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찰나의 순간을 포착하는 사진작가로 잘 알려진 브레송. 그의 사진 한 장만 보더라도 웬만큼 사진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아하!" 하고 알아차릴 것입니다. 브레송의 사진은 위트 있고 감각적이지만, 사실 그는 보도사진사로 더욱 유명한 인물입니다.
보도사진이라고 하면, 신문에 나오는 사진이 생각날 수 있을 겁니다. 사진사의 역사를 살펴보면, 그렇게 단순화시키기는 어렵습니다. 보도사진의 시작은 더 거슬러 올라가 알프레드 스티글리츠에서 보고 있는데요. 이 스티글리츠라는 인물이 스트레이트 사진을 탄생시켰으며,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객관적인 정보만을 전해준다는 의미에서 보도사진이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신문용 사진이라기보다 그 자체로 객관성을 중요하게 여긴 사진이었던 거죠.
화면 속의 모든 요소가 완벽하게 자리 잡고 있을 때 셔터를 눌러야 하는 그 순간. 많은 사진작가분들이 좋은 사진을 촬영하기 위해 강조하는 게 있다면 분명, 그 순간인 '타이밍'일 것입니다. 그 완벽한 순간을 위해 멋지게 재현해 내는 사진작가가 있다면, 바로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Henri Carier-Breasson)이 아닐까요. 지저분한 장면도 아름답게 포착하는 신의 눈을 가진 브레송에게 이 타이밍은 천부적 재능이었을까요?
남성의 발이 물에 닿기 직전의 순간을 담은 사진은 대표작 중 하나입니다. 자세히 보면 화면의 구성감이 예술적이면서도 모든 것이 고도의 계산된 형태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Behind Saint-Lazare Train Staition> 은 실제로 유명한 생 라자르 역으로 모네가 즐겨 그렸던 기차역입니다. 브레송은 모네와 달리, 기차역의 뒤편의 지저분한 공장의 풍경을 뿌연 회색빛으로 처리해서 그다지 기차의 배경이라는 느낌이 확실하게 띄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물 웅덩이에 반사된 반원형과 점, 선의 기하학적 형태가 조화롭게 굴러가는 재미난 움직임을 연상시킵니다. 기차역 한 모퉁이에서 어린이들의 장난기 가득한 놀이의 현장처럼, 삶의 이면에 담긴 위트를 잘 담아내는 장면입니다. 이런 주변 풍경과 인물의 순간적인 완벽함을 만들어낸 브레송의 예술적 힘은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요?
브레송은 오랜 세월 동안 결정적 순간을 포착하면서 수많은 사진들을 촬영해 왔습니다. 카메라 렌즈를 통해 피사체를 바라보는 브레통의 시선이 남달랐다는 걸 알 수 있는 계기는 그의 인생 이야기에서 찾아보게 되는데요. 그는 미술을 전공했고 2차 세계대전 당시에 레지탕스 활동을 하다가 수용소에 몇 번 포로로 붙잡혔다가 탈출하기도 했던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브레송은 매그넘(Magnum)이라는 사진통신사를 설립했고, 본격적인 보도사진작가로 활동을 하기 시작합니다. 암살당한 간디의 장례식장을 촬영했고, 국민당 정권이 무너지던 중국을 사진에 담았으며 철의 장막 뒤에 숨겨진 소련 인민들의 삶을 취재했지요. 그러니까 그는 언제나 세계적인 소용돌이 중심 속에 있었습니다.
손과 몸이 얽혀 있고, 그 안에서 어떤 질서와 혼란이 동시에 느껴지는 구도로 포개지고 길게 줄지어진 군중들의 모습 속에는 불안과 긴장이 담겨 있습니다. 당시 국민당의 통치는 끝을 향해 가고 있었고, 중국 공산당이 점점 세력을 확장하며 중국을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정치적 혼란기에 중국에는 심각한 인플레이션이 일어났고, 국민들은 종이 지폐보다 더 신뢰할 수 있는 금으로 재산을 바꾸려 했죠. 그렇게 상하이의 한 은행 앞에서 금을 인출하려는 군중들의 모습을 포착한 것이 바로 이 사진입니다.
브레송의 사진들이 초현실주의적인 작품들처럼 예기치 못한 장면으로 보이는 듯, 마치 비현실적인 것처럼 느껴지는 특징이 있습니다. 하지만 브레통이 자신도 도대체 어떻게 결정적인 순간을 사진으로 포착한 건지 잘 모르겠고, 그저 그 과정은 본인에게도 수수께끼라 했던 고백을 생각해 보면, 그의 솔직함이 스트레이트의 사진의 철학을 닮은 거 같습니다. 사실을 담아내기 위한 마음이랄까요.
놀라운 순간을 한 장의 사진 안에 담아내는 브레통의 직감적 본능.
우리의 인생에서도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기 위해 기회를 기다리는 결정적인 순간이 있다면 어떨까요. 그 순간이 올 때 셔터를 누를 수 있게 항상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면, 당신은 기다리실 건가요?
준비된 사람에게 카메라 셔터를 누를 기회가 찾아온다고 합니다. 그렇게 준비를 해도 종종 타이밍을 잘 못 맞추는데, 만약 놓치거든 다시금 그 타이밍을 찾아서 또 기다려야 한다고 이야기하죠. 그다음의 셔터를 누르기 위해서 말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그렇게 준비의 시간과 순간의 시간들이 연속적으로 교차하며 삶을 살아가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내일의 태양은 항상 떠오르기에 매일 똑같아 보이지만 알게 모르게 삶 주변에 나타나는 수많은 결정적 순간들을 알지 못한 채 내버리지만 않는다면, 우리의 삶은 그래도 인생의 타이밍을 잘 찾아다니는 시간들로 채워지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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