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작가를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
나에게 작가 하면 떠오르는 이름은 박경리, 조정래, 헤밍웨이, 도스토예프스키 등이다.
작품을 위해 일반 대중들과 떨어져 오두막 같은 곳에서 오랜 기간 칩거하며 대작을 만들어 내는 그런 모습.
어릴 적, 아버지 서재에 꽂혀 있던 명작들. 그 시절 유행이었을까? 뭔가 있어 보이는 용도로 명작 전집들이 위풍당당하게 제일 잘 보이는 것을 차지하곤 했다. 손 때가 묻어 있지 않은 모습 그대로.
유독 아프고 약해서 결석이 잦았던 나는, 아버지 서재에 가서 혼자 놀았다.
처음에는 심심해서 책을 꺼냈지만, 촘촘히 박힌 글씨와 책의 두께에 질려 금방 닫아버리기 일쑤였다.
그러다, 어느 날 우연히 읽게 된 책에서 처음 지루함을 견디고 책에 빠져 들어 꼼작도 안 하고 읽었던 기억이 난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쿠오바디스, 톰 소여의 모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한번 읽기 시작하니까, 멈출 수가 없었고 그 시절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칠 수 있었던 유일한 돌파구다.
그래서 나에게 작가란 이런 분들이고, 이런 명작들이다.
올 초에 시작한 행동력 모임에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매일의 미션을 하고 그 소회를 글로 써서 블로그등에 인증하는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을 진행하시는 코치님이 우리를 모두 "작가 님"이라고 불렀다. 그 이름이 낯설다.
"아무나 작가?" 이렇게 흔한 말인가? 인고의 세월을 견디고, 창작의 아픔을 견딘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특권 아닌가?
그러기에는 너무도 쉽게 책을 낼 수 있는 세상이다.
자기의 생각과 필력이 떨어져도, 생성형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아 그럴듯한 글들이 뚝딱 나올 수 있으니까.
어쩌면 나도 이곳에서 불린 "작가"라는 타이틀에 세뇌되어, 용감하게 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삶을, 내 생각을 글로 남긴다"라는 대의적 명분에 의해.
아직 책을 한 권도 내지 않았지만, 여전히 "작가"라고 불리는 어색하고도 민망한 상황.
어디까지가 작가의 범주일까?
얼마 전 무려 책을 15권 집필한 안계환 작가를 만났다.
1년에 책을 200권 정도 읽으시는 분. 모든 삶이 독서와 글쓰기에 맞추어져 있다.
독서가 자신의 "성장 욕구"를 채울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자 취미이며, 지금까지 인생을 돌아보니 다양한 직업 경로가 가능했던 이유도 오로지 독서 때문이라고 했다.
개발자, 창업가, 교수, 경영자, 컨설턴트, 작가, 강사
그분에게 붙여진 직업이고 직업의 변천사다.
비 전공자가 개발자가 되기 위해 책을 통해 공부했고, 그러다 적성이 맞지 않아 경영 공부를 독학으로 해서 창업을 하고 경영자가 되고, 인문학과 역사 서적을 읽고 작가와 강사가 되었다.
아무리 그래도 스펙트럼이 넓어도 너무 넓다.
어떻게 가능하냐고 물었더니, 한 분야에 책을 30권에서 50권 정도 읽으면 관통하는 맥이 있고, 그 흐름을 잡으면 가능하다고.
출간 한 책도 경영, 인문학, 역사서 다양하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소설가, 시인, 에세이스트, 아니면 전문서적을 쓰는 학자의 분류와도 비껴간다.
대중이 원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분야를 정해 공부하고 지식을 판매하는 일종의 "지식 소매상"이라고.
대화를 하면서 느껴지는 건, 작가의 마인드보다 1인 창업가의 마인드가 더 강해 보인다.
그렇지, 작가도 독자가 있어야 하고 읽혀야 하니 그런 면에서는 결이 비슷하다.
책을 먼저 쓰고 강의를 한 게 아니라, 강의를 하면서 자신의 콘텐츠가 필요해서 책을 쓰게 된 경우다.
1년에 한 권씩 책을 내는 게 목표라고 하니,
남들 3년에서 5년 걸리는데, 어떻게 가능할까?
"강사는 봄에서 가을까지 바쁘고, 겨울은 한가하죠. 저는 봄에서 가을까지 차로 이동하는 동안, 책을 읽고 정보를 모읍니다. 그리고 겨울에 글을 쓰죠"
철저히 독서와 성찰, 글쓰기라는 프로세스가 패턴화 되어 돌아가는 삶을 산다.
안계환 작가의 삶은 패턴화 되어 있지만, 출간하는 책들이 어떤 분야로 이동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작가"라는 이름보다 "지식 창조자"에 가깝기 때문이다.
어찌 안계환 작가뿐이랴.
글의 기장에 따라 숏폼, 롱폼 이렇게 나눈다.
철저하게 온라인적 관점이다.
트위터, 스레드는 숏폼
뉴스레터, 브런치, 블로그등은 롱폼에 속한다.
모바일의 작은 액정에서 독자의 마음을 잡기 위해 처음 두줄에 사활을 건다.
후킹적 요소를 담아야 콘텐츠가 간택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좋아요와 팔로워 수에 따라 알고리즘이 돌아 한번 떡상한 콘텐츠는 더 많은 좋아요와 팔로워를 낳고,
그렇지 못한 콘텐츠는 하루 살이 인생처럼, 수명을 다한다.
작가를 어떤 범주에 넣고 불릴 수 없듯.
"책"의 범주를 어디까지로 보는지가 애매한 세상이 되어 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장 한 장 페이지를 넘기며 상상의 나래를 펴고 주인공과 함께 울고 웃던 어릴 적
그 시절의 작가들이 그립다.
안계환 작가를 인터뷰하면서, 독서가 주는 유익에 대해 다시 한번 느꼈다.
많이 읽는 것보다, 제대로 읽어야 한다고 하지만,
양이 채워져야 질도 채워지는 법.
그리고, input만 있어서도 안되고, 그 과정을 자신의 것으로 창조해 내는 output의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분의 "성장 욕구"를 채워 준 독서가 어떻게 직업의 여정으로 가고 있는지를 뉴스레터에 담았다.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하고자 할 때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말이 귓가에 맴돈다.
안계환 작가 뉴스레터
https://maily.so/selfishnomad/posts/b818c7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