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되면 왠지 좀 허무한 느낌이 든다.
2021년에서 2022년으로 숫자가 바뀌었지만, 그냥 달력의 숫자만 바뀌었을 뿐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었다는 별다른 실감이 나지 않는다. 2022라는 숫자는 아직 낯설고, 나의 현재를 설명하는 숫자 같지 않다. 아마 한동안 일기장이나 영수증 따위에 날짜를 적어야 할 일이 생길 때마다 무의식 중에 2021이라는 숫자를 써 놓고 아차, 할지도 모른다. 아직 내 뇌는 과거에서 현재로 업데이트되지 않았다.
심지어 나는 작년 12월 31일까지 여행을 다녀왔기 때문에 어제와 오늘의 일상이 확연히 다른데도, 어제 아침에 일어났던 나라, 도시, 침대와 오늘 아침에 일어난 나라, 도시, 침대가 다른데도, 그런데도 '똑같은' 하루라고 느끼게 된다. 아주 오랜만에 국경을 넘나들었던 일도, 평소에는 없었던 밤 열두 시의 새해 카운트다운도, 단 하룻밤의 차이를 세상 뒤집어진 듯이 느끼게 할 수는 없었다.
사실 연도니 날짜니 하는 숫자들은 그냥 사람이 편하자고 정해놓은 기준일 뿐 어제와 오늘은 똑같은 하루인 게 맞다. 이 어색한 연속성을 굳이 마음으로 구별하려 하니 오히려 더 기분이 묘해지는 듯하다. 고작 하루 전일뿐인데 작년이라 부르기엔 너무 어색하고 애매한 거리감. 이 글을 쓰면서도 어제를 당연히 '올해'의 범주에 포함시켜야 할 것 같은데 고작 하루 차이로 그 날짜를 올해라 부르지 못하고, '작년'이라는 단어와 '어제'라는 단어 사이에서 12월 31일을 뭐라고 불러야 좋을지 몰라 살짝 헤맸다.
새해 당일보다는 오히려 '1월 1일'이라는 숫자를 기다리는 그 시간이 더 좋았다. 한 해가 가기 전에 만나고 싶었던 사람에게 연락하고, 작년 이맘때쯤 적어뒀던 목표와 버킷리스트를 확인하며 지난 한 해의 성취를 확인하고, 2022라는 낯선 숫자가 적힌 다이어리를 한 권 구매하고, 거리의 반짝이는 전구를 구경하며 쓸쓸하고도 설레는 정취를 느끼는 시간. 막상 그 오랜 기다림과 설렘 끝에 맞이한 1월 1일에는 당연하게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그저 그날이 그날 같은 일상의 연속일 뿐이라 무언가 단단했던 매듭이 살짝 느슨해진 느낌이 든다. 이렇게 또 한 시간의 뭉텅이를 다시 과거로 흘려보내는구나 하는 허무함과 함께.
그래도 새해를 새해답게 보내기 위해 1월 1일에만 할 수 있는 몇 가지 일들을 했다. 곱게 포장지에 싸여 있던 2022년의 새해 다이어리를 펼치고, 1월 1일이라는 날짜에 뭐라도 한 줄 적고, 달력을 슥슥 넘겨가며 가족들 생일마다 하트를 하나씩 그려 넣고, 내년 이맘때쯤 확인해 볼 새해 목표를 몇 줄 적었다. 올해를 어떤 한 해로 보내고 싶은지 생각하고 결심하고 정리하고, 매번 내가 몇 살이더라? 하고 까먹기 일수기 때문에 서른일곱이라는 어색한 숫자가 내 나이다 하고 다시 상기시켜주고, 누군가 아이들 나이를 묻거든 열둘, 여덟, 여섯이라고 대답해야 한다고, 홀수였던 숫자에 하나씩 더해 짝수를 만들어 본다.
오후에는 SNS 계정의 프로필 문구를 '조금' 바꿨다. 작년의 나와 올해의 나는 '조금' 달라졌으니까. 몇 가지 단어는 삭제하고, 몇 개의 문구는 조사를 조금 바꾸고, 이모티콘을 몇 개 추가하며 그렇게 새해의 나를 새롭게 단장했다.
저녁 무렵이 되자 어디선가 폭죽 소리가 들렸다. 펑, 펑, 터지는 폭죽 소리는 어제의 소리였어야 했다. 12월 31일 밤에 미처 다 터트리지 못한 남은 폭죽을 누군가 어디서 터뜨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니면 그 사람도 그저 어제와 똑같은 오늘의 일상을 보내고 있는 걸까. 달력의 숫자는 그저 숫자에 불과하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