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생님, 이번엔 인공수정 말고 시험관으로 하고 싶어요." 이 말은 하는 순간 이상하게 나의 마음은 가벼워졌다.
인공수정의 실패를 겪고 나서 나는 시험관을 선택했다. 가족들의 걱정과는 다르게 나는 너무 홀가분한 기분이었다. TV매체에서 시험관을 하는 연예인들이 힘듦을 토로하는 것과 반대로 나는 시험관이 나았다. 아니 나은 것보다 이게 훨씬 좋았다.
인공수정은 운동성 좋은 정자를 배란일에 맞춰 자궁에 넣어주는 방식이다. 관계를 하지 않고 그냥 의사 선생님께서 운동성 좋은 정자를 직접 넣어주는 것뿐이니 내게 있어서는 수정여부를 기다리는 것 밖에는 할 게 없다. 그냥 자연임신과 똑같이 불확실성으로 가득했고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시험관은 다르다. 주사와 약으로 난자를 키우고 난자를 여러 개 채취한다. 그리고 정자와 체외에서 수정을 시켜 배양한 다음 질 높은 배아를 선별하여 자궁 내로 이식하는 방법이다.
나에게는 이 과정이 주사를 매일 시간에 맞춰 맞고 약도 매일 넣는 귀찮음은 있지만 이게 좋다. 어차피 주사는 지방층이 많은 내게 아무 느낌도 나지 않았고 감각에 예민하지 않은 나는 부작용 또한 느끼지 못했다. 약을 넣는 핑계로 아침저녁 같은 시간 30분씩 자유를 만끽하며 누워있는 것도 너무 좋았다. 그 30분만큼은 공식적으로 게으름을 피울 수 있었고 누워서 독서나 다이어리를 쓰며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시험관이 좋은 이유가 있다.
바로 난자는 몇 개를 채취했고 성숙된 난자는 몇 개인지, 수정은 몇 개가 성공하였는지 숫자로 알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각 키운 배아들은 최상, 상, 중, 하로 등급이 나뉜다. 물론 이런 배아의 질이 태어날 아기의 우수한 형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착상이 잘 될 배아인지만 보는 것이다.
이 배아를 자궁 내로 이식 후 자궁벽에 착상이 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것도 며칠 내로 알 수 있다. 이렇듯 자연임신이라는 불확실성에서 그나마 수정여부나 배아의 등급등은 앞으로 임신성공에 얼마나 가능성이 있는지 여부가 좀 더 명확해진다.
내가 시험관을 진행하면서 남들과는 다르게 왜 나는 시험관이 좋은가를 깊이 고민해 봤다. (문제라고 인식되어 고민한 것보다 난 내가 느끼는 감정의 원인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것을 원래 좋아한다. ) 고민의 결과 나의 불안감을 해소하는 방법과 맞아떨어진 결과로 시험관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원래 불안감이 높은 사람이다.
연애를 시작하거나 진행 중에도 조금만 이런 감정이 올라와도 도중에 포기해 버린다. 시작도 전부터 헤어질 것을 미리 생각해 시작도 안 하려고 하거나 사귀는 도중에도 약간의 다툼만 있어도 헤어짐을 생각하는 방어기제가 펼쳐지는 사람이다.
하지만 시험관을 진행하면서 나는 이 불안함과 불확실함 속에서 안정감을 찾기 위해 숫자에 기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을 나는 싫어했고 확률적으로라도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측하는 것이 내게 있어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물리학을 좋아해 전공했는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시험관을 통해 내가 불안감을 다스리는 방법을 명확하게 알게 되었다는 점에서 깊은 깨달음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