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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 예찬, 새벽 예찬

by 하니오웰


'미라클 모닝' 방과 '결실자(결정을 실행하는 자)' 방 대장님 말씀으로 지금 제주도와 부산에는 비가 내리고 있다고 한다.

두 분 다 알수록 참 좋다. '진국'이다. '사'며들었고, '센'며들었다.

두 방 다 나는 주체할 수 없는 장난기로 가끔 휘젓고 다니는데(앞 방이 더 심함), 말매무새를 다질 일이다. 그냥 그러고 싶다. 그래야 한다.

나는 사람을 좋아한다.

어쩔 수가 없다. 아빠도 엄마도 그냥 '정꾸러기'다.

결혼도 그런 처자랑 했더니 딸도 그대로다. 딸은 외동이라 흔전한 '정'을 더 갈급해 한다.

나는 연년생 형이 하나 있는데 스타일이 반대다.

나는 방약무도, 예측불가, 오두방정, 반골3세, 산만총체, 거친 소심, AM의 총체

형은 모범수, 곱단이, 인내의 아이콘, 소심한 소심, 공부버그. 책벌레, FM의 총체


내가 어릴 때 우리집은 북적였다.

아빠는 가끔 집에 들어왔는데 들어올 때마다 사람들을 엄청 데리고 왔다.

두 아들의 엄마, 직장인이었던 엄마, 약골 엄마는 그 시절이 제일 힘들었지만 가장 낭만적인 시절이었다고 회상하신다.

서슬퍼런 군사 독재에, 총칼에 몸 끝으로, 펜 끝으로, 마음 끝으로, 자신의 전존재와 목숨을 바쳐 싸우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풍류가 있었고 뜨거운 열정이 있었다. 인간에 대한 사랑, 그것도 추상을 생략한 구체의 사랑을 행하는 사람들이었다. 밤새 이 나라의 '민주주의'와 '정의로운 역사의 구현'에 대해 고민을 나누는 '참위인'들이었다.

형장의 이슬로, 고문으로 한 명씩 죽어갈 때마다 엄마는 꺼이꺼이 울었다. 그렇게 우리 역사는 그들의 '피'와 '양심'을 먹고 자랐다.


밤 열시면 양반이고, 새벽 두세시에도 들이닥쳤다.

집에 먹을 것이 없으면 아빠는 소리를 질렀다.

'여편네가 뭐하는거야? 내가 평소에 뭐 좀 쌓아놓으라 했지?"

마침 새벽에도 여는 구멍가게가 신기하게 있었단다. 외상도 잘 해주는.


내가 좋았던건 그런 날에는 '뽀찌'가 들어온다는 것이다.

울 엄마는 어릴 때부터 외부 우발 용돈을 천 원 단위까지 수거해가는 걍팍함이 있었다.

그런데 그런 새벽의 혼몽, 취몽 상황의 용돈은 몰래 쟁일 수가 있었다.

이실직고 하는 용띠 새끼만 '단도리'하면 되는 것이었다. 물론 FM이라 단도리로 매조지 하기가 너무 힘들어 나중에는 포기했다. 니 맘대로, 터진 주둥이를 쓰라고 했다.

"어? 형은 빋았어? 아저씨가 내 껀 까먹으셨나보다. 그리 안 봤는데 진짜 섭섭하네."

잔머리 오웰의 거짓말은 춤을 추었다. 엄마는 알면서도 넘어간 적이 많았으리라.


결혼을 하고 나니 처음엔 나도 즐거웠다. 친구가 많은 나랑 와이프는 초반에 계속 닝겐들을 집으로 불렀다.

그런데 아이가 태어나고 늙은 아빠의 방전이 잦아지자 다 싫어졌다. 십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많은 친구들을 고이 보내드렸다. 요즘 술을 안 마시니 더 떠나간다.

그리운데, 아쉬운데 다시 곶감 항아리에서 '곶감'만 빼먹어 가며 노는 종류의 '놈'은 이제 좀 싫다.

이제는 다른 종류의 시공간이 좋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대로 그런 의미가 있겠지.


나는 전처럼 외롭지가 않다.

읽고 쓴 뒤로는 '홀로' 시공간이 가장 좋다.

나의 내가 선택한 새벽의 '고독'이 하루의 나를 견디게 해준다.

사무실에서도 그렇다.

내가 너들 앞에 우두커니 그냥 앉아 있는 경우가 많아진다. 고장 난 기계처럼 '침묵과 단상'으로 쉽게 빠져들고 알 수 없는 말을 혼자 지껄인다.


나는 '새벽'이 좋다. '툭' 하고 매일 오는 나의 새벽에, 나의 시간과 공간이 '툭' 응답한다.

바닷가 통창에서 파도를 보며 글을 쓸 수 있는 작업실은 아니지만, 나의 휴식과 사념, 어쩌다 빗소리가 더해지는 적막한 새벽이 좋다.

도시의 가도를 구르는 차량 소리가 들리지만 그 시간에는 그 소리에조차 엷은, 정체 모를 '향수'의 정서가 올라온다.

어딘지 모르는 곳에 무언가를 두고 온 느낌, 찾아가면 되살아 나올 추억이, 오롯이 나를 그 저녁 조구상에서부터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라는 느낌.

환각인데, 잡힐리 없는데, 뿌옇기만 한데 선명하게 망실된 나의 아롱진, 부박한 점들일일텐데 그냥 그런 밑천 없이 따스한 느낌들이 있다.


산더미 같은 일과 마주 앉아야 하는 몇 시간 뒤가 분명하지만 나는 이래 '새벽' 덕을 보고 있다.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나보고 자주 말했다.

그렇게 날카롭지 말고 삐딱하지 말고 부드러워지라고 행복을 기원한다고.

나는 때때마다 생각했다. 너들이 댁들이 수명이 수천이 되서 행복해지라 하면 나는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인가? 부디 감사해서 곰곰히 생각해 봤지만 답은 '불가' 였다.


그런데 나는 요즘 '행복'한 것만 같다. 아니 아직 정확한 행복에는 다다르지 않았을지라도 '평온'에 깃들었다. 신을 믿지 않지만 내가 행복하지 않다고 해서 도대체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냐고 허공에 따지기만 하는 것은 '오만'이라고 이제 말할 수 있겠다.


나는 내년에 오십인데 올해부터 쓰기 시작해서, 새벽 동지들이 생겨서, 읽는 것까지 가끔 더해서 행복해다.

분명 더 좋은 '오십'을 맞이할 수 있을 것 같다.

'낭만'이나 '행복'이나 '고독'이나 '외로움'은 인간이면 떠나 보낼 수 없는 단어들이다.

그것들을 피하려는 것이 옳을지 받아들이는 것이 좋은지는 각자의 몫인건데, 저 중 어떤 단어들을 더 돋우어 삼아 볼지는 개인의 몫인데 그저 지금은 오십이 될 때까지 '심상'에 비쳐 흘러가는대로 두어볼 일이기도 한 것 같고 나는 새벽부터 또 생각이 계속 터진다.


나는 아까 신새벽 블생에서 알게 된 친구와 잠깐 '일상의 평범함'이 얼마나 어려워서 위대한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블생에서 만난 정말 비단결 같이 착한 마음을 가진 친구. 그래서 나는 이 블생이 좋다. 이 끄적임이, 그 숱한 필담의 인연들이, 조금 더 따뜻하고 섬세하고 솔직한 사람들이 좋다.

길을 걷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그 귀한 황금의 '써니'들이 고마울 따름이다.


글을 닫으려는 찰나. 이쁜 딸이 잠이 깨서 들어왔다. 무릎에 앉더니 보고 싶었단다. 아침을 해달란다.

"김치 볶음밥 해줄까?"

"토마토 잘라줘"

어제 부른 '부모님 은혜' 리코더를 또 한 번 불러준다.


일상이, 평범이, 평온이, 현시점이 좋다. 적어도 딱 이 아침은.

가끔 '행복'도 할 일이다.


오늘도 약속, 월요일도 약속이다. 근데 벌써 조금 가기 싫다. 가면 잘 놀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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