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부터 머리까지 밖으로만 기울어 있던 아비에게 집은 종점이 아니었다.
그 흔한 정류장도, 계류지도 되지 못했다.
기대에서 기다림으로, 기다림에서 체념까지의 가파름은 언제나 어미의 몫이었다.
사흘에 한 번이던 아비는 그 회귀의 틈을 몇 달로 넓히더니,
마침내 두 차례 유배를 떠나 어미의 부리를 눌러앉혔다.
제일 자주 식탁에 올린 건 미역국이었다.
물에만 담그면 금세 부풀어 오르며, 헛헛함을 은은히 감싸주던 그 따뜻한 물성이 좋았다.
비우자마자 또 끓여 올려도, 연년생 오소리들은 처음처럼 머리를 깊숙이 박아
매 입언저리를 시커멓게 물들였다.
큰 놈 여섯 살 때, 미역국 대신 오징어 뭇국을 끓여줬더니,
순진한 큰 놈은 "와, 우리 집 부자다" 하고
요망진 작은 놈은 "엄마, 맛나... 그런데 미역국은 왜 안 줘?" 한다.
내 몫의 남은 무, 빠짐없이 주워 먹고
미역국 다시 바치니 두 사발씩 금방이다.
엄마 아빠 양손에 한 번도 제대로 들려본 적 없는, 서러운 내 강아지들.
그 풍진 팔 할은, 미역이 다 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