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첫날, 그것도 월요일 새벽,
꼭두부터 인상을 바짝 쓰고 11월 수시분 고지서 공시송달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니 관련 급한 일이나 세무 업무가 아니면 카톡으로만 대화하는 우리 부부.
특히 출근 전에는 대화를 극도로 꺼리는 마누라인데,
그 어색한 새벽 시간에 그녀의 전화가 걸려온다.
예감이 초췌하다.
좋은 일일 리가 없다.
"오빠, 냉장고에서 물이 질질 세"
"LG 서비스센터에 바로 연락할게"
신혼 때 샀던 냉장고니 고작 12년이다.
제 나름의 ‘노예 12년’을 자각하고 벌이는 임금 투쟁 정도로 끝나주길 바랐다.
가장 빠른 예약이 오후 5시였다.
"오빠, 냉장고 폐기하래. 가스 배관이 터졌대"
메리 크리스마스, 연말 선물이 두둑하다.
퇴근하니 장모님과 마늘이 낑낑대고 있었다.
비린내와 온갖 교묘한 냄새가 온 집안을 잠식하고 있었다.
치우기에 인색한 주인을 잘못 만나,
위아래 칸에서 뱉어낸 중복 구매와 중간예납의 흔적들이 켜켜이 처참하다.
넙치처럼 냉동실 바닥에 처박혀 있던 몇 년 된 고등어와,
수차례 뒤져도 드러내지 않던 색 바랜 멸치육수통이 남루한 세월을 한탄한다.
가능한 건 모두 김냉에 때려 박는다.
마늘은 선약이 있다고 나가고, 장모님은 이미 저녁을 드셨단다.
하니를 데리고 물닭갈비를 먹고 되돌아오니,
착한 어머님 혼자 사투 중이시다.
"어머니, 죄송해요. 도와드릴 건 없어요?"
"없다. 쉬어라."
딸은 없고, 사위는 별 도움이 안 된다.
우두커니 서 있다가 방에는 차마 들어갈 수가 없어서 소파에 털썩 앉는다.
막내딸 쓰라고 당신이 사주셨던 냉장고를, 그동안 고생했다며 가는 길 살펴주신다.
한 시간을 더 정리하시더니 다라이 가득 녹은 게으름들을 담아 가신다.
"미안해, 집을 어수선하게 해놨네. 나오지 말고 쉬어. 하니 혼자 두지 말고"
"어머니, 이걸 어떻게 들고 가신다고."
집에 모셔다드리고 오는데 착잡하다.
그녀들은 자식 위해 모든 걸 내어주고도 항상 미안해하신다.
엄마나 어머니나 똑같다.
부모는 냉장고와 같다.
그 많은 한기와 고독을 악물고 버티며, 묵히고 삭히고 숨긴다.
언제 꺼내질지 모를 그 손길을, 제 몸 상해 가며 기다리다가,
언 마음 끝내 다 녹이지 못한 채
A/S 기간도 채우지 못하고 온도를 잃어간다.
아듀, 신혼의 추억 하나.
쿠팡서 바로 샀다.
세상 참 지랄같이 편리하다.
철거부터 설치까지 3일이면 시마이란다.
잘가, 신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