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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정현 Sep 23. 2022

오늘 운세는 어떤가요, 해바라기씨?

 계절의 변화를 느끼는 장소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매일 다섯 식구의 먹을거리를 사러 시장에 가는 나는 마트 매대에서 새로운 계절의 첫인사를 마주한다. 감자, 당근, 양파와 같이 사시사철 그대로 그 자리를 지키는 채소들을 지나 제철 채소 코너로 가면 봄, 여름 그리고 가을마다 나를 새롭게 반기는 얼굴들이 있다. 과일코너에 새콤달콤한 딸기가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하면 드디어 지겨운 겨울이 끝나고 봄이 왔다는 이야기고, 모양은 이상해도 맛은 누구보다 훌륭한 납작 복숭아가 보이기 시작하면 봄에게 안녕을 고하고 여름이 왔다는 소식이다. 가을을 앞두고 한동안은 싱그러운 초록색의 풋사과가 자주 보이더니 요즘 들어 조금 더 색이 발그레해진 햇사과가 보이기 시작했고, 스윽 반을 가르면 꿀처럼 달콤한 과육이 흘러내릴 것 같은 무화과도 진한 자줏빛 색깔을 뽐내며 과일 칸 한 구석에 자리 잡았다.


 그중 늦여름부터 마트에서 만날 수 있는 해바라기는 반가운 가을의 손님이다.


반가운 늦여름의 얼굴, 미스터 해바라기.


 폴란드의 슈퍼마켓에서는 '통'해바라기를 판다. 처음 마트에서 해바라기를 만났을 때 "해바라기를 이렇게 판다고?!?!" 하며 엄청 의아해했던 기억이 난다. 폴란드에 살기 전에는 플라스틱 봉지 속에 들어있던 가공된 해바라기씨만 보았을 뿐, 이런 원형의 해바라기 그대로의 모습은 생전 본 적이 없었다.


 내 얼굴보다 훨씬 커다랗고 안에는 씨가 빼곡하게 들어차 있는데, 과연 이것이 한때 꽃이었던 적이 있었던가 싶게 조금은 우악스러운 느낌도 든다. 이전까지 내가 만났던 실물 해바라기는 다 관상용 꽃이어서 그런지 마트에서 만나는 통 해바라기는 그냥 단순히 '크다'라는 말로만 표현하기에는 어딘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야말로 '거대'하다.


 이렇게 거대한 해바라기 꽃을 통째로 마트에서 파는 기간은 길지 않다. 하우스 재배를 하지 않는 식물이라 8월, 9월에만 짧게 만나볼 수 있다. (사실 9월 중순인 지금 이미 마트에서는 찾아보기 어렵고 온라인 슈퍼마켓에만 재고가 다소 남아있다.) 해바라기 꽃송이가 마트 채소코너에 보이기 시작한다면 드디어 여름의 절정은 지나갔다는 이야기다. 한국의 절기로 바꿔 생각하 자면 '말복' 즈음부터 이 해바라기 꽃을 만날 수 있다.


관상용 해바라기도 이때 즈음 활짝 만개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막내 교실 앞에 핀 (내게는 조금 더 익숙한) 해바라기.


 이제 이 해바라기를 어떻게 먹을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시판 해바라기씨, 그러니까 비닐봉지에 든 가공된 해바라기씨는 껍질째로 볶아서 짭조름하게 양념이 되어 있거나, 혹은 알맹이만 쏙쏙 빼먹을 수 있게 다 가공이 되어있다. (혹은 기특하고 달콤하게도 초콜릿 옷을 입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마트에서 이렇게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파는 통 해바라기는 일일이 손으로 씨를 뽑아 먹어야 한다. 꽃송이에서 씨를 뽑는 것까지는 그래도 어찌어찌할 수 있는데, 그다음에 도톰한 껍질을 까서 그 안에 있는 하얀 해바라기씨를 꺼내는 일은 꽤 어려운 일이다. 호박씨 까는 과정이랑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되는데, 손톱이나 이빨로 약간의 흠집을 내서, 그러나 또 속의 알맹이에는 손상이 가지 않도록 그 애매모호한 경계를 찾아 껍질을 해체해야 한다.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정말 노동집약적 아니 허무할 정도로 노동 소비적이다. 호박씨 까는 것보다 더 부질없는 노동이 해바라기씨 까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바쁘게 손을 놀려 보지만 껍질 속에서 나오는 알갱이는 '애걔..." 소리가 저절로 나올 정도로 작기 때문이다. 입에 넣어서 한두 번 오물거리다 보면 알맹이는 형체 없이 사라진다.


나쁜 씨앗 조리 존 글, 피트 오즈월드 그림. 김경희 옮김. 길벗어린이


 세상엔 많고 많은 씨앗이 있지만 그런 의미에서 조리 존의 그림책 '나쁜 씨앗'의 주인공이 다른 씨앗도 아니고 '해바라기씨'라는 건 꽤 의미심장하다. 반항미를 뿜 뿜 풍기는 귀여운 해바라기씨는 사실 처음부터 나쁜 씨앗은 아니었다.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는 것이 서툰 우리의 주인공은, 사실 옛날 옛적에는 아름다운 해바라기 꽃 위에서 형, 누나, 동생, 사촌들과 함께 오순도순 살아가는 착한 씨앗이었다. 그랬던 해바라기씨가 씨앗 타운의 온 동네 씨앗들이 두려워하는 나쁜 씨앗이 된 데에는 사실 가슴 아픈 사연이 있다.


Image copyright Pete Oswald, 2017, text copyright Jory John, 2017. Courtesy of HarperCollins.


  아름다운 해바라기 꽃에서 형제들과 함께 씨앗으로 평화롭게 살아가던 'Mr. 해바라기씨'는 엄마 꽃에서 떨어져 스낵 봉지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곳은 어둡고, 캄캄하고, 무서운 데다 결국 누군가의 입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되는 무시무시한 곳이었다. 이대로 꼼짝없이 먹혀 죽는구나 하고 눈을 질끈 감았던 그 순간,


 야구장 관객은 그를 먹지 않고, 껍질에 붙은 소금기만 쪽쪽 빨아먹은 채 입 밖으로 내뱉는다.


 야구장 벤치 아래에 있던 껌 조각에 달라붙은, 누군가의 입 속에서 씻을 수 없는 상흔을 입고 나온 Mr. 해바라기씨. 행복했던 과거를 뒤로 하고 그에게 트라우마가 되어버린 몇몇 어두운 기억들 때문에 그는 까칠하고, 삐딱하고, 공격적인 '나쁜 씨앗'이 되고 만다. 알맹이가 커다랗고 고소해서 버림받을 일 없는 호두, 피스타치오, 땅콩, 헤이즐넛 등등은 그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가족들과 끈끈하게 들러붙어 살았던 유년의 행복한 기억도, 꽃송이에서 우수수 떨어지던 그 공포스러운 기억도, 그리고 제대로 먹히지도 못한 채 알맹이째 버림받는 그 비참한 신세도. 이 모든 사건은 해바라기씨가 다름 아닌 작고 보잘것 없는 해바라기씨이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운명이다.


 해바라기꽃이 재미있어서 사긴 하지만 막상 커다란 한 송이를 다 먹어버리기는 힘들다. 신기해서 장바구니에 몇 번 넣어봤지만 이내 식탁 위의 천덕꾸러기가 되고 만다. 우리 가족도 이맘때 딱 한 번, 재미로 통 해바라기를 사 먹을 뿐 실제로 약밥을 만들거나 해서 해바라기씨가 요리 재료로 필요할 땐 껍질이 다 벗겨진 가공된 해바라기씨를 사 먹는다.


 그런데 올 여름, 해바라기씨에게 새로운 기능(?)이 생겼다. 몇년째 이렇게 통 해바라기씨를 사서 껍질을 까먹다 보니 재미있는 현상을 하나 발견하게 된 것인데, 그것은 모든 해바라기씨에 다 알맹이가 들어있지는 않다는 사실이다. 그 사실을 알고 나니, 그림책 속 삽화의 나쁜 씨앗도 속살을 한 번도 보여준 적이 없어서 어쩌면 속이 비어있는 해바라기씨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꽃송이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전체 통 해바라기씨 중에서 약 1/3 정도는 비어있는 해바라기씨앗이다. 꽃 머릿속에 콕 박혀있을 땐, 즉 겉으로 볼 때는 전혀 알 수 없지만 쏙 뽑아 올리는 순간 알아챌 수 있다. 엄지와 검지 사이에서 씨앗의 단단함이 느껴지지 않고 속에 공기만 들어있는 말랑말랑한 쿠션감이 느껴지면 그 해바라기 씨앗은 '꽝'이다. 애써 껍질을 벗겨봐도 속은 텅 비어있을 뿐이다.


 그런 반면, 하나의 겉껍질 속에 두 개의 해바라기 씨앗이 들어있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는 매우 드물지만 그래도 커다란 꽃 한 송이에 한 열개쯤은 발견되니 아주 없는 것만은 아니다. 고로 해바라기씨를 꺼내 들면 세 가지 경우의 수를 만날 수 있는데 1. 비어있거나 2. 한 개만 들어있거나 3. 더블로 들어있거나 하는 경우이다. 겉으로 다 똑같아 보이는 해바라기 씨앗에 이런 비밀이 숨어있다는 것을 알고는 그 뒤로 해바라기씨를 뽑아 먹는 것은 그날의 운세를 점치는 일종의 놀이가 되었다. 평범하게 알맹이가 하나만 들어있으면 그날의 운세는 보통, 혹시 알맹이 두 개가 들어있으면 운수 좋은 날,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으면 꽝.



 그렇게 해바라기씨가 새로운 쓰임을 얻게 되자, 예전에 비해 아이들이 해바라기꽃에 더 관심을 보이게 되었다. 그날의 운세를 점치며 하루에 한 개씩은 꼬박꼬박 까 먹고 있다. 개학 이후에는 아이들에게 새로운 루틴이 생겼는데, 아침에 학교가기 전에 해바라기씨앗을 하나 쏙 뽑아들고 껍질을 까서 운세를 점치며 이렇게 물어본다.


 "오늘의 운세는 어떤가요 해바라기씨?"


 호두도, 피스타치오도, 땅콩이며 헤이즐넛도 할 수 없는 운세를 점치는 능력. 오로지 해바라기씨에게만 물어볼 수 있는 이 재미있는 놀이를 'Mr. 해바라기씨'가 알게되었다면 어땠을까. 조금은 덜 상처받고 덜 삐뚤어져서 '착한 씨앗'이 되지 않았을까. 우리는 우리만이 할 수 있는 고유한 능력과 존재의미를 인정받을 때 한결 더 긍정적인 사람이 되니까.


그림책 속 나쁜 씨앗도 종국에는 조금은 착한 씨앗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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