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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뚜루 Feb 05. 2022

언니는 언니 없이 어떻게 버텼어요?

(feat.이효리)

김태호와 이효리의 조합이라는 티빙 <서울 체크인>을 봤다. 효리 털털하고 멋진 거 보여주는 뻔한 예능일 줄 알았는데 훅 가슴에 스미는 언어가 있었다.


서울 엄정화의 숙소에서 묵게 된 효리가 자신을 살뜰히 챙겨주는 정화에게 묻는다.


언니는 언니 없이 어떻게 버텼어요?

출처 : 티빙 <서울 체크인>
언니는 위에 이런 선배가 없잖아요. 그럼 이런 기분이 들 때 어떻게 버텼어요?


뭉클해진 얼굴로 정화가 답한다.


몰라. 그냥 술 마셨어.


갑자기 효리가 티슈를 뽑아내 눈두덩이를 꾹꾹 누른다.


언니 짠하다.. 아무도 없이 그 시간을 그냥 버틴 거 아니야.




언니 없이 버티는 삶에 관하여 적자면, 나는 적을 것이 없다. 일단 세상에 던져지자마자 쭉 연년생 친언니가 있었다. 초딩 시절 언니는 내가 놀이터에서 '황자매'에게 집단린치(?)를 당한다는 소식을 듣고 부리나케 현장으로 달려왔다. 덕분에 의기양양해진 나는 으끄러졌던 몸을 일으켜 황자매에 당당히 맞섰고, 놀이터는 초딩 저학년 4명이 서로의 자매를 지키려 머리끄덩이를 낚아채는 집단패싸움(?)의 현장으로 다. 궁극의 김자매는 끝내 황자매에 밀리고 말았지만, 그날 내 마음만큼은 충만함으로 그득하게 차올랐다. "와! 언니 있으니까 좋다아아!"




2008년 입사해서 만난 회사 언니들은 대체로 어려웠으나 본질은 살가운 존재들이었다. 남자 선배에게 괴롭힘을 당할 때 내 마음을 달래주며 생존스킬(앞에선 무조건 우쭈쭈해줘라 같은)을 누설해준 언니1, 내 개인적인 삶이 고꾸라졌을 때 용돈을 쥐어주며 위로해주던 언니2, 우리 회사 기자 최초로 육아휴직 스타트를 끊으며 앞길을 터준 (나보단 후배였으나 생물학적으로는 한 살 언니였던) 언니3, 존재만으로도 뭉클해지고 든든한 우리 회사 왕언니 등등 내 곁엔 좋은 언니들이 많았다. 이 언니들이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다. 맞다. 나는 언니들 덕에 언니가 되었다.




나는 어떤 언니였을까. 우리 회사 여기자 최초로 생리휴가 스타트를 끊었다는 자부심은 일단 밀어두기로 하고... 누군가에겐 썅년이었을 수도 있고 버팀목이었을 수 있겠지만 기왕이면 그네들이 힘들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얼굴이었으면 좋겠다. 올해 내 나이 30대 끄트머리. 앞으로 동생 될 일은 그닥 없고 영영 언니로 굳어지는 일만 남았는데 엄정화처럼 효리처럼 살뜰하고 다감한 언니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출처: 티빙 <서울 체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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