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 그 너머로
봄비가 내리는 3월. 3월의 첫날에는 다들 새로운 시작이라고 가는 문구점이나 백화점마다 사람들로 북적북적입니다. 문득, 내일 뜨는 태양이나 오늘 뜨는 태양은 똑같은 태양인데 우리는 그 태양에 왜 '시작'이라는 의미를 부여할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이야기를 시작해봅니다. 도대체 이렇게 의미를 부여하는 건 왜 그럴까요?
알타미라 동굴 벽화를 그리던 선사시대 사람들도 어쩌면 비슷한 마음이었을지 모릅니다. 매일 나가는 사냥의 성공을 기념하며 동굴 벽에 살찐 소와 고래를 그려 넣었던 그들의 그림은 주술적 기원을 넘어 후대에 자신들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했을 겁니다. 생존을 넘어선 종족의 보호 본능, 그리고 기억을 남기고 싶은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 말이죠. 이러한 욕망은 시간이 흐르며 다양한 형태로 발전했습니다. 이동 사회에서 정착 사회로, 씨족 사회에서 부족 사회로, 부족 사회에서 하나의 국가로. 역사의 흐름 속에서 기록의 방법도 진화했습니다. 알타미라 동굴에서 시작된 벽화가 르네상스 시대에는 웅장한 역사화로, 근대에는 초상화로 발전했습니다. 그런데 이름 있는 작품뿐만 아니라, 이름 없이 남겨진 일상 속 풍경들도 훌륭한 예술작품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역사가 거대하고 큰 부의 흐름에 맞춰 이를 중심으로 서술되어 왔다면, 그러한 역사의 이면에는 또 다른 삶이 분명히 존재했을 테니까요. 그 작품들을 중심으로 우리의 욕망을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1630년, 네덜란드의 화가 프란츠 할츠가 그린 <즐거운 술꾼>을 보면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초상화의 주인공 이름은 알 수 없지만, 붉게 달아오른 얼굴과 헤벌쭉 올라간 입꼬리에서 그의 기분 좋은 취기가 전해집니다.
400년 전 그려진 바로크 시대의 그림이지만, 술에 취해 기분 좋아진 사람의 모습은 오늘날과 다르지 않네요. 노란 의복과 배경 속에서 붉고 따뜻한 얼굴빛이 친근하게 다가오는 이 그림 앞에서는 저도 모르게 긴장이 풀리고 미소가 지어집니다. 마치 오래 알고 지낸 사람을 만난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또 다른 네덜란드 화가인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작품으로 가볼까요?
<우유 따르는 하녀>의 작품은 전체적으로 차분하면서도 따뜻한 파스텔 색감으로 이루어진 장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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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색과 베이지톤이 어우러져, 마치 따사로운 햇살이 부엌을 감싸는 듯한 포근한 분위기가 좋습니다. 그 안에서 유독 빛나는 청명한 울트라마린 블루의 앞치마는 화면의 중심을 부드럽게 강조하고 있죠. "만약, 앞치마가 붉은색이었다면 이 그림의 분위기는 어땠을까?"라는 상상을 해보면, 베르메르가 의도한 조용한 일상의 순간이 조금은 달라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 베르메르는 우유를 그릇에 조용히 따르는 소리가 부엌 가득 울릴 만큼, 이 장면이 고요하고 평화롭길 바랐던 게 아니었을까요?
저는 집에 머무는 시간을 무척 좋아합니다. 집순이거든요. 혼자 있을 때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하며 조용한 하루를 보낼 때가 많아요. 읽고 싶었던 책을 펼쳐보거나, 집안일을 하거나, 커피를 내리는 소소한 순간들이 참 좋습니다. 마치 베르메르의 <레이스를 뜨는 여인>처럼요. 가만히 집중하며 무언가에 몰두하는 시간이 주는 평온함을 좋아하죠. 그래서 제가 베르메르의 작품을 좋아하나 봅니다.
이 작품을 상·하로 나누어 보면 명료한 색채 대비 효과가 돋보입니다. 잔잔한 햇살이 비치는 윗부분과 빛에 따라 생기는 어두운 그림자의 톤이, 사물의 고유한 색감과 어우러져 한층 더 깊이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냅니다. 하단의 쿠션과 테이블 위에 펼쳐진 커버는 어두운 청록색과 푸르시안(Prussian) 블루 톤으로 표현되었고, 보색 대비 관계에 있는 붉은색 태슬(Tassel)은 작품 속의 따뜻한 포인트가 되어줍니다. 무엇보다 여주인공의 이마를 환하게 비추는 햇살이 인상적입니다. 그 빛이 단순히 그녀의 얼굴을 밝혀주는 것이 아니라, 지성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작품 속 그녀가 몰두하고 있는 뜨개질은 단순히 ‘여자들이 하는 일’로만 보이지 않습니다. 여인의 깊은 몰입감은 단순한 '여성의 일'이 아닌, 창조와 집중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죠.
이제는 베르메르가 살았던 마을로 가볼까요?
그는 네덜란드의 델프트(Delft)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생애 대부분을 그곳에서 보냈습니다. 베르메르의 풍경화는 정확한 수직과 수평이 강조된 안정적인 구도가 특징인데요. 옵스큐라 기법을 사용했다는 설이 있긴 하지만, 무엇보다도 넓게 펼쳐진 높은 하늘과 잔잔한 수평적 마을 풍경이 만들어내는 평온하고 서정적인 분위기가 인상적입니다. 그곳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햇살이 마치 그림 속에서 그대로 살아 숨 쉬는 것만 같아서 옆에서 마차 소리가 들릴 것 같아요.
그가 담아낸 네덜란드의 풍경화와 인물화는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그 시대 사람들의 이야기이자 감성이 스며든 역사적 기록의 가치를 갖고 있습니다. 작품의 수량이 많지는 않지만, 그 안에 담긴 조용하고도 깊은 시선 덕분에, 우리는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베르메르의 눈을 통해 17세기 살았던 사람들의 하루를 들여다볼 수 있죠. 그의 그림은 부자의 소장품이 되지 못했어도 네덜란드인들의 자부심이자, 그들의 소중한 역사와 가치를 고스란히 간직한 보물이 되었습니다.
인상주의 화가들이 그린 그림 속 주제는 왕이나 귀족들의 화려한 생활이 아닌, 우리 주변의 익숙한 일상 풍경이었습니다. 어느 집의 부엌, 활기찬 시내의 광장, 흥겨운 물랑루즈(Moulin Rouge), 센강변에서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까지 그들이 바라본 세상은 당시에 살아가는 현실과 가깝게 맞닿아 있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인상주의 작품 속에서 자연스럽게 빠져들고, 미술이 가진 특유의 감동과 매력을 느끼는 거 같습니다.
특히, 모네의 <해돋이>는 산업혁명으로 인해 변화해 가는 도시인들의 삶을 그의 독특한 화풍으로 담아낸 풍경화입니다. 노를 젓는 작은 배와 저 멀리 희미하게 피어오르는 공장의 연기가 묘한 대조를 이루는데, 부드럽게 퍼지는 태양의 빛이 그날 하루를 시작하는 도시인들의 모습을 상징합니다. 따뜻하면서도 서정적인, 하지만 어딘가 쓸쓸한 분위기까지 담겨 있죠.
이 작품은 프랑스로 막 건너온 젊은 모네가 세상에 내놓은 첫 번째 인상주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프랑스에 오기 전, 그는 영국의 낭만주의 화가 터너의 작품을 보고 깊은 감동을 받았고, 그 경험이 <해돋이>를 탄생시키는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 그림은 클로드 모네 인생에서 인상주의 화가로서의 신호탄을 알리는 시작점이 된 작품이었죠. 심지어 이 작품에서 바로 '인상주의(Impressionism)'라는 명칭이 유래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오래 전 부자들은 화가들에게 자신의 초상화를 멋지게 그려주길 원했고 또 그렇게 많은 예술작품을 소장했습니다. 그런데 자본의 힘이 들어간 장면 말고도 일상의 힘도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던 예술가들에게는 보여지는 것이 전부가 아닌 진짜 자기 삶의 일상적 삶을 중요한 필수적 요소라고 생각했던 거 같습니다. 지금도 일상을 그린 작품을 볼 때마다 두 다리를 땅에 디디고살아가게 만드는 현실적 감각을 갖게 되는 힘을 얻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매년마다 반복되는 3월도 우리는 의미를 담아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