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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정현 Oct 06. 2020

마당이 넓은 초록집 유치원

  '초록집 유치원'은 실재하는 유치원의 이름은 아니다. 코로나 19로 인해 우리 집 미취학 아동 2명은 3월부터 아무런 기관에도 다니고 있지 않다. 대신에 집에서 유치원처럼 시간표를 정해두고 이것저것 여러 가지 활동을 한다. 선생님은 딱 한 명, 엄마 선생님이 있다. 2명밖에 없는 원아들의 공식 원복은 내복이다. 벌써 6개월째 접어든 홈스쿨링 생활. 아이들은 엄마와 함께 수업 재료를 꺼내오면서 '초록집 유치원 오픈합니다!'라고 외친다.


나름 시간표도 알차게 꾸린 초록집유치원


 마당이 넓은 덕분에 사실 유치원에서 하는 대부분의 활동을 집에서 해결할 수 있다. 단독주택이라 집에서 아무리 쿵쾅대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으니, 아침에는 신나는 노래를 크게 틀어놓고 율동을 하는 체조시간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날씨 좋은 날에는 바람이 솔솔 부는 발코니에 나가서 책을 읽거나 그림을 그린다. 바깥놀이 시간에는 가까운 공원이나 놀이터를 가기도 하지만, 집에서 수영을 하거나 트램펄린에서 뛰어놀기도 한다. 차고 진입로에서는 자전거를 탄다. 올봄까지만 해도 두 발 자전거를 타지 못했던 큰애는 셧다운 기간 동안 마당 안에서만 왔다 갔다 하며 자전거 타는 법을 배웠다. 나도 외출 자체가 금지되었던 봄에는 집 마당에서만 2.5킬로미터를 뛰었다. 마당이 넓은 덕분에 마당에서 별의 별것들을 다 하고 산다.


 

 아마 주재 생활이 끝난 다음에 제일 그리운 게 뭐냐고 묻는다면 첫째도 집, 둘째도 집, 셋째도 집일 것 같다. 아이들도 "나는 한국이 더 좋지만, 집은 폴란드가 더 좋아."라고 말한다. 그리고 한국에서도 아파트가 아니라 이렇게 마당이 넓은 집에서 살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한국에서 이렇게 큰 집에서 살려면 엄청 부자여야 해,라고 몇 번 이야기해줬더니 그다음부터는 "엄마 아빠는 한국에서는 돈이 없어서 아파트에 산다."라고 이야기한다. 엄청 틀린 말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맞는 말도 아닌 것 같아서.... 다음부터는 아이들 앞에서 말을 잘 가려서 해야겠구나 하고 반성했다.


 

 교외 지역으로 나가면 한국에서도 아마 단독주택에 살 수 있겠지만, 남편 직장과 아이들 학교를 생각하면 서울을 떠나기가 어렵다. 양가 부모님이 모두 서울에 살고 계시니 더 그렇다. 그렇다고 서울 한복판에서 이렇게 마당이 넓은 집을 구하려면... 로또 당첨이 되더라도 힘들다. 우리가 단독주택에 살면서 이렇게 만족하며 살 수 있는 것은 차로 15분 이내 거리에 남편의 회사, 큰애의 국제 학교, 대형 쇼핑몰과 종합병원까지 우리가 원하는 모든 시설이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도시의 편의와 시골의 전원생활이 모두 갖춰져 있는 곳. 이곳이 폴란드이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환경이다.


 그래도 사실 처음에 단독주택으로 집을 구할 땐 고민이 많았다. 아무래도 아파트에 비해서 신경 써야 할 게 더 많기 때문이다. 가을이면 낙엽도 쓸어야 하고, 겨울이면 눈도 치워야 하고, 봄이면 잡초도 뽑아야 하고(민들레 뽑기 편 참고), 여름에는 벌레도 많다. 쓰레기 버리는 것도 매번 일이고, 아파트에 비해 취약한 보안 시설도 가끔은 불안하다. 예전 글에도 썼지만 남편이 바르샤바로 향하는 공항에서 유현준 교수님의 <어디서 살 것인가>를 집어 들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뚝심 있게 단독주택을 고르지 못하고 슬그머니 편리함을 찾아서 아파트로 들어갔을지도 모른다. 사람은 모름지기 단독주택에서 살아야 한다고 부르짖는, 실제로는 아파트에 살고 계시는 유현준 교수님 덕분에 우리 가족은 넓은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에서 살게 되었다. 가끔 쏟아지는 일거리에 이 선택이 과연 옳았는가 망설여질 때도 있었지만, 올해 봄 코로나 19로 셧다운이 시작되자 우리 부부는 서로에게 하이파이브를 날렸다. 우리의 선택은 과연 옳았다고, 그간의 고생이 헛되지 않았다고.


우리 세대는 자연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지만 지금의 아이들은 다르다. 신혼부부들은 대부분 첫 번째 집으로 아파트를 선택한다. 그러니 요즘 아이들은 대부분 아파트에서 태어난다고 봐야 한다. 아파트에 마당이나 골목길이 없다. 이들은 마당 대신 거실에서 TV를 보고, 골목길 대신 복도에서 시간을 보낸다. 학교에 가면 교실에서만 지내고, 방과 후에는 상가에 있는 학원에 보내진다. 이동할 때도 봉고차에 실려 이동한다. 이들의 생활을 보면 24시간 중 거의 대부분을 실내 공간에서 보낸다. 우리나라 아이들의 삶의 공간에는 자연이 없다.
유현준 저, <어디서 살 것인가>, 33쪽

  

 올해 여름, 새로 부임한 주재원 가족은 모두 단독주택에 세를 얻어 집을 구했다. 코로나 시대에 맞춘 새로운 선택이었다. 예전에는 한국에서 이사 오시는 분들 중에 아파트에 집을 구하는 분들이 대다수였고, 단독주택에 사는 분들은 2할 정도밖에 안 되었던 것 같은데, 1년 새에 많은 것이 변했다. 기존에 아파트에서 살고 계시던 분들도 새로 단독주택을 얻어 이사 오시고, 우리 옆집에 사는 집주인도 원래는 주택은 세를 돌리고 본인들은 아파트에서 살고 있었는데 올해 봄에 세입자를 내보내고 본인들이 이사를 왔다.


 폴란드에 사는 동안, 최대한 '폴란드에서만 누릴 수 있는 것들'은 빠짐없이 경험해보고자 한다. 한국에서 아무 쓸모도 없을 것 같은 폴란드어를 열심히 공부하는 것도 그래서이고, 클래식 콘서트나 축구경기 같은 이곳에서만 경험해볼 수 있는 이벤트에도 부지런히 참석한다. 단독주택에서 사는 것도 한국에서는 하기 어려운 경험이니 이곳에서만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다. 그리고 단독주택에서 사는 동안, 주택에서만 해볼 수 있는 것들도 최대한 많이 해보려고 한다. 마당에서 바비큐를 하거나, 벽난로에 장작을 태워본다. 채소 텃밭을 가꾸거나, 꽃씨를 심고 가꾸는 일들도 주택에서만 할 수 있는 경험이다. 그런 경험을 통해서 식물을 키우는 것도 사람을 키우는 일만큼이나 보람차고 나의 일상을 충만하게 해주는 일이라는 걸 알았다. 한국에서 가져온 작은 씨앗들은 여름을 보내자 막내 키만큼이나 쑥쑥 자라서 키우는 재미가 있었다. 우리 집에서 가장 빠르게 자라나는 둘, 텃밭 채소와 막내를 나란히 세워놓고 사진을 찍고 보니 그렇게 보기에 예쁘고 사랑스러울 수 없었다. 초가을에 활짝 핀 봉숭아꽃을 으깨다가 손톱에 물을 들이는 건 얼마나 재미있던지. 한국에서 가져온 작은 씨앗들이 선사해준 한국의 맛과 멋 덕분에 고향에 대한 향수를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

 




 막내 낮잠시간에는 좋아하는 디저트와 커피를 가지고 마당으로 나간다. 이 집에서 생긴 또 하나의 루틴이다. 햇살과 바람을 느끼며 경치도 감상하고, 책도 읽고, 하루 중에 가장 꿀같이 달콤한 시간을 최대한 즐긴다.

 이때쯤 되면 초록집 유치원은 이미 하원 시간이다. 4학년 첫째도 이 시간쯤 집에 돌아온다. 마당에 앉아서 느긋한 마음으로 스쿨버스를 기다린다. 이 시간에는 아이들도 텔레비전을 보거나, 책을 읽거나, 종이접기를 하는 등 좋아하는 소일거리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 물론 엄마의 일상에는 따로 퇴근시간이 없지만, 아이들도 이 시간만큼은 엄마의 자유시간을 지켜줘야 한다는 우리끼리의 무언의 약속이 있다. 일단 엄마가 실내공간인 '집'에서 벗어나 '마당'으로 나갔기 때문이다. 물리적인 공간이 분리되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약간의 탈출이 가능하다.



 요즘은 마당에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는 게 느껴진다. 실상은 잔디밭에 낙엽이 발에 채일 정도로 굴러다녀 조만간 쓸긴 쓸어야겠군... 하고 째려보고 있지만, 지금은 휴식시간이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기도 한다. 선생님 모드에서도, 엄마 모드에서도, 주부 모드에서도 벗어나 지금은 그냥 '나'로 있는 시간. 일상 속에서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있게 해 준 우리 집이 고맙다.


 사실은 물리적으로 너무나 먼 폴란드라는 나라에 있는 집, 꼬박꼬박 월세를 내는 세 들어 사는 집, 그런데도 이 초록집은 우리집이라는 말이 어색하지가 않다. 신기한 일이다.


과거 아파트와 주택에서 몇 번 번갈아 가면서 살아 보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마음에 남는 추억은 모두 주택에 있을 때의 기억뿐이다. 아파트는 내 집 같다는 생각이 잘 들지 않는데, 그 이유는 아파트 건물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수십 채의 집이 모여 하나의 건물을 이루는 아파트는 나의 감정과 연동되지 않는다. 하지만 주택은 마당에서 여러 가지 추억을 쌓을 수 있는 과하지 않은 크기의 건물이기에 '내 집'이라는 생각이 든다.
유현준 저, <어디에 살 것인가>, 41쪽




 이제는 직장이면서 집이 되어버린 이 곳. 코로나 이후로 절대적이고 압도적으로 많은 시간을 보낸 장소. 오늘 아침도 아이들과 함께 학습 꾸러미를 꺼내오면서 함께 외쳐본다.

"초록집 유치원 오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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