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밤(Forgotten)

얼마든지 조작 가능한 우리들의 기억

by Thankfulness


워낙에 기억력이 좋지 않아 학창 시절엔 무작정 외워야 하는 암기과목보다 수학이나 과학 같은 원리나 몇 개의 공식만 알면 응용해서 풀 수 있는 과목이 좋았던 나는 그 기억력이 현저하게 더 나빠짐을 느낌은 물론이고 한 달 전? 아니면 불과 2주 전에 이걸 내가 한 거라는데 도저히 내가 어떻게 한 건지 기억해 낼 수 없는 나를 만나며 기억? 뇌? 자아와 무의식에 대한 관심으로 최인철 님의 프레임과 대학 신입생 때 보던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입문까지 뒤적이고 있던 차에 "Forgotten"이라는 넷플렉스 영화는 우리들의 기억이라는 것에 대한 너무나도 섬세한 설명을 해 주고 있었다.


내가 정말 공감하며 읽은 최인철 님의 프레임에 의하면 "우리들의 과거의 회상은 다시 보기가 아닌 새로운 창조의 작업이 될 수밖에 없다" 고 한다. 현재의 내 모습은 과거에는 있지 않았던 새로운 모습이지만 사람들은 현재의 모습이 과거의 자신에게도 있었다고 착각하는 경향이 있어서, 과거의 모습이라고 회상하는 대부분의 과거는 실제 과거의 자신의 모습보다 현재의 자신의 모습을 더 닮아 있다고 한다. 그래서 어른들이 "나 때는 안 그랬는데... " 하는 말은 사실 다시 한번 반문의 여지가 있다고. " 정말 안 그랬을까?"

사람들은 과거를 현재의 모습으로 부활시키거나, 과거 죽이기를 통해 현재를 부각하기도 한다. 결국 우리의 과거 기억은 현재가 필요로 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꺼내 주는 마술 보따리와 같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유발 하라리가 말하는 현재의 인간 호모 사피엔스가 이 인류를 지배할 수 있게 된 것 중 가장 유력한 지적으로, 보이지도 않고 설명할 수 없는 것을 믿는 능력 - 번역서에는 험담이라고도 쓰여 있지만 거짓말하는 능력과 또한 종교와 같은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을 믿는 것이라고 이해했다.


그리고 프로이트는 자아는 자기 자신의 집주인은 결코 될 수 없으며, 자신의 심정 생활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서도 여전히 아주 조금밖에 정보를 얻고 있지 않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려고 하고 있었다.




약과 채면, 주변에 꾸며진 상황극으로 진석은 가장 행복했던 20년 전으로 돌아간다. 형과 부모님과 행복했던 그 시절로 돌아가 공부하고... 주변의 모든 사람이 그를 20대로 보고, 약으로 내 정신을 조금만 혼미하게 하면 그 기억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도 가능한 인간. 잊고 싶지 않은 가장 행복했던 순간으로 돌아가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그를 그때로 돌아가게 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또 슬픈 사실은 주변에서 현실을 말하는 순간 거울 속에 그의 모습이 20대에서 40대로 일순간에 변하는 장면은 소름이 돋을 정도이다. 우리는 이토록 주변의 영향을 받는 종인 것이다.



집착 = 망상=파멸?


내가 확신하고 있는 기억이 과연 몇 % 나 사실일까? 내가 갖고 있는 분노나 미움이 어쩌면 나 혼자만의 상상은 아닐까? 집착.... 무엇인가에 너무 깊게 몰두하고 빠져드는 것... 사실 하나의 작은 구멍에서 시작해서 점점 넒고 깊게 구덩이를 파고, 구덩이 바깥의 세상은 보이지 않게 되고, 점점 그 구덩이 안으로 파고 들어가는 것... 그것이 집착인 것이다. 그 구덩이에서 어떻게 나올 수 있을까? 작은 사실 하나에서 시작한 집착은 결국 눈덩이처럼 불어난 망상으로, 그 망상은 결국 사실과의 큰 괴리로 인해 나를 망가뜨리고 말 것이다. 그래서 난 집착이 무섭다. 가끔 나도 어느 사건이 자꾸만 떠올라서 생각하게 되고 더 빠져들 때가 있다. 어느 순간 사실로부터 너무 멀리 가 있는 나를 발견하고도 계속 가게 될 때가 있다. 그럴 때 내가 찾은 방법은 누군가에게 털어놓는 것이다. 나를 괴롭히고 있는 이 사건을 누군가에게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후련해지고, 또 내 남편처럼 사실을 명확하게 집어주는 사람이 있어 나는 다행히 제자리로 돌아오곤 한다. 하지만 요즘은 종종 내 눈치를 살피며 내 의향을 파악하며 답해주려는 경향이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냉철하게 사실을 이야기해 주는 남편이 있어 그리 멀리 가지 않는다.



해리성 기억장애

스스로에게도 너무나 끔찍했을 그 살인의 순간을 잊는다는 것. 정말 그것이 가능할까? 정말로 완전히 그 기억을 잊을 수 있을까? 정말 그것이 가능하다면, 아직 남아있는 삶을 살아가기 위한 인간의 생존본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참으로 많은 시간 나를 바라본다. 내 생각과 몸짓, 내 모습... 항상 내 머릿속이 머물러 있던 20대의 나는 절대 될 수 없겠구나.... 이제는 내 생각이 머물러 있던 20대를 놓아주어야 할 것 같다. 진석처럼 내가 머물고 싶은... 내가 돌아가고 싶은.... 그 20대는 이제 지나갔음을 인식하고, 새로운 40대의 나를 바라본다. 사실 어릴 때야 실수도 많고 배려도 없고, 고집 세고.... 자존심만 있어서... 좌충우돌의 느낌의 20대였다면 이제는 조금 달라진 나를 바라본다. 조금 조근조근의 느낌? 늦둥이 막내로 자라서, 받는 것에만 익숙하지 누군가를 배려하거나 챙겨주는 일에 참 익숙지 않았던 나를 돌아보며.... 이제는 주변을 돌아보고,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에는 망설임 없이 나서지만 내가 할 수 없는 일에 대한 오지랖은 금한다. 그리고 최근엔 혼자서 빠져버린 망상으로 나를 참 억울하게 하는 지인이 있어서 힘들지만 감내하고 있다. 이것 또한 20대의 나와 다른 모습이다. 20대의 나라면 당장 쫓아가서 이렇고 저렇고 따박따박 따져 옳지 않음을 밝혀내려고 했을 텐데, 지금은 최근에 그 지인이 겪은 가정의 아픔을 이겨내기를 기도하고 있다. 너무 말도 안 되는 말을 하시니 그냥 그분의 심신이 안정이 되면 알게 될 일이니 기다리고 있다. 더 이상 젊진 않지만 멋지게 늙어갈 나를 가꾸어가는 이 시간을 즐기려고 생각하니 이상하게 억울함도 견딜만하다. 힘든 일이 힘들지가 않다. 사람이란 참 신기한 동물임에는 틀림없는 듯하다. 이런 식의 마인드 컨트롤이 가능하니 말이다.



이 영화 보면서 떠오른 많은 생각들이 정리가 되지 않아 그냥 두서없이 마구 적어본다. 항상 그렇지만 작가의 풍부한 상상력과 인간에 대한 세심한 관찰력에 감탄하며, 또 심리적인 많은 부분에서 공감하며, 끝까지 눈을 떼지 못하고 보았다. 나이가 들면서 바뀌는 것이 하나 더 있다. 영화를 보면서 나는 영화의 구성이나 요소에 대한 비판은 할 능력도 되지 않지만 그런 비판 자체를 이제는 하지 않는다. 그저 그 안에서 좋았던 것을 기억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20대의 끝을 잡고 있을 때는 이제는 더 이상 그때처럼 몸과 머리가 젊지도 생기 있지도 않고, 노쇠해 가는 나의 모습이 초라하게 느껴지고 이제는 무언가를 다시 시작하기엔 틀렸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 20대를 보내 주기로 마음먹고 나니, 40대의 내 인생의 후반기가 다시 시작이라는 생각으로 기대와 희망 충만으로 머릿속에 해보고 싶은 것들로 다시 꽉 채워지고 있다. 해보고 싶은 것들이 너무 가득 차 있어서 제대로 해낸 게 없는 것 같은 20대를 거울삼아 이제는 조그마한 것부터 하나하나 해보고 싶은 것에 대한 조금 더 성취를 할 수 있는 도전을 시작해 보기로 또다시 마음먹는다. 또 다시 희망회로 돌려보련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