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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뚜루 Jan 21. 2022

말도 마

"엄마, 이야기 들려줘."


"오늘은 무슨 이야기 들려줄까?"


"엄마가 지어낸 이야기!!"


밤마다 일렬종대로 누운 아이들을 잠재우며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놓는다. 안데르센 명작 동화 따윈 안중에도 없고 기필코 내가 지어낸 이야기만 들으려 하는 아이들.


"그럼 오늘은 별 이야기를 해줄까?"


드라마 작가 지망생 쪼꼬미 시절일 때 지은 단막극(장르는 무려 로맨스판타지!) 내용을 읊어주는데 어째 조용하다. 뭐야, 벌써 자? 반응이  시원찮네. 설마 드라마 극본 공모전에서 광탈한 작품인 거 눈치 챈 거야?


속으로 가슴을 따흑 부여잡고 초1 딸에게 넌지시 물었다.


"유니아카(딸 필명)야, 근데... 이게 재밌어?"


그 질문 뒤에는 딸에게 미처 말로 뱉지 못한 후렴구가 있었으니... 엄마가 열라 열심히 썼는데 열라 떨어진 이 따위 허접 대본이 재밌을 리가 열라 없잖아!!! 엉엉엉... 하고 우는 마음이었지만 울진 않았다. 그랬더니 돌아오는 아홉 살 딸의 답변.


"엄마!!!"


"???"


말도 마.


그러니까 그 말은 그런 말은 꺼낼 필요가 없었다는, 말도 못할 정도로 재밌다는 뜻이었고 그 말은 매번 공모전 결과 발표 시즌마다 쭈그러져 있던 나를 팽팽히 잡아당기는 말이었다. 내 마음을 쭈욱 쫘악 펴는 말. 그 말 덕분에 나는 계속 써나갈 용기를 얻었고, 적어도 별에 관한 내 드라마는 9세와 4세의 동심을 사로잡은 '말도 말 정도로' 재밌는 작품이니 자신감을 갖고 나아가야겠다고 (자의식 과잉자답게) 생각했. 단, 수정고를 몇 번 더 탈고한다면 말이지.


그래서 '또' 냈다. 4세와 9세 시청자를 사로잡은 이 허접한 작품을 심사위원이 알아보길 바라며, 나는 오늘도 드라마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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