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셋째가 다섯 살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5년 만에 처음으로 세 아이 모두가 풀타임으로 학교 및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비록 코로나로 등교를 못 하는 날이 꽤 많았지만요.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라고 육아에 손이 덜어지자 딱 그만큼의 에너지와 관심이 '나'를 향했습니다. 지금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경력을 어떻게 다시 이어볼까? 공부를 더 해볼까? 아니면 다른 분야의 일을 해보면 어떨까? 앞으로 십수 년 더 남은 육아와 병행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아직은 엄마품이 많이 필요한 아이들. 해외에 살고 있다는 제한. 그러나 '나'를 잃지 않고 싶다는 소망. 여러 가지 제약과 환경과 뒤엉켜 그와 관련된 고민과 생각들이 쌓였고, 그 엉킨 생각의 타래를 하나씩 풀어가며 틈틈이 제가 할 수 있는 아주 작은 일과 공부를 하며 시간을 쌓아 올렸습니다.
2021년은 어떻게 기억될까요? 지난 1년의 시간을 되돌아보면 역시 부쩍 자란 아이들만큼 흐뭇한 건 없습니다. 여전히 사진첩에는 제 사진보다 아이들 사진이 훨씬 더 많습니다. 서로 돌봐주고 아껴주고 사랑한 시간의 흔적들이 아이들의 얼굴에 고스란히 남아 있어 아이들의 사진은 언제 찍어도 제가 제일 좋아하는 사진들입니다.
그래도 지난 1년 동안 찍은 사진들을 훑어보니 아이들 사진만 빼곡하던 사진첩에 아이들 말고도 여러 가지 사진이 쌓였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공부하던 시간들. 틈틈이 읽은 책들. 매일 빼곡히 적어 내려 간 시들. 산책하며 여행하며 만난 풍경들.
얼마 전에 김수현 작가님이 쓰고 클레이하우스에서 출판한 <나에 대한 모든 기록>을 사서 나 자신에게 선물로 줬습니다. 김수현 작가님은 나 자신을 이해하고 더 나답게 살기 위해 10년 동안 매년 '기록의 날'을 정하고 연기를 써왔다고 합니다. 삼 남매 엄마인 저는 하루 온종일 나에게만 집중할 '기록의 날'을 만들기가 어려워 12월을 통째로 '기록의 달'로 정하고 하루 10분, 20분이라도 지난 1년을 반추하는 기록의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한 해를 되돌아볼 뿐인데 '나'라는 사람의 인생을 통째로 되돌아보는 느낌이에요.
"나는 어떤 사람이지?"
"나는 무엇을 해야 행복하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지?"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많이 던지며 하루하루를 살다 보니, 문득 이렇게 나를 고민하며 살아온 적이 드물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세상에 순응하기 위해, 혹은 불필요한 갈등을 피하기 위해 나는 나를 많이 속이며 살아온 것 같습니다. 사춘기, 흔히 말하는 질풍노도의 시기에 이런 고민을 한다고들 하지만 저는 청소년기에 사회와 어른들이 제게 투영한 거짓 욕망에 버무려져 '진짜 나'를 생각해보지 못한 것 같아요. 그래서 2021년의 마지막 한 주, 잘 쉬고 잘 먹고, 열심히 생각하며 때늦은 고민과 함께 한 해를 마무리해보려 합니다.
흘러가는 모든 것이 아쉽기만 한 당신에게, 삶을 기록하고 싶지만 그게 늘 어려운 당신에게 1년에 한 번쯤 삶을 기록하는 계기를 마련해주고 싶었다.
사랑한다는 건 그 대상을 알아가는 일이다. 이는 자신에게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나 자신의 삶에 애정을 갖고 제대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삶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그렇게 되면 비로소 자신을 이해할 수 있고 나아가 자신의 삶을 향해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