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절이나 유행은 필요했다.
84년도에 국민학교에 입학했다.
매일 아침 조회가 열렸다.
나는 예외를 자처하지 않았다.
추상적인 눈치는 빨랐으나, 그뿐이었다.
어떻게 열외를 신청해야 주류와 일반에서 덜 비끼며 자존심을 지킬 수 있는지,
구체적인 요령이 아직 없었다.
나도 줄을 맞춰 서야 했다.
다르지도 않고 같지도 않다는 걸 동시에 증명해야 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매일 해내야 했다.
몸이 마음을 질투했다.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을 향한 노력의 모멸과,
증명하지 못할 것들을 끝내 규명할 수 없음에서 오는 무력함.
익숙한 동토의 한가운데에 서기 시작됐다.
“국기에 대한 맹세!”가 신호였다.
모두가 미세한 흔들림을 차례대로 바로잡는 순간, 나도 따르고 싶었다.
더 짧은 왼쪽 다리가 값을 치르면, 오른쪽 다리가 뒤늦게 흥정에 합류했다.
상체와 하체, 윗다리와 아래 다리, 다리와 발, 그 사이사이가 제각각으로 벌어지며 순서대로 나를 흔들었다.
중심을 잃어서만이 중심을 잡을 수 있는 역설의 서사와 싸우는 동안 내 서정은 멍들어갔다.
몸이 비틀리면 흙먼지가 일었고 뒤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야, 재 또 춤춘다.”
“넘어지겠다. 자빠지겠다.”
선연한 조롱이 바람을 타고 등을 찔러 다리를 더 후들거리게 했다. 어깨까지 따라 떨렸다.
“거기 흔들지 말고 서 있어!”
가끔 추임새처럼 내 이름을 불러 꾸짖는 선생님이 있었다.
시선이 한꺼번에 나에게 몰려들면, 땅속으로 꺼지고 싶었다.
내 특유의 시림을 맡는 날선 감각은 그 국민학교 시절에 다 다듬어졌다.
아침 조회는 이어졌고, 놀림은 계속되었다.
무방비의 시절이었다.
생각해 보면 나를 놀리는 아이들은 달리 나를 어찌 대해야 할지 몰랐을 것이다.
부끄러울 새 없는 무구한 당혹이었을 것이다.
나는 주눅 들지 않았다.
아이들이 나를 놀리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유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