일으키며 흙길을 사부작사부작 걷는데 머릿속에서 '당당한'이라는 표현이 쉬이 걷히지 않았다. 오히려 몽실몽실 떠올라서 머릿속에서 가장 커다란 부분이 되었다.


당당하다. 남 앞에 내세울 만큼 모습이나 태도가 떳떳하다 또는 힘이나 세력이 크다, 를 뜻하는 형용사. 나는 생태계의 당당한 일원이 된 비둘기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그렇다면 생태계의 당당한 일원이 된 사람은 어떤 모습일까 자못 궁금해졌다. 하지만 당당한 사람의 모습이 쉽게 떠오르지 않아 조금은 좌절하던 그 찰나!!! 내가 방금 앞지른 할머니 두 분의 말소리가 내 등을 타고 넘어와 마음에 콕 박혔으니.


"별일 없이 요대로만 몇 년 살다 가면 좋겄어." (A할머니)


"암만!"
(B할머니)


요대로.

몸은 꾸부정하나 일흔줄 나이에 탄탄하게 걸을 두 다리가 있고, 맘을 주거니 받거니 나눌 벗이 있으니 '요대로' 산다는 것만큼 자연스러운 일이 또 있을까? '요대로 정신'이야말로 비로소 생태계의 당당한 일원이 되었음을 알리는 신호 같은 게 아닐까, 생각하며 할머니 무리와 자연스럽게 멀어져갔다. 고맙습니다, 할머니. 큰 깨달음을 얻었어요. 그러나...... 그 해석은 단디 틀린 것이었다.



한 바퀴를 돌고 다시 마주친 할머니들. 이번엔 할머니들이 앞서 걷고 내가 그 뒤를 따르는 중이었다. 대화 내용이 정확히 들리지 않아 거리를 좁히고 바짝 귀를 열었더니 그제야 할머니들의 목소리가 또렷해졌다. 아마도 청년 취업에 대한 방담을 나누시는 듯했다.


"줄 없으면 못 가.
암만, 빽 없으면 못 가지!"
(B할머니)


나는 조금 전까지 돌돌 굴려 뭉쳐놓았던 생각들을 다시 끌러내렸다. 아, 생태계의 당당한 일원이란 모름지기 줄 없이, 빽 없이 스스로의 힘으로 올라선 사람들을 일컫겠구나, 하지만 그러기에 이 생태계는 너무나 협잡한 곳인데 어떻게 하면 모든 사람들이 생태계의 당당한 일원이 될 수 있을까, 그런 날이 오긴 올까? 그런데 내 생각을 꿰뚫었던 걸까. A할머니(할머니 아깐 그렇게 안 봤는데)께서 별안간 호통을 치시는 것이 아닌가.


"아, 그니까 대가리를 족쳐야 돼!!!"
(A할머니)


순간 나는 몸이 빵 터진듯 제자리에서 휘청거렸다. 아, 할머니 아깐 그렇게 안 봤는데, 스웩 어쩌실 거예요?(따봉 드립니다) 나는 할머니가 말씀하신 대가리란 어떤 대가리를 말하는 걸까, 그 대가리를 족치면 어떤 세상이 찾아올까, 대가리는 몇 개를 쳐내야 할까 따위의 생각들을 곱씹다가 문득 할머니가 그 대가리를 직접 족치는 장면이 상상되는 바람에 묘한 희열을 느꼈다. 드라마를 쓴다면 A할머니를 주인공으로 세우고 의인 A가 빌런들의 대가리를 주야장천 족치는 드라마를 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아주 근사한 할머니 주인공이 탄생할 것 같은 예감에 기분이 좋아졌다.


미행하듯 계속 할머니 뒤를 졸졸 따르며 더 이야기를 듣고 싶었지만, 주변을 더 얼쩡거렸다간 내 대가리가 족침을 당할 것 같아서(?) 갈림길에서 쿨하게 헤어졌다. 오늘 산책, 안 했으면 어쩔 뻔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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