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의 시작(작은 소식 하나와 함께.)

by 하니오웰


존댓말로 쓰려니 어색합니다.

고심 끝에, 알리는 것이 경우에 맞는 '예의'라 여겨 이렇게 적습니다.


이틀 전, 제게 조용한 소식 하나가 찾아왔습니다.

올 1월부터 오랜 시간 새벽에 앉아 쓰던 습관 덕분에,

'문학고을' 계간지 수필 부문 신인문학상에 운 좋게 이름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부족한 독서량과 자잘한 불성실함 속에서

‘등단’이라는 단어는 적잖이 부끄럽고 송구합니다.


저를 여기까지 데려온 것은,

늘 시간을 내어 마음걸음, 눈걸음 해주신 여러분들 덕분이라 여깁니다.


앞으로 제 이야기와 생각들을 더 다듬고, 더 가지런해지되,

고유의 촐싹함도 잃지 않고 정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균형의 시작'



나는 팔삭둥이로 태어났다.

두 달의 서두름은 나를 성급하게도, 더디게도 만들었다. 성급할 땐 서러웠고, 더딜 땐 부끄러웠다.


내가 태어난 지 일 년쯤 되었을 때, 엄마는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내 다리를 들어 올렸다. 돌덩이처럼 굳은 다리는 좀처럼 들리지 않았다.

“발목이 펴져야 하는데, 전혀 움직이지 않습니다.”

“등도 허벅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신경계 문제일 가능성이 큽니다. 혼자 서거나 걷는 것은 어렵고, 평생 휠체어를 타야 할 겁니다.”


엄마는 한참 입술만 달싹이다가, 삼킨 말들을 목구멍 깊은 곳에 눌러 넣었다. 그리고 끝내 터뜨렸다.

"평생이라뇨? 생의 선을 그렇게 쉽게 그으시는 겁니까? 예수라도 되세요?“

의사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가능성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저희는 최악을 먼저 대비해야 하니까요.“

엄마는 낮고 단호하게 말했다.

"저는 절대, 내 아들을 그렇게 살게 두지 않을 겁니다.“


네 살 때까지 나는 일어서지 못했다.

다섯 살이 되던 해, 엄마는 결단을 내렸다. 사표를 냈다.

나를 앉히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길고 지독한 싸움의 시작이었다.


엄마는 먼저 굳은 근육을 풀어야 했다.

몇 분이면 다시 나무토막으로 돌아가는 다리를 밤낮으로 주물렀다. 등 뒤에는 이불과 베개를 겹겹이 쌓고, 화장실에 나를 걸터앉혔다. 내 머리에 노끈을 감아 문고리에 걸었다.

중력을 견디지 못하는 허리는 부들거렸고, 머리는 촛불처럼 흔들렸다.

“버텨라! 버텨라!”, 엄마는 “괜찮아, 괜찮아”를 모르는 사람이었다.

입술은 바들바들 떨렸고, 손톱은 손바닥 안으로 깊게 말려들었다.

몸이 쓰러지고 또 쓰러졌다. 바닥에 짓찧는 팔꿈치에서 뼈가 울렸다.


엄마는 나를 안아 올려놓았다. 다시, 다시.

수십 번, 수백 번.

지나가던 바람이 창틀 사이로 들어왔다가 쏜살같이 도망갔다.

나눌 공기도 아니었고, 삭힐 숨도 못 되었다.


엄마는 한 손으로 내 등을 밀고, 다른 손으로 작은 가슴을 받쳤다.

내 몸은 물결처럼 출렁이다가 바람보다 빨리 누웠다. 앞으로 한 뼘 세워졌던 허리는, 뒤로 두 뼘 무너졌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나의 등뼈가, 아주 잠깐이나마, 스스로 버티는 순간이 있었다. 그 찰나의 직립이 엄마의 눈 안으로 스며들었다.

나는 곧 다시 넘어졌다. 그러나 그 무너짐은 아까와 달랐다. 덜 무너졌고, 더 일어섰다.


균형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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