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적인 실패

실패의 과정을 통해 오늘 또 한 걸음 나아갑니다

by 주정현



2020년 가을, 브런치북 대상 프로젝트에 응모했고, 떨어졌다. 사실 별 기대를 안 했던 터라 크게 아쉽진 않았다. 워낙 경쟁률이 높은 공모전이고, 수백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거기에 당선된다는 건... 예비작가들에겐 뭐랄까 유니콘처럼 현실성이 없다. 물론 매년 꼬박꼬박 10명의 유니콘이 탄생하긴 하지만.


어쨌거나 브런치북 프로젝트를 핑계 삼아 그동안 썼던 글을 한 권의 브런치북으로 묶어보았다. 일주일에 한 편 이상씩 매주 글을 써 왔던지라 꽤 많은 글이 모였고, 그중에 스물일곱 편의 에세이가 하나의 제목 아래 묶였다. 분량 면에서는 장강명 작가가 <책 한번 써봅시다>에서 이야기했던 원고지 600매를 훌쩍 넘어선 셈이다.


같은 책에서 장강명 작가는 '작가'가 아니라 '저자'를 목표로 삼으라고 말한다. "제본 방식은 자유이고 전자문서 형태라도 좋지만, 보는 사람이 한 권의 책이라고 인정할 정도로 완결된 형태로 만들기 바란다. 그리고 무엇이든 반응을 들어보라. 주관적인 기준이기는 하지만, 이를 해낸 사람이라면 작가 지망생과 작가를 가르는 흐릿한 선을 넘어섰다고 자부해도 좋다고 나는 생각한다." 어쨌거나 브런치라는 플랫폼에 의지해서, 그리고 공모전 마감의 도움을 받아 그 흐릿한 기준선을 넘어섰다. 이제 반응을 볼 차례다. 그런데 브런치북 공모전 낙선, 혹은 브런치북 '좋아요'의 하트 개수는 내가 생각하는 제대로 된 반응은 아니다. 수천 권의 브런치북이 쏟아지던 와중에 과연 심사자가 내 책을 꼼꼼히 봤을까 의문스럽기도 했고, 일단 내 브런치북 완독률이 0에 수렴한다는 점에서도 이 의심은 합리적인 데이터에 의해 뒷받침되었다.


고민 끝에 투고를 한 번 해보기로 했다. 브런치북 대상 프로젝트의 결과가 발표되던 날 (수상자들에겐 결과 발표 전에 미리 출판사에서 연락이 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전혀 기대는 안 했지만) 역시나 예상했던 결과를 일단 눈으로 확인하고 투고 메일을 썼다. 어느 출판사에 투고 메일을 보내느냐 그것이 문제였다.


투고 및 출간 과정을 다룬 여러 글을 읽어보면, 아무리 소규모 출판사라도 다 읽어보지도 못할 분량의 꽤 많은 투고 메일을 받는다고 한다. 이 세상에 자신의 책을 출간하고 싶은 예비 저자는 많고, 클릭 한 번이면 이루어지는 이메일 발송은 너무 쉬워서 그런 걸까. 어느 한 블로거는 자신의 원고를 200개의 출판사에 동시 발송했다는 포스팅을 올려 나를 뜨악스럽게 만들기도 했는데, 내가 편집자라도 이런 몰상식한 예비 저자의 원고는 읽어보고 싶지 않을 것 같았다. 만에 하나라도 출간 계약까지 연결될 수 있으니 기왕이면 좋은 편집자를 만나고 싶었고, 무엇보다 내 이메일을 '읽씹'하는 출판사는 피하고 싶었다. 투고 메일을 보낸다는 건 내겐 나름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고, 그 용기에 진심으로 화답하는 사람을 찾아 나서야 할 터였다. 그렇다면 과연 누구에게 이메일을 보내야 할까?


지난 몇 년간의 내 독서이력이 이 과정에서 큰 도움이 되었다. 그동안 수백 권의 책을 읽으며 내 마음에 작은 울림을 주는 글을 만나면 저자 이름을 기억해두는 것뿐만 아니라 마지막 판권 페이지를 펼쳐서 출판사와 편집자, 그리고 이 출판사가 원고 투고를 받고 있는지 여부를 확인해왔다. (투고를 받지 않고 자체 기획으로만 출판을 하는 출판사도 꽤 많다. 이런 출판사에 투고 메일을 보내는 건 오히려 독이다.) 그러면서 내가 나중에 책을 출간하고자 한다면 이 사람에게 한 번 글을 봐달라고 부탁하고 싶다는 편집자가 한 명 선연히 떠올랐는데 , 그게 누구였는지 이 글에서는 비밀로 하자. 왜 그렇게 생각했냐고 묻는다면 매년 내가 꼽는 '올해의 베스트 10' 독서목록에 이 편집자가 작업한 책이 꼭 한 권씩은 껴 있었고, 오랜 시간 정말 좋은 작가들과 작업한 전문가이며, 대형 출판사에 속해있지 않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예비 저자의 글에도 큰 관심을 보일 것 같았다. 떨리는 마음으로 투고 메일을 썼다. 브런치북과 브런치 매거진, 그리고 블로그의 링크를 첨부하고, 책의 목차도 조금 수정해서 책의 기획안을 따로 한 장 썼다. 그리고 내가 왜 이 출판사에 투고하는지, 우리가 직접 만난 적은 없어도 그간 책을 통해 어떤 간접적인 인연을 쌓았는지 이메일에 조금(사실 쓸 내용이 더 많이 있었지만 그럼 너무 스토커나 덕후같이 보일 것 같아 조금만) 썼다. 편집자는 책으로 사람을 만나는 사람이니까, 적어도 나와 당신은 구면인 셈이라는 걸 어필했다.


이틀 후에 답장이 왔다. '소중한 원고를 투고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라는 제목의 이 메일에는 보통 원고 검토에 2주 정도에 시간이 소요되니 검토해보고 다시 회신을 주겠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2주 동안 조금 떨리고 긴장되는 마음으로, 매일 이메일함을 한 번씩 확인했다. 2주 하고도 하루 뒤에 답장이 왔다. 폴란드 생활에 대한 이야기는 독자층이 상당히 한정적일 것 같아 출간은 어렵겠다는 답변이었다.


그런데 이 거절의 메일에는 편집자의 아쉬운 마음과 격려, 위로가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그는 내가 투고한 브런치북에 실린 글뿐만 아니라 그간 브런치에 써온 여러 글들, 심지어 온라인 링크를 타고 월간지에 기고했던 글까지 하나하나 다 찾아 읽으며 글 속에 담긴 나를 읽어주었다. 나의 학문적 배경, 독서 이력, 문장력, 배움과 일에 대한 열정, 이런 것들을 하나하나 세세하게 짚어가며 내가 가진 예비 저자로서의 장점이 무엇인지 알려주었다. 글이 하나의 책으로 묶이기 위해서는, 하나의 뾰족한 테마를 잡아서 조금 더 밀도 있는 글이 완성되어야 한다고 부족한 점도 짚어주었다. 그리고 지금의 내가 쓸 수 있는 글이 무엇일지, 내가 가지고 있는 재료에서 어떤 책이 기획될 수 있을지 아이디어도 함께 적어주었다.


출판업계에서 일하는 전문가가 내가 그동안 쓴 글을 오랜 시간을 들여 읽고(브런치북만 해도 완독 시간이 2시간이 훌쩍 넘는다), 링크까지 타고 가서 빠짐없이 찾아 읽고, 또 그에 대해 이렇게 길고 정성스러운 피드백을 써 주다니. 투고 이메일을 보냈던 작은 용기가 큰 선물로 돌아온 것만 같았다. 사실 꽤 거금을 주고 출판 컨설팅을 의뢰했더라도 이런 퀄리티의 답변을 받을 수 있었을까. 결과는 조금 아쉬웠지만, 사실 결과만 놓고 보면 '실패'인 셈이지만 편집자가 짚어준 부족함에 나도 깊이 공감하고 있었기에 속상하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글이 한 권의 책으로 엮일 때 생각해봐야 할 점에 대해서 다시 한번 깊게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이 정도면 꽤, 성공적인 실패였다.


나름 열심히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왜 목표에 더 가까이 갈 수 없었을까. 이제 보니, 아주 중요한 것 하나가 빠졌다는 생각이 든다. 실패해보는 것, 정말 질릴 때까지 실패해보는 것. 넘어지고 회복하는 과정을 거듭하면서 목표가 더 명확해진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실패의 과정을 통해 막연한 열정이 구체성과 방향성을 갖춰간다는 사실도 미처 알지 못했다. 문학평론가 김미현 선생님이 하셨던 말씀처럼 '실패한다는 건 정확하다는 의미'다. 거기서부터가 비로소 진짜 준비의 시작이라는 걸, 이렇게 멀리 돌아와서 배운다.

전선영 저, <어쩌다 가방끈이 길어졌습니다만> 127쪽


실패의 과정을 통해 막연한 열정이 구체성과 방향성을 갖춰간다. 책을 출간하겠어! 작가가 될 거야!라고 외치는 나의 목소리가 허공의 메아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작은 알맹이와 살을 붙여서 땅으로 내려앉았다. 주섬주섬 주워서 다시 노트북 앞에 앉는다. 실패가 성공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나부터 제일 잘 알고 있다. 계속해서 꾸준히 쓰는 것. 넘어지고 회복하는 과정을 거듭하면서, 넘어질 때마다 생기는 이 귀한 알맹이들을 잘 다듬어서 언젠가는 보석으로 만들어야지.


꽤 성공적인 실패를 경험한 오늘, 실패했는데도 기분이 좋다.

매거진의 이전글백설기처럼 뽀얀 노트를 앞에 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