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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뚜루 Dec 01. 2021

퇴사하는 직원이 떡을 돌렸다

이게 웬 떡

여느 오후, 보도국 테이블 위에 떡이 올랐다. 녹차맛 초코맛 딸기맛 등등 현란한 빛감을 품은 떡들이 좁고 깊은 A4용지 박스 안에서 웅숭그리고 있었다.


이게 웬 떡이야.


어디 물어볼 사람도 없고 굳이 캐묻고 다닐 마음도 없어서 잠자코 떡을 지켜보다 도로 자리에 앉았다.


덕분에 결혼식 잘 마쳤습니다.
덕분에 무사히 상 치렀습니다.


으레 이런 문장과 함께, 일면식도 없는 혹은 일면식은 있으나 돈이 오갈 정도의 끈끈한 관계는 아닌 사람들이 보도국 테이블 위에 답례떡을 은근하게 놓고 가는 경우가 있었으므로 나는 분명 경조사 떡일 거라 단정했다. 다만 이번 떡의 수상한 점은 어디에도 발신자를 적어놓지 않았다는 것, 그뿐이었다.


수상해. 배상(拜上)이라는 단어가 붙질 않았어.


골똘하던 차에 한 선배가 테이블(떡과 나는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로 다가오며 나에게 물었다.


이게 웬 떡이야.

그러게요. 저도 모르겠어요.


최대한 궁리해보려는 몸짓으로 고개를 여기로 저기로 휙휙 돌려보았다. 각자의 자리에서 목석처럼 앉아 타이핑하는 사람들만 눈에 들어올 뿐 떡 관계자로 추정되는 인물은 없었다. 그때 순식간에 내 뒤를 스치는 목소리. 단정하고 씩씩한 음성으로 그녀가 말했다.


저예요.


복직 후 5개월간 단 한 번도 말을 섞어본 적 없는 다른 팀 직원이었다. 화장실 출입문에서 서너 번, 정수기 앞에서 두어 번 마주친 게 전부였던 그녀. '일면식은 있으나 돈이 오갈 정도의 끈끈한 관계는 아닌 사람'의 범주에 속하는 것도 모자라 그 사람의 이름조차 모르고 있었다는 점에서 한결 더 느슨한 관계였다.


20대 같은데 어쩌면 동안이어서 30대일지도 모를, 어쨌거나 뭉뚱그려 MZ세대 직원이라고 명명하면 절대 틀리지 않을 젊은 사람. 그 싱그러운 나이대의 사람이 싱그러운 목소리로 경쾌하게 외쳤다.


제가 퇴사하거든요.

 

선배와 나는, 왜 퇴사해요? 라고 차마 묻지 못 하고 퇴사한다는 사람 떡을 어떻게 먹어, 먹어도 되나,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따위의 말을 읊조리며 겸연쩍은 얼굴이 되었다. 다만 이 정도 질문은 예의에 어긋나지 않겠지, 라는 생각에 용기 내어 그녀에게 물어보았다.


퇴사하는데 떡을 왜 돌려요?


모름지기 퇴사란 하나의 거대한 조직과 그 조직에 딸린 사람들과의 단절과 결별을 뜻하는 것인데 떠나는 마당에 내돈내산 떡을 돌린다는 건 '완전한 단절'까진 원하진 않는다는 뜻인 걸까, 몸은 떠나도 마음은 이어가고 싶다는 뜻인 걸까. 그렇다 해도 특정인이 아닌 조직 전체에 마음을 드러내는 건 무슨 영문인가. 그러나 내 예상답변은 완전히 빗나갔다.


좀 새롭게 해보고 싶었거든요. (색다르게, 라고 말했는지도 모르겠다)


새롭게, 그게 다였다. 그 어떤 꿍꿍이도 속셈도 들어앉지 않은 순수한 마음, 새롭게. 그녀는 퇴사, 하면 떠오르식상한 단어들의 조합과 결별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지긋지긋해서 떠나는 퇴사, 축하받으며 떠나는 퇴사가 아닌, 그녀만의 퇴사 이벤트. 어쩌면 떠나는 조직 앞에서 스스로에게 내리는 선물. 이만하면 잘 버텼어, 애썼어, 잘했어, 네가 자랑스러워, 라고 스스로를 토닥이는 선물 아니었을까.


나는 그녀가 정말 멋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녀의 이름이 ○○○이라는 걸 그날 처음 알게 되었다. 그리고 앞으로 그녀의 생이 녹차맛 딸기맛 초코맛 같은 다채로운 맛과 색을 띠길 간절히 염원하면서, 내가 그녀를 응원하는 길은 오로지 내 눈앞의 떡을 먹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마음으로, 떡 하나를 집어들었다.


오물오물. 

쫀득한데 부드럽고, 달큰한데 짭조롬했다.

와, 새로운 맛!

재밌는 맛!

퇴사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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