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그루의 바람

by 하니오웰

"엄마, 저녁 드셨어요?"

"야야, 지금이 몇 시냐?"

"9시 40분이요."

"아, 이제 곧 먹으려 한다."

"오늘도 라면이에요?"

"어, 걱정 마라, 호박이랑 당근 듬뿍 넣어서 영양은 만점이다. 하하하"

"하니야, 할머니 저녁 잘 드시고 안녕히 주무시라고 인사해"


"할머니, 맛있게 드시고 안녕히 주무세요."

"하하하, 하니냐? 감기 나았냐?

이 할미가 참 미안하다. 할미가 되어가지고 선물 한 번을 못 줬다.

근데 저녁 내내 찾아봤는데 이십만 원뿐이다.

짝수로 주면 못 쓰는 거니까, 내일 은행 가서 십만 원 더 뽑아와서 삼십만 원 만들어 줄게"


"엄마! 무슨 그런 돈을 줘요. 됐어요. 저녁이나 잘 챙겨 드세요.

내일 형이 오후에 간다니까 어디 나가시면 안 됩니다."


"그래, 하니야. 할미가 다음에 돈 꼭 줄게"

"할머니 안 주셔도 돼요. 안녕히 주무세요. 사랑해요."

"그래. 사랑해. 나도. 하하하"


목젖을 넘지 못하고 걸려 있던 웃음과 울음은

이제 엄마를 건너면 울음과 웃음이 된다.


나의 엄마는

여자였다가, 둘이었다가,

엄마가 되며 하나가 되었다.


여름엔 우박으로

겨울엔 장마로 살았다.

삶은 공평하지 못하게

늘 자기 몫을

엄마 쪽에 내려놓았다.


엄마의 남편은 민주주의라는 이름을 좇다 엄마를 고토로 내밀었고,

막내아들은 직립이라는 이름을 얻기 위해 엄마를 동토로 가라앉혔다.

그 이름들은 엄마를 베어 먹고, 채워주지 않았다.


엄마의 봄은 선이었다가 점이 되었다가 이제 어느 서슬에도 없게 되었다.


바람은 아직 반 그루쯤은 허락하며 엄마를 스쳐 준다.

일 년 새, 당신 몸무게는 십 킬로가 빠졌다.

이러다 다 부서지겠다.

다시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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