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 우리 그렇게 하기로 하자[치모]

by 하니오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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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방에서 잤다.


새벽 세 시에 일어나 '총 균 쇠'로 마음을 해장했다.

출렁이는 글보다 뚝딱거리는 문장을 읽고 싶었다.


감정의 방파제가 무너진 요즘.

딸과 '힙합 프린세스'를 함께 자주 본다.

경연 프로그램이라 회차마다 탈락자가 나온다.

예쁘고 빛나지만 아직 어린 그들은, 탈락의 순간 여지없이 무너진다.

덩달아 나 역시 매번 운다.

"아빠! 왜 또 울어? 이거 10회까지 가면 30명 떨어질 건데, 서른 번 울 거야?"


어제,

요양보호 등급 신청 때문에 여러 명과 약속돼 있던 병원행을 엄마는 거부했다.

극렬히 다툰 뒤, 나는 완전히 방전되었다.


돌고 돌아 '사랑'이었던 엄마는,

돌고 돌아 '불통'이 되었고

자신의 병증을 '치매'가 아닌 수면 부족이라 스스로 확진하기에 이르렀다.


분류 코드도 없는 질병을 매일 덧대 가는 엄마는

형에게, 나에게, 순례주택 급 빌라 귀인들에게 밑도 끝도 없는 당혹과 걱정을 준다.


주변이 점점 어두워질수록,

당신은 점점 해맑아진다.

언제나 첨단의 '행복'과 '자각', '채택'과 '완치' 속에 산다.

늘 엄중하게 당당하다.


일과 시간 바빴고, 저녁 약속 때문에 어제 오후 내내 엄마와 통화를 걸렀던 막내아들은

출근길에 전화를 건다.


"엄마, 안녕히 주무셨어요?"

"응, 새벽에 잠이 깼다가 다시 깜빡 잠이 들었다.

날씨가 추워져서 옴짝달싹 못 하고 있다. 내가 하니 십만 원 줬던가?"

"엄마, 다음에 주시면 되고 토요일에 형이 올라올 수도 있다던데요? 삼겹살 먹자던데 전 선약이 있네요."

"그러냐? 연락은 없었는데 하루에 자전거를 두 시간씩 돌리니 잠이 깊이 든다."

"엄마, 날 풀리면 병원 가시자고요."

"안 간다. 평생 회충약 밖에 안 먹었고 약 증오하는 걸 알면서 너까지 약 이야기냐? 너희들이 날 정말 죽이려 드냐?

형이 보낸 약 때문에 난 죽을 수도 있었다.

치매가 아니고 불면증이었다. 자전거를 열심히 돌려 완치했다."


"엄마, 아들이 몇 명이에요?"

"두 명"

"둘 다 엄마를 죽이려 해요?"

"모를 일이지"


"엄마! 엄마! 제발요. 형은 모르겠고, 저는 자꾸 요새 눈물이 나와요. 아세요? 엄마! 엄마!"


몇 년 만에 악을 썼다. 목이 쉬도록 악을 썼다.


"나 전화번호 바꿀 거다. 배은망덕한 것들"


전화를 끊고 차에서 한참 있었다.

뱀 친구들한테 몇 줄 한탄을 던졌다.

언제나 오색 바람개비를 보내주는 친구들.

그네들 덕에 마음을 다시 고르고

마누라 덕에 마음을 다시 세운 뒤

엄마한테 문자를 보냈다.


누구에게나 삶은 한 번인 건데, 엄마에게는 두 번이라 여겨보겠다.


당신만을 향해 늘 외로웠던 계절이 끝나고,

당신만은 늘 행복한 계절이 불기 시작했다고 믿어보겠다.


형, 우리 그렇게 하기로 하자.

우리도 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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