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발의 할머니가 방으로 들어왔다. 입고 있는 승복은 언제 갈아입었는지 지저분하기 이를 데 없었다. 찌든 담배 냄새도 났다.
“어디가 아파서 오셨소?”
엄마는 얼른 일어나 상황을 설명했다.
“얘가 눈이 자꾸 나빠져서, 여기 가면 고칠 수 있다 해서 왔어요. 명금이 소개받고 왔으니 잘 좀 부탁드려요.”
엄마가 고개를 조아렸다. 할머니는 고개만 작게 끄덕이고 내 뒤에 앉았다. 그리고 갖고 들어왔던 천을 풀어놓았다. 내가 뒤를 돌아보려 하자 엄마는 얼른 내 얼굴을 붙잡고 자신을 보게 했다.
“돌아보지 말고 엄마 보고 있어.”
이때껏 그토록 흐트러지는 엄마의 눈을 본 적이 없었다.
차가운 알코올이 내 정수리며 뒷머리를 훑었다. 나름 소독을 하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순간, 정수리에 무언가 틀어박혔다 나갔다. 후끈한 열기가 뇌를 휘저어놓는 것 같았다. 심장이 머리로 옮겨왔는지 혈관이 터질 듯 두근거렸다. 두 번째 세 번째 뾰족한 무언가가 두개골을 뚫고 들어오는 것만 같았다. 주르륵 뒷머리에서 뜨끈한 무언가가 목을 타고 흘러내렸다. 엄마의 눈은 더 이상 커질 수 없을 만큼 확장됐다. 나도 모르게 손이 통증 부위로 올라갔다.
내 앞에 무릎 꿇고 앉아 있던 엄마가 벌떡 일어나 나를 잡아당겼다.
“그만! 그만하세요.”
엄마가 벌벌 떨며 가방에서 손수건을 꺼내 침이 박혔던 머리를 지혈했다.
“정말 그만하실 건가요?”
할머니가 어떤 감정도 느낄 수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는 말이 나오지 않는지 고개만 끄덕였다. 노인은 한동안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바닥에 깔아놓은 침을 내려다보았다. 침은 대못처럼 두껍고 끝이 뾰족했다. 침을 보자 뒷머리가 더 후끈거리며 아팠다.
상처에서는 피가 계속 흘러내렸다. 방바닥에 떨어진 손수건을 주워 머리 상처를 누르며 밖으로 나갔다. 엄마가 벌받는 아이처럼 내 뒤를 따라왔다. 자동차에 올라타 가자미눈을 뜨고 엄마를 노려봤다. 엄마가 불현듯 두 손에 얼굴을 파묻고 산비둘기처럼 꾹꾹 소리 내 울었다. 한참을 울던 엄마가 휴지를 꺼내 얼굴을 닦으며 말했다.
“엄마가 진짜 미안해! 엄마 죽을 때 우리 같이 죽자!”
그때 알았다. 엄마가 비로소 내 장애를 받아들였다는 것을.
“엄마!”
내가 소리 내어 부르자 엄마가 굵은 눈물방울을 매단 채 나를 애처롭게 바라봤다.
“엄마 죽을 때 같이 죽자고? 엄마나 죽어! 난 아직 창창히 더 살 거거든? 어디 물귀신처럼 물고 늘어지려고 해! 난 엄마 없어도 잘 살 거거든!”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 조승리
우리 엄마도 나를 데리고 날이며 달이며 절에도 가고, 이상한 약수터에도, 용하다는 한의원에도 갔다.
154번을 타고 독립문에 있던 한의원에 가서 숱하게 뜸 치료를 받았다,
아빠의 후배 여자 친구가 한다는 한의원이었는데, 약을 지어줄 때 장어를 엮어 팔았다.
다리 병엔 기름이 좋다며, 살아 있는 걸 내장까지 다듬어 포장해 주곤 했다.
엄마는 매일 장어 죽을 끓였다.
기름 냄새가 집 안을 가득 채웠고, 억지로 입을 틀어막고 삼키다 여러 번 게웠다.
그 한의원인지 장어집인지는 삼 년간 기름 장사를 하더니 망했다.
엄마는 많이 아쉬워했다.
혈액 순환이 안 되는 다리는 여름에도 냉족이었다.
모래내 쪽에 물리치료소가 하나 있었다.
싸구려 전열기를 켜두고, 하얀 가운을 입은 젊은 남자가 내 다리를 위아래로 뒤흔들었다.
“조금 더 버텨야 합니다. 피가 도는 게 느껴지죠?”
엄마와는 다른 우악스러움에 매번 울었다.
확실히 하고 나오면 걸음은 좀 나아졌다. 그때뿐이었다.
치료비인지 악력비인지를 감당 못 하고 두 달쯤 하다 말았다.
다행스러운 절망이었다.
평범함과 예측 가능성의 범주에 묶이지 못할 것이라는 걱정,
정상의 평균이 품고 있는 배타성 때문에 시들고 말 것이라는 두려움은
비낀 새끼를 둔 어미를 빈 지갑 괴물로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