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정현 Dec 07. 2020

꿈속의 당신은 마스크를 쓰고 있나요?



 간밤에 꿈을 꿨다. 꿈속의 나는 예전에 살던 동네의 재래시장을 배회하고 있었다.

 익숙하면서도 그리운 풍경들. 사람들이 바글거리는 시장 골목골목을 구경하다가, 나는 문득 입 주변의 허전함을 느꼈다. 아, 마스크! 마스크를 끼지 않고 거리로 나왔다. 순간 발가벗고 대중 앞에 선 것 같은 부끄러움과 시장의 인파가 공포의 대상으로 바뀌는 섬뜩함을 동시에 느꼈다. 왜 마스크를 까먹었지? 내 마스크는 어디에 있지? 마스크, 마스크를 구해야 했다.


 1년 만에 (꿈에서라도) 방문한 한국의 재래시장. 그러나 시장의 호떡과 떡볶이, 닭강정을 뒤로하고 나는 정신없이 약국을 찾아 헤맸다. 이상하게 방문하는 약국마다 영업을 하지 않았고, 겨우 문을 연 약국을 찾았나 싶었더니 마스크가 다 팔리고 없단다. 여덟 번째인가 방문한 약국에서야 겨우 일회용 마스크를 구할 수 있었는데, KF94 마스크가 만 원이 넘었다. 말도 안 되는 가격이라 생각하면서도(꿈이니까) 여기 아니면 마스크를 구할 수 있는 곳이 없어서 눈물을 머금고 비싼 마스크를 구입했다. 입과 코 주변이 갑갑하게 느껴지자, 비로소 안도감이 몰려왔다.


 어느 순간 꿈의 장면이 바뀌어, 나는 어린 시절부터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던 어느 책 대여점에 들어섰다. 이제 그 책 대여점은 실재하는 공간이 아니지만, 꿈이니까 의문을 제기하지 말기로 하자. 꿈속의 그곳은 오히려 리모델링을 하고 공간을 확장해서 동네 책 대여점보다는 도서관에 가까운 면모를 풍기고 있었다. 반갑고 설레는 마음을 가득 고 모국의 언어로 쓰인 책들을 마주했다. 그런데, 또 뭔가 허전하다. 이럴 수가... 나는 여전히 마스크를 끼지 않고 있었다.


 아까 분명 거금을 주고 마스크를 구입했는데 대체 그 마스크는 어디로 사라진 걸까. 그러나 꿈에서 물리적 항 연속성을 기대할 수는 없는 법이다. 꿈이라는 걸 자각하고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나는 그때 진지하게 황당했고, 또 심각하게 무서웠다. 게다가 여기는 밀폐된 실내 공간. 데스크에 앉아있는 대여점 직원에게 가서, 혹시 마스크를 구입할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편의점도 아니고, 약국도 아닌 책 대여점에서 마스크를 구입할 수 있을 리가. 여기서 빨리 빠져나가야 한다는 생각에 하얗고 묵직한 나무 문을 열고, 일단은 탁 트인 실외 공간으로 나왔다. 가지고 있던 아무 천 쪼가리로 황급히 입 주변을 가리다가 잠에서 깼다. 이불이 턱 끝까지 올라와 있었다.




 외국에 살게 되어 주변 환경이 바뀌더라도 적응 초창기의 내 꿈은 그 바뀐 환경을 따라가지 못한다.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외국인이 아무렇지도 않게 한국어를 하고, 프렌치 바게트를 팔아야 하는 동네 빵집에서 삼립호빵을 는 허무맹랑한 일이 꿈이라는 세계에서는 종종 벌어진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 이곳에서의 기억이 차곡차곡 뇌 저장소에 저장되어 어떤 임계점을 넘기면, 바뀐 현실이 꿈속에서도 그대로 반영된다. 꿈속의 캐릭터들이 영어를 하고, 그들에게 나도 영어로 답한다. 내가 매일 일상에서 보는 건물이나 풍경들이 세세한 디테일마저 그대로 꿈속의 세계로 들어온다. 언어를 비롯한 현실 세계의 시스템이 무의식의 영역인 꿈에까지 가 닿게 되면, 아 내가 어느 정도 이 곳 생활에 물들었구나 하고 깨닫게 된다.


 지난 몇 달 간의 꿈이 어땠는지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마스크를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이렇게 뚜렷하게 느껴지고 공포스러웠던 적은 처음이었다. 혹시 아무 옷가지도 거치지 않은 채 바깥을 돌아다니는 꿈을 꾼 적이 있는가. 때와 장소에 맞는 적절한 옷차림을 갖추지 않았을 때 우리는 꿈에서마저 부끄러움을 느낀다. 간밤의 꿈이 그랬다. 외출할 때 마땅히 내 얼굴을 가리고 있어야 할 마스크가 없다는 걸 자각하자, 무섭고 창피했다. 비일상적인 현실을 상징하던 마스크라는 물건이, 이렇게 오랫동안 함께하고 필요하게 될 줄 몰랐던 물건이, 현실을 넘어 꿈속 세계에서마저 필수품이 되었다.


 꿈에서 깨어나자, 처음엔 꿈이라는 것에 대해 안도했고(적어도 나는 바이러스에 노출되지 않았으니까), 그다음엔 서글퍼졌다. 꿈에서마저 이럴 일인가. 이렇게까지 잔인하고 현실적인 필요가 있었을까. 차라리 꿈이라는 걸 인식했다면, 나는 오히려 맨 얼굴로 마음껏 돌아다니는 자유를 만끽했을 텐데.


 나는 꿈에서마저 그러지 못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바르샤바의 가을 산책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