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하루 째 딸과 안 싸웠었는데, 어제 싸웠다.
그건 좀 아쉽다.
나는 내 딸 하니가 태어난 시점을 기준으로 기원 전과 기원 후로 나뉜다.
내가 이렇게 기원 후의 사랑을 단단하게 잘 꾸릴 수 있는 것은 기원 전의 일각형(오무) 덕분이다.
그 일각형은 이제 치매 확진을 받았다.
엄마는 언제나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었다.
내가 점이었을 때부터 나를 기다렸다.
결혼 전에는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나를 기다렸고,
결혼 후에는 연락이 점점 뜸해지는 나를 기다렸다.
그때는 몰랐다.
때때마다 던져진 "차라리 나가서 죽어버려!" 라는 엄마의 말이,
내가 제대로 살지 못할까 봐 터져 나온 걱정이었음을,
너무 사랑해서 나오는 말이었음을,
그마저 그리워할, 증오였음을 몰랐다.
짓찧고 싶은 슬픔은, 이제 엄마가 무참히 순해졌다는 것이다.
이제는 알 것 같다.
내가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할 수 있게 된 것은, 누군가로부터 끝내 사랑받았기 때문이다.
내 안의 사랑은 스스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엄마가 남겨준 분명한 품에서 비롯되었다.
나는 내가 어릴 적, 엄마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컸다고 생각했다.
맨날 혼나고, 터지고 맞고 울었기 때문이다.
친구들한테 ‘나는 애정 결핍이야. 엄마의 사랑을 못 받았거든’ 이런 말을 하고 다녔다.
참 어리석은 착각이었다.
엄마의 사랑은 서툴지만 단단했다.
엄마는 품어주는 사랑이 아니라, 밀어 올리는 사랑이었다.
‘괜찮아’ 대신 ‘버텨라’였고, ‘쉬어라’보다 ‘일어서라’였다.
나는 그 궁벽한 말들을 오래도록 미워했다.
왜 다른 엄마들처럼 안아주지 않았을까,
왜 그렇게 벼랑 끝으로만 밀어냈을까. 시간이 지나서야 알게 됐다.
그 가파른 벼랑이 아니었다면,
무참히 나약한 나는 일어서지 못했을 거라는 것을.
내 아픔 아시는, 당신에게 온 마음 다해 경의를 표합니다.
- '치모를 찾아서', 연재를 마칩니다. 마음 두어 읽어주신 독자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