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꽝이다'​

by 하니오웰


3hGmzPYP7R6.jpg



스위치를 켰다.

집으로 복귀한 이후, 매일 엄마와 은평구립도서관으로 올랐다.

오르막 경사가 심한 도서관이었다.


1995년 겨울, 대학 본고사 이후 제대로 공부를 해본 적 없는 내가 엉덩이 힘을 회복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처음엔 칸막이 자리에 앉았다.

피가 더러워 성질 머리가 바특했다.

옆자리, 앞자리 사람이 내는 소리가 신경 쓰였다.

면상과 소음의 연원을 확인하는데 시간을 들였다.


다리만 살짝 걸면 뒤집힌 바퀴벌레 꼴이 되어 처맞을 놈이 바삐도 들이댔다

소리의 주인이 화장실 간 틈을 엿보아, 포스트잇을 붙였다.


'죄송한데 소리가 거슬리네요. 화이팅^^'

'복도는 공용 공간입니다. ㅋㅋ'

'Mute, please'


짧게 쓰되 소심한 의례를 더했다.

어떤 이은 두리번, 어떤 놈은 씩씩거렸다.


며칠을 그렇게 흘려 보냈다.

영 마뜩지 않았다.

도서관 시보 기간이었다.


사방이 뚫린 평상으로 자리를 옮겼다.

의자는 여전히 낯설었다.

처음엔 서먹했지만, 차츰 익숙해졌다.


산만하고 집중력이 얕은 나는 일정한 리듬의 지속에 취약하다.

수없이 눈알을 굴리고, 틈만 나면 기지개를 켠다.

저 끝에 앉은 사람은 아까도 지금도 같은 자세다.

자세히 보니, 조는 거다


'저 놈은 무슨 공부를 할까?'

'펜은 뭘 쓸까?'

'얼마나 공부했을까?'


그 사람이 여자면 호기심은 치솟는다.

옆자리에 앉기 위한 작전에 돌입한다.

며칠 동안 오는 시간을 체크하여 그때를 맞춘다.

엉거주춤 출입구에 서서 기다린다.


'왔다!'

그런데 웬걸,

그 아이가 모서리 자리를 선택했는데 옆에 이미 누가 앉아 있다.

'꽝이다'


그렇게 또 며칠이 갔다.






이전 04화병신 인생의 삯을 이제 치뤄야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