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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란 생활의 결과로서 경작되는 것.

by 하니오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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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이란 생활의 결과로서 경작되는 것이지 결코 갑자기 획득되는 것이 아니다.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 한 번도 보지 않은 부모를 만나는 것과 같이
조금도 이상하지 않는 까닭도 바로 사랑은 생활을 통하여 익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부모를 또 형제를 선택하여 출생하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사랑도 그것을 선택할 수는 없다.
사랑은 선택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며 사후(事後)에 서서히 경작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말처럼 쓸데없는 말은 없다.
사랑이 경작되기 이전이라면 그 말은 거짓말이며, 그 이후라면 아무 소용없는 말이다.
인간을 사랑할 수 있는 이 평범한 능력이 인간의 가장 위대한 능력이다.
따라서 문화는 이러한 능력을 계발하여야 하며, 문명은 이를 손상함이 없어야 한다.
Das beste sollte das liebste sein.
가장 선한 것은 무릇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것이어야 한다.

사랑은 경작되는 것 - 신영복 -



'사랑'에 대해서 생각해볼 때, 고민해볼 때 자주 열어보는 글귀이다.

그냥 딱 첫 문장에 다 있다.


'사랑이란 생활의 결과로서 경작되는 것'


어릴 때부터 나에게는 전도를 하려는 사람들이 많이 꼬였다.

'교회 가면 구원 받어.'

'다 믿음이 부족해서야'

'하느님이 다리 고쳐주실 거야.'


나는 대학시절 동아리 방에서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유물론'과 관련한 글을 접하기 전에도 철저한 유물론자였다. 도무지 창조론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느님이 범사와 범물을 창조했다면 나를 이렇게 너저분하게 창조해 놓은 것이 납득이 되지 않았다.

사유에 '적의와 원망'이 담겼을 것이고, '진화가 덜 된 상태'라고 받아들이는 것이 차라리 편했다.

그것이 집단적 망상이든 삶의 궁극적 의미를 추구하는 문화 체계이든 나는 '종교'와 '신'을 가로지르려 노력을 계속했다. '오만과 편견'이 팽배한 시절이 지속되었다.

타고난 싸가지가 박약하기도 하다.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거닐고 있다. 공산당이라는 유령이"로 시작하는 '공산당 선언'의 첫 문장을 접하고 나는 전율했고 '유물론'에 대한 천착은 깊어져만 갔다.

아이를 키워가며 지금은 꽤 생각이 바뀌었다.

'완벽한 불가능'과 '피안의 영역'에 생각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나중에 써볼 날이 오겠다.


저 문장도 딱 그 무렵 처음 읽은 것이다.

지금도 나는 사랑에 대해서 남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저 문장을 밑밥에 깔고 시작한다.

내가 애정한 유물론과 저 문장은 묘하게 맞닿아 있다.

결혼 이후 부부 싸움을 하고 나면 혼자 이 문장을 다시 읽으며 나를 합리화 했고 그녀를 저 문장 위에 올려 놓고 비겁하게 숨곤 했다.

'이 균열들은 너의 생활의 결과 때문이다. 옥토가 박토가 되고, 몹쓸 작황의 작태는 너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도대체 나를 사랑해달라고 너는 말하는데 너의 파종은 어디쯤이었으며 비료라도 뿌릴 생각은 해본 거냐?' 이런 생각들을 했었다.

이런 말을 던진 적이 있었다.

"너는 내가 종점은 아니더라도, 너의 그 많은 정류장 중 하나쯤은 되니?"

생각의 시작도, 발화의 끝도 '너'였다.

덕으로 시작한 것이 탓이 되었다. 못난 나의 연속이었다.

마늘은 대답했다. "너 나 질투하니?"


'나'는 어떠했는가?

마늘의 음주나 태도를 논할 자격이 과연 있었는가?

그렇지가 않았다.

많은 낭인들이 중심을 잃은 나를 새벽에 집에까지 바래다 주었고, 취객은 들어와 밖에서 얻은 마음속 속아지를 참지 못 하고 바닥을 쿵쿵 쳤다. 두 여자가 놀라서 나오면 꺼이꺼이 운다.

나의 화를 참지 못하고 다섯 살 딸을 밀어 상에 걸려 넘어지게 한 적도 있다.

과연 얼마나 너의 '나'들을 돌아봤는가? 그저 수그릴 수 밖에 없는 일이 참 많았다. 떠올리니 또 쪽팔리다.

마늘이 가끔 하는 말이 있다.

"쯧쯧, 나이값 해야지? 너 님이 나보다 7살이나 더 많아요!"

싸움의 빈도는 줄어들기 시작했다. 누군가 말했던 '10년의 법칙' 대로 10년이 지나니 잦아들었다.

서로를 덜 자극하는 법을 깨닫기도 했거니와 나의 부족함을 덜 들키는데 점점 노련해진 덕이었다.

싸우고 나면, 지나고 나면, 생각해 보면 부끄러움과 민망함은 주로 나의 몫이 되었다.

아무튼 그 기간 속 최대의 피해자는 내 딸이긴 했다. 미안하다.


어제 저녁 딸의 명언도(태도가 사람이다.) 명언이지만 몇 달 전 딸이 기막힌 말을 했었다.

부부 싸움을 하고 난 다음날 아침. 그 장면을 고스란히 목도했던 딸이 말한다. 마늘은 집에 없었다.

"아빠. 기분이 나쁠 수 있고 생각이 다를 수 있어. 그런데 예의는 갖출 수 있는 거 아니야? 예의 있게 말해봐. 그럼 덜 싸우지 않을까?"

띵. 쿵. 탁.


저번에 어떤 분과 저녁을 먹으며 얘기를 나누었다. 그 분은 집에서 가족들과 모두 존대말로 대화를 나눈다고 말씀 하셨다. 속으로 '그럼 싸울때도?'라는 생각을 해봤다. 시뮬레이션을 돌려봤다.


"저기요? 왜 저를 짜증나게 하셨어요?"

"당신 정말 이렇게 정리를 안 해놓으셔도 되는 거에요? 설거지는 안 해놓으실 수 밖에 없었던 거에요?"

"샤워 하시고 나면 화장실 바닦을 번거로우시더라도 한 번만 훔쳐달라고 제가 말씀 드렸잖아요?"

"왜 이렇게 늦게 들어오셨어요? 택시가 안 잡히던가요?"


상상이 시작되니 그 다음 대화들에 집중하기 힘들었고 몰래 웃고 삐죽이느라 힘들었다. 높은 분이었기 때문이다.


아침 미라클 모닝글 포스팅을 마치고 책을 덮다가 윗 사진의 글귀를 발견했다.

일단 내가 제일 좋아하는 저 책은 집에 두 권이 있는데 며칠 전 저 책을 짚어들었을 때의 의문점들이 저 날짜(2011.7.11)로 인해 일거에 풀렸다.


1. 이 책은 바로 마누라와의 썸 극초반에 '조공'으로 바친 책이다.(시기가 딱 그 무렵)

2. 내가 포스트잇을 저렇게 지저분하게 촘촘히 붙여 놓았을리 없는데 마누라의 흔적이다.(패턴이 딱 그녀)


글귀를 옮겨본다.


인간이 추구해야할 가장 궁극적인 미학은. '장엄함'과 '겸손함'의 미학이 아닐까?

그 지향에 있어 든든한 받침이 되는 것은 '독서'에 있지 않을까?

스스로의 삶을 선택하고 결정함에 있어 분명한 '자기 의식'과, 인간 일반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 그리고 인간 특수에 대한 '적극적인 사랑'을 잃지 않는 영혼이 되길.

장엄과 겸손으로 구체적인 사랑을 획득하는 일상의 주인이 되길.


- 2011.7.11 -


인간을 사랑할 수 있는 평범한 능력이 아직 있다고 여기는 바이니 아름다운 첫 시절 그 마음의 반의 반에라도 다시 도전해 보련다.

저 문구대로 좀 살아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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