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만 더 기어라.'

by 하니오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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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의 말이 두둑하게 남았다.
“평생 휠체어 신세를 질 수도 있습니다.”

그 한 문장이 내 귀에, 심장에, 하루에도 몇 번씩 다시 박혔다.

먹먹함보다 뜨거운 게 속에서 세차게 들끓었다.

불안보다 차갑고 두려움보다 묵직한 감정이었다.


나는 며칠을 지독하게 앓았다.

몸져 앓을 수는 없고, 마음으로 거세게 앓았다.

줏대 없는 억울함과, 뼛속 시린 분노에,

넘어지고 다시 일어섰다.


무엇보다, 늘 낯선 객이 되어 돌아오던 남편의 그날 밤이 의구스러웠다.

그날은 묵은 진물의 밤이었다.


밤마다 아이를 안아주고, 다리를 펴주고, 허벅지를 주물렀다.

아이들이 잠들면 숨 삼켜 울었다.


그 숱하던 어느 밤, 나는 하얀 원고지를 꺼냈다.

나는 믿지 않기로 했다.

아이의 시간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무례한 세상의 외침에 일일이 대답할 이유는 없었다.


두껍게 펜을 들었다.


“내 새끼한테 휠체어는 없다.”


글씨는 삐뚤었고, 잉크는 번졌지만,

그 말을 내 인생의 아지로 삼기로 했다.

아이를 향한 맺힌 맹세였다.

몇 장을 더 써, 집안 곳곳에 붙였다.


아이는 계속 기었다.

아이에게 그것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었다.
땅을 점령하듯, 한 뼘씩 차지하는 일이었다.


아이는 온몸을 바닥에 붙이고,

손바닥으로, 팔꿈치로, 무릎으로 세상을 더듬었다.
호기심이 많아 무엇이든 손에 쥐었다.

물고, 빨고, 찢고, 던졌다.

세상이 자꾸 문을 닫으면, 더 자꾸 손을 내미는 아이였다.


하루 여덟 시간 넘게 기어 다니니 바지 무릎은 늘 닳았다.
사흘에 한 번꼴로 구멍이 났고,
나는 매번 실과 바늘을 꺼내 기워야 했다.
기워도 금세 다시 터졌다.

‘나는 멈추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 같았다.
남들처럼 서지 못 했고, 나처럼 앉지 못했다.
계절이 돌아도, 몸짓은 제자리였다.

하지만 그 제자리에서,

아이의 팔은 단단해지고,

시선은 조금씩 멀리 닿았다.


느리도록,

아름답게 찬란한 나날이었다.


나는 그 아이의 등을 보며 다짐했다.

'조금만 더 기어라,

못내 그리울 그날의 직립을 위해,

마음껏 웅크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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