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다시 불면증이 왜 자기 자리를 뺐어갔었냐고 섭섭해하며 예봉을 매일 세우고 있다.
가족, 사무실, 블생에 대한 상념이 급증한 나.
나에게 글쓰기는 분명 '치유인데, 나의 블로그 글쓰기 형식은 '일기'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나의 주변을 계속 상기하고 나를 반추하고 그것을 나의 언어로 풀어내는 과정이 된다.
'글쓰기'는 어떤 종류의 자극 혹은 특별한 긴박감에서 비롯되는 것이라 해본다면 나에게 블로그 글쓰기는 가면을 씀으로써 '개인적인 것'을 '공적인 것'으로 전환하여 나를 내비추어 치유하는 과정이 된다.
나의 고정값들에서 낯선 특질을 빨아올리는 고된 정신적 작업이며 나에게 글쓰기는 관찰하는 사실에 질서를 부여하고 삶에 의미를 불어넣는 작업이 된다.
그런데 아주 그런데. 다... 좋은데.
어제 내 '미라클 주니' 단톡방의 누군가의 말씀대로 내 마음속에는 용광로가 있다.
나는 날뛰는 산짐승 스타일이라서 내가 괜찮을 때는 글쓰기가 치유가 되고 언어를 계속 팽팽하게 많진다는 것이 아주 좋은 약이 되지만, 내가 약해지거나 멍울져 있을 때는 내가 사랑하는 그 언어들이 비수가 되어 나를 찌르고 후벼파 피투성이가 된다.
딱 어제 저녁 10시 언저리부터 큰 불이 무참히 번져 올라왔다.
그 무렵부터 나는 딸과 언쟁이 붙었다. '숙제' 때문이었다.
가타부타를 넘어 나랑 마늘은 어제 오후에 큰 결단을 내렸다.
딸내미가 3년 넘게 다니던 '피아노 학원'을 그만두게 하고 '구몬 수학'을 빼주기로 했다.
매일 숙제에 치여 사는 하니가 너무 버거워 보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밖에 없는 외동딸이 조금 더 웃을 수 있는 시간이 생기길 바랐다.
나는 아이가 아직 '아이'일 때가 참 좋다.
종이에 그림을 그리고 슬라임 놀이를 할 때 좋다. 친구들과 즐겁게 만나 자전거를 탈 때가 좋다. 외동의 외로움의 천형에서 조금 벗어나 자신의 웃음으로 자신을 데워갈 때 참 좋다.
체르니 100번을 치고 있는 아이를 중간에 그만두게 하는 것은 나에게 큰 결단이었다. 악기 하나는 다룰 줄 인간이 되기를 강하게 원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예전에 고등학생 때 체르니 40번까지 치고 중간에 피아노를 그만둔 적이 있다. 두고 두고 그 결정은 내게 아픔이 되어 나를 찔렀다.
어제의 결단은 나에겐 '고통'이지만, 딸에게는 '축복'이 될 것 같아 그리했다.
그런데 '숙제'로 또 싸움이 터져 버린 것이다. 아이는 서러움에 펑펑 울었고 여러가지로 쌓인게 많았던 나는 어제밤 소리를 많이 질렀다.
불면증이 다시 집채 만한 파도가 되어 나를 집어 삼키고 있는 요즘, 마늘이 8일 연속 밤 늦게 들어 올 수 밖에 없는 요즘, 개인의 이기심으로 조직의 자생을 깨트리는 짓이 자행되고 있는 요즘 나는 무척 힘든 와중이다. 꾸역꾸역 '글쓰기' 하나로 버티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데. 어제 밤 광활한 침윤이 왔다. 선혈이 낭자했다.
오늘 이른 새벽 '미라클 모닝' 글을 못 올리겠다고 단톡방의 '사랑주니'님에게 글을 올리고 새벽 2시가 되어서야 잠을 청했다.
새벽 3시 부터 30분 단위로 깨기 시작했다. 저주 받은 몸, 저주 받은 정신.
전형적인 불면암의 패턴이 다시 나를 잡아먹고 있는 시절이다.
새벽 4시 40분에 깼다. 나는 올리지 않았는데 손가락이 스쳤나 보다.
'미라클 모닝'글에 '굿모닝입니다.'라는 나의 메세지가 올라갔다. 오늘 아무 것도 올릴 생각이 없었는데 올라갔다. 바로 '사랑주니'님의 안부 카톡이 왔다.
'앗. 괜찮으세요? 일부러 톡의 답장을 안 하고 있었는데..."
'어. 근데 저는 굿모닝입니다. 이것을 치지를 않았는데 글이 올라갔어요. 일단 다시 누워볼께요.'
'그러세요. 재미있는 생각만 하면서'
다시 잠들 수 있을리가 없었다. 나는 여전히 불면증의 총체이다.
오늘 일기도 쉬어 가려 했던 나는 '사랑주니'님과 긴 대화를 하며 치유가 되어 갔다.
'사랑주니'님께서 이 혼란스런 감정들을 글로 써보시기를 추천하셨다. 사양했다가, 고민하다가 결국 지금 이렇게 쓰고 있다. 그랬더니. 풀린다. 녹는다. 들여다 봐진다.
블로그에 글을 쓴 이후 언어의 조탁과 그 언어들의 배열을 좋아하는, 그 언어 자체의 풍미를 간취할 줄 아는 많은 글벗들과의 필담이 나의 삶을 추동하고 버티게 하는 큰 안받침이 되어가고 있다.
그런데 나는 그냥 이런 '사람'들을 만나게 되어 좋다. 따뜻한 사람들이 좋다. 이 정다움이 좋다.
내가 '딸바보'인 이유는 결국 내가 '사람바보'이기 때문이다.
이 새벽이 이 아침이 되어 버린 이 시간.
나는 또 이렇게 1포를 올린다.
'사랑주니'님께 깊이 감사하다. 참 좋은 분이다. 나한테 다시 이 계절의 초침이 아직 어디를 가리키고 있는지 알려주었다.
신영복 선생님의 책 문구가 떠오른다.
'북극을 가리키는 지남철은 무엇이 두려운지 항상 바늘 끝을 떨고 있습니다. 여윈 바늘 끝이 떨고 있는 한 바늘이 가리키는 방향을 믿어도 좋습니다. 만약 그 바늘 끝이 전율을 멈추고 어느 한 쪽에 고정될 때 우리는 그것을 버려야 합니다. 이미 지남철이 아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