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정현 Nov 06. 2020

당신의 기억은 안녕하신가요?

 가장 어렸을 때의 기억은 무엇인가요?
 생애 초기 기억. 이것은 심리 상담에서 가장 빈번하게 나오는 질문 중 하나이다. 가장 어렸을 때 기억은 몇 살 때인가요? 어떤 기억인가요? 누구에 대한 기억인가요? 가능한 자세하게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분명 무슨 검사에서 이와 관련된 질문이 있었는데... 나도 어느 선생님으로부터 저 질문을 받았던 적이 있었는데... 언제 누구에게 저런 질문을 받았는지 자세히 기억이 나질 않는다. 기억에 대한 질문을 언제 받았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임상심리사가 새로운 심리 검사를 배우게 되면, 아동용 검사가 아닌 이상에야 그 첫 번째 피검자는 바로 나 자신이 된다. 본격적으로 검사 문항에 대해서 알게 되고, 이것이 무엇을 측정하는 검사인지 내용을 분석하게 되면 그 시점에서 나는 영원히 그 심리검사의 유효한 피검자가 될 수 없다. (우리는 이것을 '오염'되었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웩슬러 지능검사는 문항의 정답을 알게 되는 순간 마치 커닝 페이퍼를 옆에 둔 시험지가 아무것도 제대로 측정하지 못하는 것처럼 나는 나의 지능지수를 제대로 측정할 수 없으므로, 보통 본격적으로 검사를 배우기 전에 선배들이 먼저 후배들에게 검사를 해 준다. 전공 공부에서 손을 놓은 지 오래되어서, 이제 내가 제대로 할 줄 아는 검사는 몇 가지 되지 않지만... 내가 그동안 응답했던 심리검사 결과지들은 서재 한 구석에 차곡차곡 정리되어 있다. 지능, 정서, 인지, 기질, 발달... '나'라는 사람에 대한 여러 기록들.


 이야기가 잠깐 옆으로 샜는데, 어쨌거나 '생애 첫 기억'에 대한 질문을 처음 받은 건 10년 전쯤, 대학원의 누군가로부터였다.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마치 픽사의 영화 <인사이드 아웃>에서  내 기억 구슬 속에 있는 영상 장면을 다시 재생하는 것처럼, 나는 더듬더듬 그날의 기억을 풀어놓았다. 아마 4살 때였을 거예요. 나는 이모네 집에 있었는데... 그렇게 그날의 기억이 저장되어있는 영상 테이프를 재생하고 있는데 문득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그 영상 속에 '내 얼굴'이 있었다.

copyright © Disney 2015. Inside Out


 지금 다시 그날의 기억을 꺼내봐도 비슷하다. 이모네 집에 놀러 갔다가, 문에 설치해 놓은 실내용 그네를 타게 되었다. 지금도 비슷한 제품을 판매하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가정집 문에 압축봉을 가로로 고정해놓고, 거기에 그넷줄을 걸어 타는 실내용 그네였다. 신나게 그네를 타다가 어쩌다 보니 뒤로 넘어가 문지방에 머리를 부딪혔는데, 놀라서 내 뒤통수를 감싸 쥐는 엄마의 손에 끈적하게 피가 묻어났다.


 여기서 이상한 장면은 손바닥에 묻은 피를 바라보는 시선이다. 원래대로라면 내 기억 속 영상에서 내 얼굴은 보이지 않아야 한다. 내 눈으로 본 영상이니까. 기록자가 나 자신이니까. 그러나 나는 울고 있는 내 얼굴을 바라본다. 나는 바닥에 누워 울고 있고 엄마는 내 머리를 감싸 쥔다. 잠시 손을 떼서 내려다보니 찢어진 상처에서 나온 피가 묻어있다. 손바닥에 피가 묻어있는 걸 위에서 내려다보는 장면이 내가 기억하는 그림인데, 사실 나는 바닥에 누워 있었으므로 원래대로라면 피를 보고 깜짝 놀라는 엄마의 얼굴이나 혹은 엄마의 손등이 보여야 정상이다. 그러나 내 기억 속에는 우는 나의 얼굴과 엄마의 손바닥. 그 두 가지가 겹쳐 한 프레임에 담겨 있다. 장면은 바뀌어 나는 외할아버지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엄마와 함께 병원으로 간다. 카시트 따위는 없던 시절이었으므로, 아픈 나는 엄마의 무릎베개를 하고 뒷좌석에 누워 있다. 역시 나는 무릎에 누운 내 얼굴을 위에서 바라다본다.


 이 기억은 내 어린 시절에 대한 나의 첫 기억인데 내 기억이 아니다. 정말 내 기억이라면 따로 몰래카메라가 있던 게 아닌 이상 이렇게 내 얼굴을 바라볼 수가 없다. 그렇다면 이것은 누구의 기억인가? 누구의 기억을 내 기억으로 착각하고 있는가? 시선의 주인공이 누군지 생각해보면 금세 알 수 있다. 그렇다. 이것은 엄마의 기억이다.


 당신의 기억은 안녕하신가요? 무슨 얘기냐고요? 그러니까, 당신의 기억은 당신의 것일까요? 내 기억이 내 것이 아니면 누구 거냐고요?
 우리가 우리 것이라 믿는 기억들은 실은 이식된 것인지 모릅니다. 과거의 기억을 떠올려보세요. 내 기억과 내 기억이 아닌 것들이 복잡하게 뒤엉켜 있지 않나요? 내 기억이라는 것들이 TV에서 봤거나, 영화에서 스쳐갔거나, 책에서 읽었거나, 뉴스에서 접한 것들 아닌가요? 내 기억 가운데 몇 퍼센트나 온전히 나의 것일까요?
권석천, <사람에 대한 예의>


 아마도 이 기억의 생성과정은 이러했을 것이다. 어린 시절의 나에게 머리통이 찢어지는 경험은 분명 강렬한 것이었다. 우리의 뇌는, 특히 아동기의 뇌는 일상적이고 평범한 기억들을 굳이 장기기억창고에 저장해 두지 않는다. 매일 먹던 엄마 밥, 매일 가던 놀이터, 매일 만나던 친구... 분명 수백수십 번은 반복되어 머릿속 어딘가에 저장되어 있을 만도 한데, 우리는 6살 유치원에서 같은 반이었던 친구의 이름 한 글자도 기억하기 어렵다. 그보다는 생존에 직결되어 트라우마적인 공포 기억이 끝까지 살아남는다. 어렸을 때 기억이 별로 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당신이 부모의 돌봄에 기대어 평안하고 안온한 일상을 보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내 경우는 머리에서 피가 났다는 어떤 서술적인 기억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후에 그 증거를 반복해서 접하게 된다. 이모네 집에 놀러 갈 때마다 보이는 실내용 그네, 그리고 뒤통수에 숨어 있는 땜빵 같은 것들. 어린 시절에 엄마가 머리를 곱게 빗어 단장해줄 때마다 머리카락 속에 숨어있는 흉터를 만지작거리며 이날의 사건에 대해 수차례 얘기했던 것 같다. 몇 바늘을 꿰맸었다든지, 나중에 아빠가 화를 많이 냈었다든지, 이런 말들. 점차 무성 해지는 머리숱에 가려 그 흉터를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을 즈음에, 그리고 사촌언니와 오빠가 자라서 더 이상 거추장스러운 실내 장난감이 필요 없어졌을 때 즈음에야 그 사건에 대한 언급이 줄어들었다. 그러나 그동안 숱하게 반복적으로 들어왔던 '엄마 시점의 이야기'가 영상화되어 내 기억 속에 저장되었고, 나는 그것을 나의 첫 기억으로 간직하게 된다.


 지금 당신의 가장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려보라. 그것은 누구의 기억일까? 기억 속에 내 얼굴, 내 표정이 보인다면 그것은 당신의 진짜 기억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기억중추가 뇌 안에서 재생산해낸 기억이든, 누군가에 언어적 서술에 의해 이식된 기억이든, 오리지널에 가까운 원형을 유지하는 기억이 아닐 것이다. 원래 CCTV처럼 한 치의 오차 없이 선명하게 각인된 기억이란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법이다.


 페이스북이든, 인스타그램이든 혹은 꽤 오래전에 드나들기를 멈췄던 카카오스토리든, 내가 아이들의 성장 사진을 기록해왔던 SNS는 '과거의 오늘'이란 페이지를 운영한다. 사진 속의 아이들은 과거의 시간에 그대로 멈춰 있다. 이제 10대가 되어버린 첫째는 동생들만큼 어린 다섯 살 꼬마의 모습으로, 곧 학교에 갈 나이가 된 둘째는 아직 첫걸음도 못 뗀 젖먹이 아기의 모습으로 나를 반긴다. 2015년 11월. 셋째 아이는 아직 세포로도 존재하지 않았던 먼 과거의 일이다.



 과거의 사진과 동영상을 마주할 때마다 반가운 마음에 아이들과 함께 사진을 나눠 보지만 보지만, 때로는 이 영상들이 아이들의 기억을 마구 뒤섞어버리는 걸 발견하고 씁쓸해질 때가 있다. 요즘 아이들은 돌 무렵 첫걸음의 순간마저 생생하게 기억한다. 어딘지 불안하고 비틀거리지만 조심스레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 그것을 바라보는 떨리는 엄마의 눈빛. 마루 끝에서부터 예닐곱 걸음을 걸어와 종국에는 엄마에게 풀썩 안기고, 흥분한 엄마의 환호와 칭찬에 의기양양해하는 모습까지. 그날의 분위기, 목소리, 나의 표정... 모든 것은 다 핸드폰 동영상에 녹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유치원생이 되어서도 보고, 초등학생이 되어서도 보고, 몇 번이고 반복해서 보았던 그 동영상. 과연 그것을 나의 첫 기억이라 부를 수 있을까.


 생애 초기 기억이라는, 한 사람의 유년기 정서에 대한 많은 정보를 함축하고 있었던 그 질문은 이제 곧 심리검사지에서 없어지지 않을까. 우리의 유년 시절의 기억은 부모라는 사람에 의해 '녹화되고 편집되어' 완성된 형태로 대뇌 속 기억 구슬에 담긴다. 순수하게 내 기억인 줄만 알았던 어린 시절의 추억이었는데, 성인이 된 어느 날 구슬 속 기억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mp4 파일을 발견하게 된다. 언뜻 상상해보면 조금 섬뜩하기도 하지만,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일거수일투족이 기록되는, 그리고 무엇이 기록된 것이고 무엇이 기억된 것인지 알 수 없는, 수백 개의 성장 동영상을 간직한 우리 아이들의 미래이니까.

 처음으로 자신의 세계가 조작된 것임을 알고 트루먼 쇼의 스튜디오 카메라로 마을을 바라본 트루먼의 마음이 그렇지 않았을까? 적어도 이것만은 순수한 나의 기억인 줄 알았는데, 기록이었다는 걸 알게 된다면, 그때 아이들의 마음은 어떨까. 스마트폰이 상용화된 지 10여 년이 지난 지금, 내 기억 가운데 온전히 몇 퍼센트나 나의 기억인 지 의심하고 살아야 하는 일상이 현실이 되었다.


 자, 이제 이 글의 가장 첫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생애 초기 기억에 대한 질문이다. 당신의 가장 어렸을 때 기억은 무엇인가요? 몇 살 때인가요? 어떤 기억인가요? 누구에 대한 기억인가요? 그리고.... 혹시 당신의 기억은 안녕하신가요?

매거진의 이전글 오늘 운세는 어떤가요, 해바라기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