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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정현 Jan 04. 2022

막내 생일날 써보는 사주 이야기


 5년 전 오늘, 셋째를 낳았다. 난산이었다. 


 둘째가 고작 만 13개월이었을 때 이전 출산으로부터 아직 회복되지 않은 몸으로 임신한 데다, 미취학 아동 두 명을 키우면서 몸에 많이 무리가 갔는지 임신 32주경에 조기 진통이 왔다. 자칫하면 미숙아를 출산할 위험이 있어서 의사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스물네 시간 중 스물세 시간을 누워서 생활했는데, 그러느라 두 달간 옴 몸의 근육이 죄다 사라져 정작 출산할 때 아이를 세상 밖으로 밀어낼 힘이 없었다. 자궁문이 모두 열린 채로, 그러니까 흔히들 10센티가 열렸다고 이야기하는 진행 백 퍼센트의 상황에서, 가장 진통의 정도가 극심하고 강렬했던 그 상태로 나는 아이를 밖으로 밀어내지 못하고 두 시간을 보냈다.  


 과다출혈과 여러 가지 건강상의 이슈가 있었지만, 우습게도 이 안타깝고 고생스러운 마음은 다음 날 아이의 이름을 짓기 위해 철학원에 다녀온 시부모님 덕분에 눈 녹듯이 사라졌다. 명리학자 말로는, 무엇보다도 날짜와 시간의 궁합이 좋다고, 아이의 탄생시가 오후 늦은 시간이 되어서 아주 좋은 사주라고 했다. 정작 출산한 당일에는 진통이 길어지면서 출산 시간을 애들 하원 시간에 맞추지 못했기 때문에 이 탄생시 덕분에 여러 가지로 마음을 졸였는데도(출산마저도 계획적으로 시간 맞춰해야 하는 셋째 엄마의 운명이란) 결과적으로 사주가 좋다고 하니 두 시간 더 고생한 것도, 진통하는 내내 큰 아이들 하원으로 맘고생을 했던 것도 다 좋은 일이 되었다. 




 새해고, 이맘때쯤 토정비결을 위시한 여러 신년운세를 보는 것을 즐겨하는지라 근래에 운세 어플을 하나 다운로드받았다. 토정비결을 보고 싶어서 여러 웹사이트를 들락날락하다가, 무료 웹사이트에서는 이지함 토정비결 원문대로 궤를 보여주는 곳을 찾을 수 없어 안타까워했는데, 우연히 대학 선배 SNS 계정에 그런 화면이 캡처되어 있어 출처를 물어보았다. (옛날에는 주부생활 12월호 부록에 보면 수식이 나와있어서 내 생년월일로 직접 계산해서 찾았는데 혹시 아시는 분?) 그녀는 웹페이지가 아니라 '점신'이라는 어플을 알려주었는데, 알고 보니 선배는 무려 그곳의 유료 회원이었다고. 


 기본적으로는 토정비결보다 사주 운세풀이를 더 전문적(?)으로 하는 곳이라 최근 가족들 사주를 넣어놓고 심심풀이로 보고 있다. 그런데 아이들 기질이라든지 성격, 좋아하는 것들을 척척 맞춰대서 '이거 MBTI보다 더 과학적인 것 같은데?' 하는 마음도 든다. 이를테면 첫째는 '성격이 느리고 굼떠서 주변 사람들이 답답할 수 있습니다.'라든지, 둘째는 '성질이 세서 주위 사람들이 진심을 오해할 수 있습니다'라든지. 답답한 마음과 오해하는 마음을 안고 사는 그들의 주변인으로서 이제껏 이렇게까지 공감되는 분석은 없었다. 정말 사주는 과학인 걸까. 


 개인적으로는 사주가 정말 과학이라고 믿으며 살고 싶다. (저 가톨릭 신자입니다만...) 20대 초반에는 친구들과 이대 앞 사주카페에 심심풀이로 자주 드나들었는데, 어쨌거나 사주는 어느 정도 정해진 통계적 공식이 있고 나는 꽤 괜찮은 사주를 타고난 편이라 어느 사주카페에 가든지 명리학자 선생님들이 앞으로 잘 살 거라고 사주 칭찬(?)을 듬뿍 해주었다. 그들의 그런 덕담을 실컷 듣고 오는 날이면 왠지 기분이 좋아져서 커피 한두 잔 값에 인생에 대한 긍정성을 획득하고 올 수 있었다. 스스로도 내 주변의 여러 일들이, 나 개인의 부단한 노력보다는 그냥 내가 운이 좋아서, 남들보다 타고난 복이 많아서 그렇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기 때문에 그저 감사하고 다행이고 앞으로도 그랬으면 하는 겸손한 마음으로 이 사주를 그대로 믿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스물세 살 때 자주 놀러 갔던 사주카페에서 만난 그 아저씨. 삼십 대 후반쯤 되면 내 인생에 대박이 올 거라 그랬는데, 드디어 해가 바뀌었으니 이제는 삼십 대 후반이 된 거 같은데 올 거라던 내 인생의 대박은 언제 오는 걸까. 결혼을 최대한 늦게 해야 좋다고 말했는데 아저씨 말 안 듣고 홀라당 결혼을 일찍 해서 오기로 했던 대박이 설마 취소된 건 아니겠지. 




 엄마의 고생으로 좋은 사주를 첫 생일선물로 받은 아들에게도, 그리고 다른 이들에게도 운이 술술 풀리는 한 해였으면 좋겠다. 노력하지 않아도 매사에 그저 운만 덕지덕지 달라붙는 요행을 바라는 게 아니라, 그저 열심히 마음 쓰고 부단히 정진했던 일에 배신당하지 않는 그런 한 해 말이다. 좋은 사주란 가만히 있어도 알아서 대박이 찾아오는 그런 운명이 아니라, 딱 하는 만큼 성실하게 꼬박꼬박 대가를 받을 수 있는 그런 인생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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