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정현 Nov 21. 2020

바르샤바의 가을 산책길

이토록 비현실적인 자연의 아름다움



 바르샤바 빌라누프 궁전에서 남쪽으로 300미터쯤 걸어가면 궁전 후원과 연결된 작은 호수가 나온다. 이 호숫길을 따라 잘 정비된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다. 이 길에는 자동차는 다닐 수 없고 사람, 자전거, 그리고 늘 항상 만날 수 있는 백조들이 있다. 올해 가을에는 매 주말마다 이 산책로를 따라 한 시간쯤 걸었다.



 코로나 락다운으로 집에만 있다 보면 잠시나마 가족들과 떨어져 숨통이 트일 시간이 필요했다. 좋아하는 노래를 스무 곡쯤 담아 플레이리스트를 만들고, 마스크를 쓰고 핸드폰과 이어폰만 단출하게 챙겨 집을 나선다. 잘 정비된 산책길이 논밭으로 바뀌는 포인트까지 걷다가, 다시 걸음을 되돌려 집으로 돌아오면 더도덜도말고 딱 한 시간이 걸렸다.



 이 곳의 겁 없는 백조는 보행길 한가운데로 나오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 동네에서 산책하다가 만나는 새가 비둘기도 참새도 아니고 백조라니. 폴란드답다. 거리로 위풍당당하게 나온 이 고고한 새를 신기하는 건 이방인인 나밖에 없다. 매 주말마다 만나지만 늘 만날 때마다 신기해서 사진으로 담아두는데, 이들을 보고 핸드폰 카메라를 꺼내는 사람은 내가 유일하다. 



 가을의 마법은 신기하다. 일상적으로 늘 걷던 공간을 설레게 만든다. 여름에도 스쳐 지나갔던 길인데, 여기가 예전엔 어땠더라. 길 가다 담쟁이덩굴이 예뻐서 찍고, 또 하늘이 예뻐서 사진에 담는다. 일주일을 버틸 힘을 얻기엔 사실 한 시간의 산책은 너무 짧다. 이 찰나의 감흥을 어떻게든 길게 가져가 보겠다며 핸드폰에 사진을 담고 또 담는다. 



도시에 사는 사람에게 자연이란 일부러 시간을 내야지만 닿을 수 있는 목적지다. 빼곡하게 들어찬 나무로부터 산의 기운을 받고, 시골길을 거닐며 땅의 기운과 흙냄새를 내 안에 가져온다.
신미경 저, <나의 최소 취향 이야기>


 바르샤바에서 가장 좋은 점이 뭐냐고 묻는다면, 도시에 살지만 자연을 가깝게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집에서 어느 방향으로 나가도 공원이 나온다. 자동차를 타고 10분 정도만 남쪽으로 달리면 숲을 만나러 갈 수 있다. 인공적인 건물이 없는 자연의 품으로 들어가는 게 어렵지 않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며 산책을 나왔는데, 황홀할 정도로 예쁜 가을 풍경을 보고 나니 함께 나누고 싶은 사람들이 생각났다. 다음날, 남편과 아이들을 데리고 같은 산책로에 다시 발을 디뎠다. 



앞서 걸어가는 식구들, 아이들의 올망졸망한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제의 풍경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또 다른 감정이 피어오른다. 

 가을의 마법조차 주지 못했던 또 다른 설렘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우나룸 노래방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