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의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에서의 브리핑을 봤다.
네이버 대표 출신의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발표.
말은 놓이지 않았고, 호흡은 흔들리지 않았으며, 내용은 뚝닥거리지 않았다.
여러 정책 방향에 대한 흔들림 없는 정확한 설명.
딕션은 맑고, 방향은 곧았다, 감성은 잔향처럼 오래 남았다.
불면의 새벽 등정이 제 값을 했다.
에누리와 수사를 걷어낸 말들 속에서 국가의 미래 기조와 가치가 잔잔하지만 단단하게 자리잡힐 것 같은 예감이 스며들었다.
인공지능(AI) 기술이 우리 삶 깊숙히 파고들어, 사회 전반에 혁신적인 변화를 일으켜 기존의 가치체계를 뒤흔들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AI는 단순한 도구로서의 기술이 아니다. 인간의 인지 능력을 뛰어넘어 예측, 분석, 창작 등 다양한 영역에서 인간의 역할을 대체하고, 점차 압도하고 있다.
문명의 기준과 표준도 변화하고 있다.
과거에는 정보 습득과 축적, 기술 숙련과 반복적 단련이 경쟁력이었다면, 이제는 AI를 이해하고 활용하는 능력이 새로운 경쟁력으로 자리잡았다.
몇 주 전 운 좋게 듣게 된 명사 특강에서 성균관대학교 최재붕 교수는 하루 30분 이상 AI 공부를 권장했다. 새로움에 대한 전향적 시간 투자가 변화와 굴절 속에서 생존을 담보하는 의미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그 때 산 'AI 사피엔스' 책을 읽어야겠다.
나이와 세대, 위치와 조건을 넘어 디지털 대전환에 들어가는 것을 두려워하면 안 된다.
디지털과 AI를 '약탈자'와 '파괴자'로만 보는 시각과 고집으로, 때 아닌 쇄국으로 스스로를 쇠하게 하며 어리석음의 동굴로 들어가는 것이 자신을 지키는 길이라 착각하면 안 될 것이다.
우리는 늘 뒤쫓는 자였다.
값싼 노동력으로 땀을 흘리며, 앞선 자들의 기술을 빠르고 싸게 흉내 내며, 추격자의 운명을 살아왔다.
구조적으로, 역사적으로 추노의 길 말고 다른 길이 없었다.
AI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미국과 중국은 이미 넘사벽의 1, 2위로 솟아올랐다.
닿을 수 없는 몇 cm은 더 높이 있도록 인정하되, 성찰적 인정이 필요하다.
한국은 세계 7위권, 결코 낮지 않은 자리에 서 있다.
개인의 각성과 노력만이 힘이 될 것이다. 풀뿌리 AI주의를 자리잡게 해야한다.
기존에 대한 그리움과 향수, 이유 모를 거부감이 상당하겠지만 어차피 가지 않은 길을 가야하는 것이 사피엔스의 숙명이다.
새 정부는 실용의 기치를 분명 세우고 있다.
소년공 출신의 명민한 실용주의자로 수장이 바뀌자 국무위원들은 국무회의 직전 촌각의 시간까지 공부하고 회의한다.
탑차로 소맥을 공수하여 객쩍은 동공만 바꿔가며 술독에 빠져 살던 브로의 나날들이 아쉽지만 역사는 돌릴 수 없다.
정치적 입장과, 이념의 색깔을 넘어 국가든 개인이든 '실용'이 생명이다.
AI는 선택이 아닌 당위이다.
물결을 피하거나 넘는 것만이 요령이 아니다. 물결을 타는 것이 능사다.
며칠 전 친구와 대화 했다.
"오웰. 어차피 지구는 시한부야. 그러니 자식에, 부모에 집착하지 말고 너 자신을 즐기며 살아"
"알지. 그럴거야. 당연히. 그런데 엄마는 가볍게 덜어낼 문제는 아니고, 딸을 좀 가볍게 내려둘 연습은 할거야."
그 친구는 그렇게 살고 있다.
결혼은 했지만 자식은 없는 친구. 낚시와 골프, 독서와 여행을 균형 있게 사수하며 사각형의 예각과 둔각의 순서만 바꿔가며 잘 살고 있다.
그런데, 그래서.
더. 잘. 즐기려면 AI의 도래를 구체적으로 이해하고 새로운 문명의 전환을 꾸준히 내화, 체화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