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기억, 색채의 희망: 마티스와 나의 대화
바다, 그 고요와 역동적 힘을 느끼게 하는 자연 속에 있으면 복잡한 마음이 파도와 함께 물밀려 씻겨 내려갑니다. 30여 년을 광안리 해변가 근처에서 살았기에 수시로 변하는 바다와 하늘의 다채로운 색감들은 익숙하게 보지만, 사실은 언제나 눈부시게 아름답습니다.
사실 광안리 바다 그 자체의 풍경은 30여 년간의 제 모습을 더듬어보게 하는데, 어린 시절부터 한번 새겨진 기억은 그 형태를 무너뜨리지 않고 고정되어 참 지루하게 느껴졌습니다. 기억과 비슷하게 바다도 수평선과 흘러넘치는 파도로 가득 채워진 형태가 변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고, 그래서 내 주변의 모든 것들이 정말 지루하다고 느껴졌던 그런 시절이 있었죠. 어릴 적의 제가 느꼈던 바다는 그랬습니다. 답답하고 지루해서 이 놈의 바다만 넘어가면 재밌는 새로운 세상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상상도 했습니다.
관람객들이 행복감과 즐거움을 느끼는 대부분의 예술작품들은 색감에서 그 감정이 결정됩니다. 그중에서도 보색대비로 이루어진 따뜻하고 아름다운 색감으로 가득한 마티스의 작품들은 우리에게 마티스가 행복한 인생을 살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품게 합니다. 제가 오늘 나누고 싶은 예술가는 20세기 미술의 거장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입니다. 마티스에게도 저와 비슷하게 남다른 바다의 기억이 있다고 전해지고 있어서, 그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었습니다.
마티스의 젊은 시절은 우여곡절로 가득했습니다. 법관의 길을 가야 했던 운명에서 돌연 화가의 길을 선택하자 아버지의 거센 비난이 쏟아졌고, 제1차, 제2차 세계대전을 겪는 등 우울하고 힘겨운 사건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티스가 아름답고 행복해 보이는 작업을 계속해온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가 마음속으로 품고 있는 희망을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이었죠.
마티스는 본래 법학과 출신의 청년이었습니다. 1889년, 22세였던 마티스는 맹장염으로 입원하게 되었고, 병실에서의 지루한 시간을 달래기 위해 어머니가 선물한 그림 도구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우연한 계기가 그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놓습니다. 그는 법률 공부를 접고 파리의 미술학교에 입학하기로 결심을 하게 된 거죠. 당연히 아버지는 크게 분노했고, 모든 대학 지원금을 끊고 생활비를 중단해 버렸습니다. 힘든 상황 속에서도 마티스는 미술의 길을 포기하지 않았고, 예술가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지만, 그 여정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습니다.
색채와 형태를 강조하여 즐거움과 긍정적인 감정을 표현했던 마티스는 자연의 조화와 평화를 전하고자 했습니다. 실제로 그의 작품 속의 조형 요소들은 희망과 행복을 연상시킵니다. 당시 사람들로부터 "이 전쟁의 와중에 어떻게 저런 행복한 그림을 그릴 수가 있지?"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마티스의 작품과 예술철학은 그가 희망과 행복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따뜻한 감성의 색감들로 가득찬 예술 작품들을 보여줍니다. 그는 어둠 속에서도 빛을 찾고자 했고, 그 빛을 자신의 예술로 드러내고자 했던 게 아닐까요..
세월이 흘러 40대에 마티스는 프랑스 남부 지중해 해안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1917년부터 1930년대까지, 그가 주로 머물렀던 니스 시기는 마티스에게 특별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로 그 시기의 작품들을 보면 여성과 바다를 주제로 다루는 파스텔 톤의 색감들이 마티스만의 행복한 감성을 잘 보여줍니다. 그가 머문 곳은 니스 해안가였고, 유럽에서 인기있는 휴양지였을 겁니다. 실제로 니스 해안에는 호텔들이 많았고, 마티스는 그 중의 한 곳에 머물면서 집중적으로 작품 활동을 했으니까요.
이 시기의 작품들은 창문을 통해 바라본 해안 풍경이 담겨진 구도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애메랄드 색과 차가운 푸른색의 다양한 계열로 표현된 바다, 붉은색과 보라색의 실내 장식들이 배경색과 보색관계를 이루면서 그 색들 사이의 날선 경계선을 부드럽게 이어주는 창문틀의 파스텔 톤으로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죠. 그래서인지 이 시기의 작품들은 마티스가 외부 세계의 아름다움과 내면의 평화를 어떻게 조화시켰는지 호기심을 갖게 합니다.
저는 마티스의 작품들 중 이 시기의 작품들을 무척 좋아합니다. 마티스의 니스 해안가의 작품들을 보고 있으면 다채로운 바다의 색감을 너무나 잘 표현했고, 시시각각 변하는 인상주의 예술적 철학과 가장 가깝게 맞닿아있는 풍경이 바로 바다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에 잠기곤 합니다.
삶이 얼마나 힘겨운지 아니면 얼마나 행복한지 상관없이, 앙리 마티스의 작품을 보면 내일의 미래를 품을 수 있는 희망을 느낄 수 있습니다. 실제로 마티스는 자신의 고통 속에서도 색채로 희망을 노래했기 때문에 지금의 우리에게 그 희망의 메시지를 색과 형태로 아름답게 전해지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당신에게도 마티스의 작품을 보면서 잠시나마 어제를 잊고 내일을 생각하는 현재의 따뜻함을 품어내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바다가 매일 새로운 파도를 보내듯, 우리의 삶도 매일 새로운 가능성으로 가득 차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