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대신 적힌 것

by 하니오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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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자분, 어머니가 기본적인 일상생활은 가능하신가요?”
“사실 제가 일상을 엿보지를 않아서 정확히는 모르겠어요.

매일 가시는 곳, 도서관이나 영상 자료원은 곧잘 다니시는 것 같아요.”


"운전은 못 하실 것이고, 대중교통은 잘 타시나요?"

"네, 지하철을 주로 타시고, 버스도 가끔 타시는 것 같아요.

그런데 몇 달 전, 엉뚱한 지하철 역에서 엄마를 봤다는 친구 연락을 받았어요.

나중에 여쭈니 전혀 기억을 못 하시더라고요."


“식사는 스스로 챙기시나요?”
“제가 잘 몰라요. 매 번 밤 열 시 넘어야 드시는 건 알아요."

“집 근처 슈퍼나 병원은 혼자 다니실 수 있나요?”
“병원은 원래 안 가세요. 건강검진도 안 받으시고요. 슈퍼는 가던 곳만 가세요.”


“분리수거나 쓰레기 배출은요?”
“잘 모르겠어요.”


“전화 사용은 괜찮으세요? 다음 대화로 잘 넘어가나요? 주제를 놓치지 않고?”
“전화는 잘 거세요. 근데 대화의 흐름은 이어지지 않아요.

용건이 끝나도 전화기를 내려놓질 않으세요.

저번엔 제가 끊지 않은 채로 샤워한 적도 있어요.

끝나고 들으니까, 계속 혼자 말씀 중이시더라고요.

후레자식이죠.”


“외출 준비는 스스로 하시나요? 옷 고르시는 건요?”
“계절에 안 맞는 옷을 자주 입고 나가세요. 거의 매번 얇게 입으시죠.

"세탁은 잘하세요?"
"잘 모르겠요.”

“돈 계산은 가능하신가요?”
“돈 계산은 곧잘 하시는데, 요즘 이상한 사기 비슷한 걸 당하시는 것 같아요.

핸드폰 요금제를 제일 높은 걸로, 가게 직원이 시키는 대로 바꿔두셨더라고요.”


“시간 감각은 어떠세요? 날짜나 요일은 구분하시나요?”
“아뇨. 식사 한 번 하려면 전날부터 두 시간 단위로 확인 문자를 드려야 해요."

“요리는 하시나요?”
“예전엔 하셨죠. 요즘은 라면만 주로 드시는 것 같아요."

“공동현관 비밀번호는 기억하시나요?”

“아뇨, 잊어버리셔서 밖에 계시는 일이 종종 생깁니다."


"더 하시고 싶은 말 있으세요?"

"외출하면 지금 살고 있는 갈현동 집 말고, 어릴 때 살던 점촌 집만 자꾸 떠오른대요.

상담사님과 이야기를 나눠보니 제가 모르는 것, 간과한 것 투성이네요.

저 같은 놈이 엄마의 일상을 증언할 자격이 되나 모르겠네요."


상담사는 잠시 고개를 끄덕였다.
기록용지 위에 또박또박 글씨가 적혔다.
그 글자들이, 하나하나 엄마의 이름 대신 자리 잡는 것만 같았다.


엄마가 잃어버린 건 단순히 기억이 아니라,

삶의 방향, 관계, 그리고 엄마 자신의 '자리'였다.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끝내 사랑만 남을 것 같다.


오랜 질답의 끝무렵,

“울 엄마, 치매 진단 꼭 나오게 해 주세요"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냥, 그러고만 싶었다.


의사가 아닌, 내 마음을 오래 들어준 상담사에게

공식적인 확인서를 받고 싶었다.

지친 마음을 오래 앉혀 두고,

이제는 비집지 않아도 될 좌석표를 받고 싶었다.


몇 가지 검사를 더하고 퇴원했다.

초록색 약 두 주 치를 받았다.

그 후로 나는, 더 자주 엄마에게 전화를 드렸다.


두 주 뒤, 엄마는 치매 확진을 받았다.

아프지 않았다.

후련했다.


어릴 때, 엄마 손을 잡고 어린이 대공원에 갔다.

엄마는 솜사탕을 사줬다.

일 년에 한 번만 사주는 솜사탕이었다.


엄마의 기억은,

그보다 더 빨리 녹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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