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일이 많았다.
문자에 놀라고. 전화에 놀라고.
태어날 때부터 적잖은 풍파를 많이 겪어.
새초롬한 충격들에 익숙해질 만도 한데.
걱정과 안도, 기대와 실망의 쉼 없는 너울에 휘청망청이다.
글 같은 사람 되려면 아직 멀었다.
삶과 죽음, 일상과 사고, 정상과 비정상을 오가는.
이 변곡 투성이 삶에서 요즘 다시 깊이 느끼는 것은.
'나나 잘 살자'이다.
아침마다 몇 마디씩 나누고 서로를 시작하는.
귀한 블친과 오늘도 '툭' 이런 얘기를 던졌다.
무지하게 좋아하고 존경하는 블친 1, 2호 중 한 명이 '척' 받아 준다.
세상 투성이가 좀 귀찮고.
서로 애써 미워하며 불평과 불만을 더해갈 때.
그 이기심과 질투에 질려 아무 대꾸도 하기 싫어질 때.
이 친구도 '나나 잘 하자'고 생각 한단다.
'툭'하면 '척'이다.
비렘 수면 전문가 블친 2호님이 일어나시면 또 다른 혜어들을 더해줄 것이다.
인간의 언어로 지칭하거나 다다를 힘이 없는.
고적한 그 곳에 우연히라도, 잠깐이라도 흩내렸다 다시 멀리 떠나고 싶은 마음이.
글을 쓴 뒤로 자주 든다.
생의 시종 동안.
인간은 태어나기 이전의 필연의 비밀들을 누설하지 않으려.
우연의 망각을 거듭한다.
저 쪽 세계의 질서와 섭리들을 잊어버린 채.
이 쪽 세계의 혼돈과 난잡에 젖어들어 가는 게 우리 삶일진데.
그래도.
이 나이쯤 되니.
말과 행동이 생각의 속도를 전혀 따르지 못 하지만.
글로는 써진다.
타인의 잘잘못이나 세상의 시시비비.
감정의 섭섭함이나 이성의 부족함을 굳이 드잡이하며.
간섭하고 비난하며 오지랍 충천으로 시간을 흘리고.
입을 더럽힐 바에.
내가 떠나온 곳과 돌아갈 곳.
우연한 바람에 흩어 날아온.
내 '생'의 씨앗을.
'사'의 선택은 못할지라도.
필연의 그곳에 내리게 할 수 있도록.
나나 잘 하고.
나나 잘 살 지어다.
좀 그래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