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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터가 사라진 여름방학

by 주정현


올여름, 아이들은 방학을 보내러 외갓집에 왔다.


내가 아홉 살부터 살던 이 동네는 서울 부도심의 아파트 단지로, 단지 내에는 18채의 아파트와 4개의 놀이터, 그리고 주변을 둘러싼 작은 공원이 있다. 아파트가 지어진 날짜와 내 생년이 같으니 만들어진지 35년쯤 된 오래된 아파트 단지인데, 그래서 요즘 서울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힘든 모래놀이터가 있었다. 놀이터는 많이 낡았다. 대부분의 놀이터는 아파트 뒤쪽 음지에 있어 늘 놀이터는 한산하고 모래밭엔 잡초가 무성했다.

그러나 올해는 그 빈약한 놀이터마저도 누릴 수가 없게 되었다. 여름을 앞두고 아파트 단지 내의 모든 놀이터가 교체 공사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놀이터 공사를 사흘 앞두고 시설물 교체공사 공지가 엘리베이터 앞에 붙었다. 그 누구의 의견수렴도 없이, 특히 어린이들과 어린이들을 키우는 어른들의 의견은 전혀 반영되지 않은 채 공지가 올라오고 철거가 시작되었다. 대체 '6월 말부터 8월의 마지막 날까지'라는 공사 날짜는 누구 머리에서 나온 아이디어일까.


어느새 7월, 여름방학이다. 이미 4단계 방역 정책으로 서울의 모든 초등학교는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하며 방학 아닌 방학을 시작한 셈이지만 이번 주부터는 '정말' 방학이 시작된다. 그러나 이 동네 아이들에게 이번 여름방학의 놀이터는 사라지고 말았다. 아파트 단지 내에 놀이터가 네 곳이나 있으니 순차적으로 한 곳씩 공사를 시작하면 그동안 아이들이 다른 놀이터를 이용할 수 있을 텐데, 무자비하게도 단지 내의 모든 놀이터가 동시에 공사를 시작했다. 가차 없는 짓이다. 아이들 방학을 앞두고 놀이터에는 출입금지 리본이 길게 둘러졌다. "공사 중에는 놀이터 이용이 전면 금지되오니, 어린이들이 놀이터에 접근하지 않도록 지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 누구의 제대로 된 설명도 듣지 못한 채 그저 통보만 있을 따름이었다.



그런데 모든 놀이기구를 철거하고 바닥에 타일을 몇 장 까는가 싶더니 지난 3주간 공사 현장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폭염 때문일까 아니면 공사가 지연되는 걸까. 아침 점심 저녁, 주중 주말 할 것 없이 시시때때로 놀이터 앞을 오가지만 나는 그동안 공사인부 한 명 트럭 한 대조차 만난 적이 없다. 이럴 거면 뭐하러 그렇게 일찍부터 공사를 시작한 걸까. 이 공사는 대체 누구를 위한 작업일까. 목적도 의미도 없어 보이는 빈 공사현장과 그 주변에 널브러진 쓰레기들을 보며 얼굴에 씁쓸한 표정이 번진다.


해마다 3월 15일부터 3월 31일을 국가적으로 '어린이 안전시설 특별 점검'기간으로 삼아 놀이터 등을 완전히 샅샅이 빠짐없이 점검하면 좋겠다. 지금은 지방자치단체별로 들쭉날쭉 검사를 하는 듯한데, 연례행사로 반드시 실시하도록 국가가 관리하는 것이다. 문제가 있으면 4월 내에 수리를 마치고, 필요하다면 새 단장도 해서 어린이날에 이용하는 데 불편이 없도록 해야 한다. 장애 어린이도 함께 놀 수 있는 시설을 만들어 가자. 어린이날을 기해 전국 놀이터 상황을 국가에서 파악하고, 부족한 놀이터를 만들고, 물 마실 곳과 화장실 등도 확보해서 정리하면 좋겠다. 어린이날, 국민이 그것을 검사하자.

김소영 저, <어린이라는 세계> 245쪽


<어린이라는 세계>에서 김소영 작가가 말한 것처럼, 차라리 3월에 공사가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억울한 심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아이들은 하루의 절반 넘는 시간을 학교에서 보내고 있을 테고, 날씨도 아직 추워서 놀이터에서 오랜 시간을 보낼 수 없는 계절이니 말이다. 아니면 날이 추워지는 늦가을은 어땠을까. 여름방학이 아니라 그나마 겨울방학이었다면. 겨울에 공사가 힘들어서 그렇다면 9월 개학 이후라도.


아쉬운 마음에 비슷한 일이 폴란드에서도 일어났다면 어땠을까 상상해보니 이내 고개가 절레절레 저어진다. 이것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조치라는 생각이 든다. 가장 목 좋은 관광지며 모든 공원 한가운데에 어김없이 놀이터가 있는 그 나라에서는 어린이며 어른이며 할 것 없이 모두가 놀이터에 진심이다. 심지어 놀이터를 가장 즐기기에 좋은 여름날에 저렇게 공사 공고를 낸다면? 함께 분노할 많은 어른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외국에 사는 내가, 그저 친정집에 여름방학을 보내러 왔을 뿐인 내가, 이 아파트의 주민도 뭣도 아닌 내가 그저 이곳에서 2021년의 여름을 아이들과 함께 보내게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이 공사 실태를 비판한다면 누군가 내게 '무슨 자격으로' 그럴 수 있냐고 손가락질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곳에서 한때 어린이였다. 아홉 살부터 이 동네에서 살았기 때문에, 내가 같은 장소에서 한때 어린이로 살았기 때문에, 그리고 이제 어른이 된 다음에야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서른 중반이 된 지금은 이 글을 쓸 수 있다.


아이를 낳고 키우기 좋은 세상을 만들어 달라고, 어린이 그리고 어린이와 함께하는 어른들의 소중한 일상을 배려해 달라고 목소리를 내 본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조경을 위한, 건축 허가를 위한, 민원 해결을 위한 공간일지 모르지만 이곳은 3년 만에 한국에서 여름방학을 보내게 된 열한 살의, 일곱 살의, 다섯 살의 누군가에겐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여름의 공간이기도 하다. 이미 잃어버린 시간과 공간을 이제 와서 되돌릴 수는 없겠지만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기 바라는 마음으로 그 공간의 추억을 빼앗지 말아 달라는 간곡한 부탁의 글을 쓴다.


우리가 어린이를 위해서 목소리를 내는 것은 어린이 스스로 그렇게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김소영 저, <어린이라는 세계> 2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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