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안 하면 된다.

by 하니오웰

일 학기에 찌그러진 마음에 눌려 어둑하던 아이가, 요즘 부쩍 훤해졌다.

자신을 라이팅한 친구에게 '그 부분은 미안했다'라고 정확히 짚어 사과하고, 마음을 쿨하게 회수하더니 새 친구 무리와 어울리기 시작했다.

매해 첫 무리 외에는 좀처럼 속내를 열지 않던 아이가, 처음으로 스스로 걸음을 맞춰 새무리에 들어갔다니 그저 고맙다.

학교가 끝나면 하나둘 친구들을 데리고 와, 짜파게티 컵라면 껍데기를 우박 흩뿌리듯 온 집 안에 펼쳐 놓는다.

그 소란스러운 풍경이 나를 환하게 밝힌다.


요즘 애들 유행은 일몰처럼 순식간에 사그라드는데, 그 짧은 간극의 시의를 놓치지 않고 친구들에게 나눌 선물을 빠짐없이 챙긴다.

물고 빠는 건 내가 다 긁어 준다 쳐도, 스스로 경제관념을 세워 가는 모양새가 기특하다.

가르친다고 될 리 없는 나누는 마음을 애써 일러준 적 없는데, 여기저기 정을 흘리고 다니는 결이 나랑 꼭 닮았다.

주말에 만난 큰아빠에게 책이며 색연필 신상을 어김없이 슬쩍 받아내는 것도, 마누라에게는 없는 앙큼한 재주다.

커갈수록 나눌 줄도 챙길 줄도 아는 아이라, 지켜보는 맛이 쏠쏠하다.

나만 안 하면 된다.

묵히면 될 일에, 잔소리는 결국 독으로 돌아온다.

질러 본다 한들 달라지는 건 없고, 쿵쿵대 봐야 내 속만 무럭해진다.

아이는 자기가 왜 이런지 모르겠다며, 가는 말보다 더 드센 말로 일일이 받아친다.

나도, 마늘도 간섭을 못 견디는 사람이니, 그 벅찬 배알이 다 어디로 흘러갔겠나.

어제는 기분이 좋았는지, 내가 필사하던 책을 가져가더니 '스퀴시'를 하나 만들어준다.

여러 번 졸라대도 기척조차 없던 선물이다.

참으면 복이 온다.

자식은 '요망'지다.

돋아나는 사춘기와 스러지는 갱년기가 맞물려 흐르는 요즘.

달리 느긋하고, 도망치듯 바쁜 아이와 나는 마음의 간격을 자주 잰다.

조용한 대로, 참는 대로 자식은 기어코 '새끼' 값을 한다.


때가 되면 아파.

한 '밤'을 뒤척이게 하고, 가라앉은 바탕의 무늬를 다시 일렁이게 한다.


자식은 마음의 처음에 되닿게 하는 영묘한 '요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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