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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밤 이야기, 피카소

BLUE & PINK period; PABLO PICASSO

by 미키

우리의 인생을 조각보처럼 색명을 지어 장면 장면을 그려본다면, 당신의 조각보는 어떤 색으로 가득 채워질까요? 살아온 인생 조각들이 공장에서 생산되는 퍼즐처럼 반드시 완벽하고 정확하게 다 맞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렇게 자연스러운 자기 삶의 장면을 하나하나 모아놓고 전시회를 열면 좋겠다는 상상을 해 본 적이 있는데요. 깔끔한 우드 톤 액자 속의 정제된 그림도, 흐물흐물한 캔버스 위에 거친 붓질이 남은 추상화도 나름대로의 의미를 다 가집니다. 한 사람을 하나의 결로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우니까요. 제 인생만 해도 무지개처럼 다양한 순간들로 채워져 있으니 어떤 색이든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이처럼 인생을 무지개 색으로 담아낸 예술가가 있습니다. 바로 파블로 피카소.


한 예술가 삶 속에 채워진 예술작품들을 무지개처럼 분류하는 경우는 굉장히 보기 어렵습니다. 그런데도 그의 젊었던 20대, 30대 시절의 작품을 청색 시기, 장밋빛 시기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는 바로 그가 엄청난 수의 다작을 보여줬기에 가능했던 일이었죠. 피카소는 열정적인 삶을 살았던 예술가로, 스페인 기질답게 일과 사랑 모두에 뜨겁게 몰입했습니다.


그의 예술 세계는 시대순으로 청색 시대, 장밋빛 시대, 입체파, 신고전주의의 순서로 설명됩니다. 특히 그20~30대 시절을 대표하는 청색 시대(Blue Period)와 장미빛 시대(Pink Period)는 감정과 색채의 변화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BLUE period


블루는 광고 세계에서는 청량함을 상징하지만, 예술 세계에서는 우울함을 대표하는 컬러입니다. 피카소는 1901년부터 1904년까지 청색을 주된 색채로 사용하여 가난과 절망을 주제로 한 작품들을 남겼습니다. 그는 서커스 광대, 노인, 가난한 남녀 등을 통해 감정을 극대화했으며, 그들의 표정과 동작은 가슴 깊이 와닿는 슬픔을 전달합니다. 저는 피카소의 우울한 블루 작품을 볼수록 피카소는 공감능력이 정말 뛰어났을 거라는 생각이 강렬하게 들곤 합니다. 실제로 그 당시 피카소는 자신의 소중한 친구인 카를로스 카스헤마스가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장면을 보고 충격을 받게 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때부터 피카소는 우울과 절망 속에서 매일을 보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그가 마주하고 싶었던 것이 화려하고 행복한 장면은 아니었을 겁니다. 오히려 기쁨이 사라진 자기 자신을 투영할 수 있는 우울하고 절망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이었죠.

(왼) "Old beggar with a boy", 1903/ (오) "poor people on the seahore" , 1903

대표작 <Old Beggar with a Boy> (1903)와 <Poor People on the Seashore>(1903)는 그의 청색 시대를 대표하는 작품입니다. 작품 속 등장인물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허공을 응시하거나 절망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으며, 웅크린 자세와 함께 색채 또한 차갑고 어두운 푸른빛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애써 외면하고 싶었을 장면을 피카소는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응시한 채 그들의 삶을 캔버스 안에 또박또박 그려 넣었습니다.


PINK period


예술은 치유의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피카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블루 시리즈의 작품 속으로 점점 빛을 그려 넣기 시작하는데, 바로 '장밋빛 시기'의 작품들입니다. 피카소의 'Pink period 1905'라고 불리는 이 시기에 표현된 주제는 블루 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색채 면에서는 큰 변화를 맞이합니다.


Family of Saltimbanques, 1905


<Family of Saltimbanques> 작품을 보면, 연분홍 톤의 색감으로 표현된 사람들의 얼굴은 생기가 감돌고 인물의 배치와 포즈는 안정적으로 변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한두 명의 고독한 장면보다는 여러 명의 인물들을 배치하여 다채로운 색들로 각자 옷의 색이 개성 있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Acrobat and Young Harlequin, 1905

<Acrobat and Young Harlequin> 작품은 소년이 착용한 붉은색의 모자와 옷, 그리고 붉은 장미꽃덩굴이 눈에 띕니다. 무엇보다도 하늘색과 붉은색은 서로 보색관계에 있는 색들로 관람객의 시선을 잡는 강렬한 힘을 발휘합니다. 물체와 인물의 의복색이 갖고 있는 고유색을 다양하게 표현하기 시작하면서, 피카소의 강렬한 붉은 색은 그의 마음속에 찾아온 생명의 힘을 느끼게 하죠. (실제로 이 작품은 블루시기를 지나 막 장밋빛 시기로 들어가는 시점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The Watering Place", 1905-1906, gouache on tan-paper board,


결정적으로 페르비앙 올리비에라는 여성을 만나면서 삶에 사랑이 찾아오고 그의 작품 속에는 따스한 분홍톤의 색감이 급속도록 번지기 시작합니다. 특히, <The Watering Place> 작품은 말을 타고 있는 군중의 무리를 표현했는데 보기만 해도 자유롭고 편안함을 느끼게 되죠. 블루톤과 갈색톤과 섞여 자연스러우면서도 잔잔한 애수를 불러일으키는데, 하늘의 색감이 강물의 블루톤과 어우러져 위와 아래의 균형감각을 돋보입니다.



Boy with a Pipe, 1905


<Boy with a Pipe>의 작품은 확연하게 장밋빛 시대로 구분되는 작품으로 화려한 꽃다발의 묘사가 인상 깊습니다. 이 작품을 제작했던 피카소는 24살의 젊은이였고 파리에 생활하며 예술가로서의 힘든 삶을 지내야 했던 시기에서 그는 "P’tit Louis" 루이스라는 이름은 가진 한 어린 소년을 모델로 두었습니다.


블루 데님을 입고 두 입을 굳게 다문 어린 10대 소년의 모습.


실제로 루이스는 어린 나이에 생을 마감한 10대 소년이었는데, 소년의 머리에 왕관처럼 쓴 꽃관과 배경으로 표현된 꽃다발이 상징하는 것은 무엇일까? 를 한참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피카소가 그린 붉은 꽃관과 배경으로 표현된 꽃들은 어쩌면 예술과 인생에 관한 피카소의 관점을 서서히 드러내게 만드는 시작점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더욱 특별하다고 느꼈던 작품이었는데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작품이 실제로 2004년 소더비 경매에서 1억 400만 달라(144 million USD)에 낙찰되어서 유명세를 제대로 치렀다고 합니다. 당시에 이 금액은 사상 최고가였습니다.


잔혹미가 돋보이는 오묘한 아름다운 이 작품은 블루시기에게 장밋빛 시기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속해 있습니다.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예술의 별을 찾아다녔던 젊은 스페인 남자가 그린 소년의 작품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이유는 바로 "청춘" 때문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누구나 보내는 그 청춘이 살아있는 작품이라면 무려 1억 400만 달라라는 엄청난 금액의 낙찰가도 나쁘지 않을 수 있겠죠. 세월을 이기는 장사는 없으니까요.


피카소의 ‘시계를 찬 여인’(Femme a la Montre). /엑스 캡처

그렇게 혹독한 겨울을 맞이했던 피카소는 그 이후로 찾아오는 봄과 여름을 화려하게 누립니다. 바로 큐비즘으로 이어지는 시기인데, 이때부터 피카소의 전성기가 열리기 시작합니다. 얼마 전에 <Femme a la montre> 작품이 소더비경매에서 1829억 원에 낙찰됐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뛰어난 유머감각과 재미, 삶의 풍요가 깃든 큐비즘의 작품들을 보고 있으면 피카소는 분명 자신의 다채로운 삶을 위대한 작품으로 남겨놓았다는 걸 실감합니다. 장밋빛 시기 다음으로 찾아오는 피카소의 화려한 성공의 신화가 시작되는 시점의 그 이전 시기는 꼭 기억해 둘 만합니다. 지금 당신이 슬프다면, 고통스럽다면 피카소의 블루 시기의 작품을 감상해 보는 것도 큰 위로가 될 수 있으니까요. 그것은 신이 당신에게 주려는 축복의 시간이 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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