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이후 아이들은 우리를 덜 놀렸다.

by 하니오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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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중학교 1학년이 되었을 때, 같은 반에 지적 장애가 있는 아이가 있었다.

몸집이 반에서 제일 컸다.

그 친구는 유독 나를 잘 놀렸다.


“야, 병신아, 너는 왜 병신이야?”

우리는 같이 뒤에서 병신 소리를 듣는 동료였다.

그래서 더 섭섭하기도, 덜 서운하기도 했다.


“야, 하지 마, 나 그렇게 부르지 마, 기분 나빠”

내가 그렇게 말하면, 해맑게 웃으며 머리를 긁었다.

“미안”


목소리는 우렁찼다,

말할 때마다 구강에 침이 몰려, 침이 많이 튀었다.

말끝마다 침을 다셔 삼키는 소리를 냈다.

웃을 때마다 침을 질질 흘렸다.


반 친구들은 나보다 그 친구를 훨씬 더 자주 놀렸다.

아마 재미가 더 있었을 것이다.

무슨 말을 하며 놀려대도 침 흘리며 머리를 긁는 그 감개무량한 순진함이

그들에게 더 고소한 쾌감을 줬을 것이다.


어떤 날이었다.

씩씩거리면서 교실 안으로 들어온 그 친구가 대뜸 나한테 소리쳤다.

아마 밖에서 숱한 비아냥을 먹고 상처투성이가 된 마음으로 연 문이었을 것이다.


“야, 너 다리병신, 왜 태어나서 그렇게 병신으로 사냐? 부끄럽지도 않냐?”


장애라는 것은 극복이나 조기졸업의 영역이 되기 어렵다.

함께 데리고 살아야 하는 친구이자 원수다.

단지 자주 잊고 살려고 애쓸 뿐이다.

잊어야 버티고, 체념해야 살아진다.

그것이 나를 지키는 적절한 방법이다.


상처는 생명력이 질겨서 어딘가에 잠잠히 잘 숨겨 두어도,

느닷없이 튀어나와 등짝을 후려친다.


나는 그 친구를 한 번도 놀린 적이 없었다.

짠하게 여겨, 학교 뒤 작은 공터에 데리고 나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곤 했다.


그날, 나는 폭발했다.


“병신 새끼야. 보자 보자 하니까! 너는 그럼 왜 태어났냐? 침 흘리려고 태어났냐!

웃기는 또 뭐가 그리 좋아서 웃어대냐. 니가 웃으면 남들은 ‘병신’이라며 더 비웃는 거 아냐?”


친구는 나한테 돌진했다. 그 큰 몸으로 나를 누르고 주먹질을 했다.

몇 대 맞고 있을 무렵, 반 통이던 주완이가 그 친구 머리를 발로 걷어찼다.

국민학교 동창 놈이었다. 기자촌에서 함께 자란 친구였고 평소에도 나를 잘 챙겨주던 녀석이었다.

주먹이 제일 셌던 그 친구 덕에, 나는 중학교 1학년을 비교적 편히 다니고 있었다.


나는 정신을 차리자 부아가 치밀어 의자를 들었다.

주완이한테 한 방 제대로 맞고 버둥대고 있는 친구를 의자로 내리찍었다.

다시 의자를 들려는 순간, 주완이는 내 귀싸대기를 날렸다.


정신을 한 번 더 차리고 보니 우리는 광대였다.

우리를 둘러싼 얼굴들, 흥미진진해서 죽겠다는 그 달뜬 표정들을,

나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머리를 벽에 찧어 피를 흘리고 누워 있는 친구는,

멍하니 나를 보며 침을 흘리고 있었다.

우리는 울다가, 웃었다.


그날 이후 아이들은 우리를 덜 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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