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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으로 물들다, 모네

빛과 그림자 (Claude Monet)

by 미키

하늘빛 회색으로 흐린 날씨였던 오후, 몇 가지 이야기 소재가 생각나 종이에 끄적끄적 적어본 적이 있습니다. 자신의 이야기와 스스로 마주하는 순간은 인상주의 화가들을 떠오르게 합니다. 그중 '완벽한 사람은 어디에도 없고, 어쩌면 나의 단점 또한 나를 이루는 한 부분이다.’라는 깨달음을 전해주는 예술가. 저에겐 클로드 모네가 그렇습니다.



감각을 그리다.

"색"에 대한 혁명을 불러온 인상주의 화가들. 모네는 초기 인상주의 멤버들 중 한 명이었습니다. 당시 인상주의 화가들의 삶은 카메라의 발명 때문에 보이는 장면을 그대로 그리는 사실적 표현이 의미 없다는 생각을 했죠. 모더니즘이라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는 역사적 시간 속에서 인상주의는 새로운 화풍을 제시합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이들에게 던지는 귀족들과 평론가들의 차가운 시선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요?


당시 귀족들과 평론가들은 형태가 흐릿하다고 느끼는 작품에 거부감을 보였습니다. 인상주의 화가들의 빠른 붓질이 그들 눈에는 완성도가 떨어지고 뭔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것으로 보였던 거예요. 사실적 묘사와 균형감이 있는 구도를 중요하게 여겼던 평론가, 정확한 묘사만이 회화의 존재 이유가 아니라고 주장했던 인상주의 예술가의 가치관은 한 시대 안에서 어떻게 섞여서 살았을까요?



클로드 모네, ‘빛의 화가’


클로드 모네는 시간에 따라 달리 변하는 사물의 색을 인지하고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낮과 밤이라는 다른 시간, 유럽의 계절마다 다르게 보이는 성당의 미세하고도 세세한 색의 변화를 그림 속에 담아냅니다.

Claude Monet, '양산을 쓴 여인' (1875)



찰나의 빛이 만들어내는 분위기를 우선으로 표현하다 보니, 짧고 빠른 붓질이 실루엣만 남고 형태는 녹아내린 듯 하지만 풍부한 색감은 분위기 있는 풍경으로 완성되는 데에 큰 역할을 합니다. 그렇게 모네는 시간·날씨·계절·빛의 각도에 따라 달라지는 사물의 색을 극도로 관찰했고, 이를 회화로 증명해 내기 위해 무려 30점 이상에 달하는 〈루앙 대성당〉 연작을 탄생시켰습니다(1892~1894).



모네의 보물, 지베르니 정원


점차 명성을 얻은 모네는 프랑스에 정원을 매입해서 오랜 정성과 시간을 들여 인공 연못과 일본풍 다리를 만들었습니다. 다리가 있는 연못, 수련이 떠다니는 물길, 오랜 정성으로 가꾼 꽃들... 그렇게 아름답게 탄생한 지베르니 정원은 모네 예술의 중심 테마가 되었고, 모네는 하루종일 정원에 머물면서 그림을 그렸다고 합니다.


지베르니 정원 연못에 비치는 풍경

다채로운 청록색과 초록색 계열의 색들로 표현된 지베르니 정원을 짧은 붓터치로 매혹적으로 펼쳐내는 작품들.


매일 다르게 보이는 인상적 느낌을 혼신을 다해 화폭에 쏟아부었다는 생각이 들게 할 만큼 이 시기의 작품들은 제 영혼을 흡수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초록의 향연이라 할 만큼 자연의 소리가 눈으로 보이는 듯하고 작품 속의 빠른 붓터치는 마치 잔잔히 요동치는 물결의 진동처럼 느껴지기도 하죠.



실제로 뉴욕에서 바쁜 걸음으로 도시를 걷다가 점심시간에 잠시 들어갔던 모마 미술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마주했던 모네의 <수련> 작품 앞에서 몇 분간 가만히 서서 느꼈던 감동과 정서적 휴식은 그가 전하고 싶었던 예술의 힘이 아니었을까요. 그 강렬한 기억의 무의식 때문에 지금도 수련 작품을 찾아보곤 합니다.


최근에 본 수련 시리즈는 2021년 4월 고 이건희 회장님의 소장품으로 이뤄진 <어느 수집가의 초대> 전시에서였습니다.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이라는 작품이 한국에 있다는 점이 세간에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는데, 그 아스라한 풍경의 색채만큼이나 비밀스러운 작품으로 여겨져 단 한 번도 외부에 공개된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죠. (현재 이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에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클로드 모네 <수련이 있는 연못> 1917년~1920년 , 이건희 컬렉션 중 하나로 발표된 작품





모네의 또 다른 세계


모네는 빛과 색에 집착할 정도로 몰두하다가 말년에 백내장을 앓게 됩니다. 당시에는 치료될 수 없는 병이었기에 눈으로 보고 그리는 화가의 생명이 끝난다는 충격적인 사건이었을 겁니다.


놀랍게도 모네는 지금까지 표현한 풍경의 이미지와 다른 작품을 완성합니다. 그는 자신의 눈으로 보고 그리는 사실에 변함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백내장을 앓고 난 뒤의 수련 작품을 보면, 어두운 톤으로 이루어진 단색조로 변화합니다. 색채와 빛으로 전하는 시각적·감각적 충격을 다시 한번 보여주는데요. 모네는 “내 눈에 비치는 장면은 여전히 빛을 갖고 있다”라는 신념을 붓질로 표현해 낸 것인지도 모릅니다. 색을 분간하기 어려운 상태에서 그린 작품을 볼 때마다, 마치 그는 삶의 긍정과 부정을 모두 수용한 인물 같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며 장점과 단점을 온전하게 끌어안고, 때론 흐릿해 보이고, 때론 찬란해 보이기도 하는 ‘삶의 파편들’을 부정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살아가는 것처럼 말이죠.


Orangerie Museum


모네는 생을 마감하기 전, 그의 예술 세계를 담을 미술관에 대한 세 가지 유언을 전합니다. 사랑했던 지베르니 정원처럼 따스한 자연광이 실내로 스며들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벽면은 마치 물결처럼 부드러운 곡선으로 이어져야 하며, 마지막으로 흰색의 순수한 벽면이 그의 작품을 품어야 한다는 조건을 제시합니다. 이 세 가지 조건을 갖는 미술관에게 자신이 작품을 기증하겠다고 말하죠.


프랑스의 오랑주리 미술관(Orangerie Museum)이 모네의 마지막 꿈을 품게 되고, 그의 수련 시리즈는 그곳에서 영원한 안식처를 얻게 됩니다. 지금도 오랑주리 미술관의 우아한 곡선 벽면을 따라 펼쳐진 타원형 공간에는 몽파르나스의 수련 그림들이 자연광에 물들어 시간마다 다른 표정을 지어 보이는 것으로 유명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아직 미술관에 가보진 못했지만, 모네는 그의 작품을 찾는 이들에게 단순한 그림 감상을 넘어지베르니 정원의 푸른 연못가에 함께 서 있는 듯한 경험을 전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모네의 아름다운 수련 작품들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자신의 시선을 잃지 않고 용기 있게 나아가는 예술가의 삶을 보는 듯합니다. 개인적으로 모네가 아픈 눈으로 보이는 풍경을 자기답게 표현하는 힘과 변함없는 태도를 보인 것처럼 인생의 긍정과 부정의 모든 것들이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을 느끼게 하죠.


그렇게 빛과 그림자를 색으로 아름답게 표현하듯 자기의 장점과 단점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으로 성장한다면, 자기의 마음 그릇도 함께 커져가지 않을까요. 여러분에게 마음을 위로하는 작품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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