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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정현 Jan 06. 2022

여행의 마지막 풍경

 연말에 스페인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여드레 간의 고된 여정을 마치고 바르샤바 쇼팽 공항으로 돌아왔다. 딩동. 익숙한 멜로디에 익숙한 톤. 안내 방송으로 'Szanowni Państwo(신사숙녀 여러분)'하는 진부한 안내멘트의 첫마디를 들으니 그동안 내 머리를 어지럽게 했던 스페인어의 지옥에서 벗어나 폴란드어의 연옥으로 돌아온 느낌이다. 물론 천국에 울려 퍼지는 언어는 한국어일 테지만.

  

 '내 나라'라고 부르기엔 어색하지만 '내 집'이라고 부르기엔 더 이상 어색하지 않은 폴란드로 돌아왔다. 2018년 겨울에 폴란드에 왔으니 어느새 폴란드에서 네 번째 새해를 맞이한다. 처음 이 공항에 도착했을 땐 모든 것이 낯설고 생경했는데 이제는 바르샤바 쇼팽 공항이 인천공항보다 더 익숙한 장소가 되었다. 코로나 규제가 많이 완화되었던 올해에는 이 공항에만 여섯 번을 방문했다. 왜 멀쩡한 게이트를 놔두고 멀리서 버스를 타고 활주로를 달려 건물로 이동해야 하는지, 비 오고 추운 날 굳이 미끄러운 철제 계단을 걸어와야 하는지, 같은 쉥겐 국가끼리 입국하는 마당에 입국심사대의 길은 왜 이리도 긴 지 여전히 알 수 없지만 "아, 진짜 쇼팽 공항답네." 하는 투덜거림을 안고 공항으로 들어온다. 사회적 거리두기 안내표지판은 왜 붙어 있는지 알 수 없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사람들과 두꺼운 패딩잠바 속에서 슬슬 품어져 나오는 땀냄새를 마스크 틈새로 맡고 있다 보면 내가 아는 그 공항에 왔다는 생각이 든다. 깔끔하고 멀쩡했던 바르셀로나 공항이나 인천 공항에서는 느껴볼 수 없는, 이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묘한 감각.


 짐을 찾고 나와 택시를 부른다. 새해 전날인 그믐날 밤이고 초저녁부터 폭죽 소리가 언뜻언뜻 들리는 겨울밤. 내일이 휴일이라 영업하는 택시가 몇 대 없다. 다섯 식구가 커다란 캐리어까지 실어가며 택시를 이용하려면 6인승 밴을 이용하는 게 맞지만 택시 정류장에는 일반 승용차밖에 없다. 운전석을 제외하고 빈자리는 4개밖에 없으니 택시 아저씨가 뭐라 뭐라 좌석이 부족하다고 설명한다. 어려운 단어는 폴란드어로, 쉬운 단어는 영어를 섞어가면서 말하는 그에게, 나도 쉬운 단어는 폴란드어로, 어려운 단어는 영어를 섞어가면서 설명한다. 막내를 내 무릎 위에 앉혀서 타겠다고 말하려는데 순간 폴란드어로 '무릎'이 뭐였더라? 하고 단어가 생각나지 않는다. 그 대신 쓸데없이 '골롱카 Golonka'라는 폴란드 전통요리가 생각났다. 돼지의 다리, 그러니까 무릎 연골 언저리를 푹 삶아 만든 한국의 족발과 비슷한 요리이다. 아, 골롱카가 무릎을 뜻하는 단어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왜 자꾸 골롱카밖에 생각이 안나지. 괜히 확실하지도 않은 단어를 잘못 썼다가 '아기는 내 족발에 앉히고 가겠어요.' 하는 식으로 오역되면 곤란하니까 그냥 영어로 'On my laps'라고 이야기하며 손짓 발짓을 섞었다. 다행히 알아듣는 눈치다. 나중에 집에 와서 찾아보니 '골렌 Goleń'이 정강이라는 뜻이다. 무릎은 '콜라노 Kolano'. 이러나저러나 골롱카는 아니었다. 잘못 말했으면 정말 큰일 날 뻔... 딱 이만큼의 생존 폴란드어로 잘 살아가는 내가 용하다.




 익숙한 골목길에 접어들자 '와, 집에 왔다'는 실감이 난다. 내가 '여행'을 떠올릴 때 늘 생각하는 마지막 풍경. 몇 년 전에는 처음 가보는 여행지처럼 너무나 낯설었던 풍경이지만 이제는 집이라는 실감이 나는 이곳 거리의 풍경. 오랜 여행이 끝나고 오랜만에 이 골목길의 풍경을 다시 접하고 나면. 그 처음의 순간과 일상의 익숙한 감각이 뒤섞여 적당히 낯설고 적당히 반가운 느낌이 든다. 이 풍경을 보는 순간 여행의 마지막 장면이 완성된다. 드디어 여행이 끝나고 '집'에 왔다.


 집. 어느 순간부터 내 집이 된 걸까. 2년 전에, 그러니까 폴란드에서 맞이하는 두 번째 새해에 잠시 한국에 다녀왔었다. 그때는 아직 폴란드에 살게 된 지 1년밖에 지나지 않았을 때라 폴란드가 내 집이라는 인식이 좀 덜 했는데, 그렇다고 한국 친정집이라든지 남이 세 들어 살고 있는 옛날의 우리 집이 정말 내 집이라는 인식도 없어서 기분이 묘했다. 그 겨울날, 아이들이랑 예전에 살던 아파트 단지 놀이터에서 한참을 놀다가 추우니까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느라 우편함 앞을 지나쳤는데, 큰애는 엄마가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에 달달 외우라고 시켰던 옛 아파트 동호수를 오묘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이제는 여기가 더 이상 우리 집이 아닌 거지?'하고 물었다. 나중에 우리가 한국으로 돌아오면 다시 우리 집이 될 거라고 얘기해줬지만, 아마 내가 느꼈던 그 거리감을 아이도 느꼈던 것 같다. 예전의 우리 집 대신에 외할머니 집에서 겨울방학을 보내고 다시 폴란드로 돌아오자 아이는 이렇게 말했다.


"하나의 여행을 끝내고 그다음 여행을 시작하는 느낌이야."


 낯선 나라에 산다는 건 그런 감각을 일상에서도 꾸준히 느끼며 살아가는 것이었으리라. 그러나 이번 여행이 끝나고 섣달 그믐날 집에 돌아왔을 때, 이번 귀가는 온전히 '집'에 돌아온 느낌을 주었다. 어쩌면 2년 가까운 시간 동안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다른 나라, 다른 공간에서 시간을 보낼 일 없이 이 집과 물아일체가 되어 콕 붙어살았기 때문일까. 이제는 여기가 정말 우리 집 같았다.


 "엄마, 이상하지. 예전에는 다른 나라에 갔다가 폴란드로 돌아오면 짧은 여행이 끝나고 아주 긴 여행이 다시 시작되는 기분이었는데, 이제는 여행이 끝나고 집에 돌아왔다는 생각이 들어."


 언제까지나 낯선 이방인으로 살 줄만 알았는데, 이제는 이곳이 '우리 동네', '우리 집'이라고 불러도 어색하지 않은 그런 공간이 되었다. 부쩍 줄어든 거리감. 폴란드 살이 첫 해에는 결코 알 수 없었던 감각과 감정들이다.


 주재원 임기 4년 중에 3년이 지나가고 마지막 한 해가 남았다. 이제는 지난 몇 년간의 추억과 기억들이 내 안에 남아 이곳을 '내 집'이라고 인식할 수 있게 한다. 어디에서든 눈을 감으면 쉽게 그려낼 수 있는 골목의 풍경, 거리의 간판들. 동네를 돌아다니며 산책하는 개들과 앞집 노부부의 얼굴. 음식과 생필품을 사러 다니는 노란 간판의 슈퍼마켓과 하염없이 걸었던 호숫가 산책길을, 이 모든 순간들을 이제 생생하게 그려낼 수 있다.


 이 오랜 여행, 아니, 이제는 여행이라 부르기엔 너무 길어진 인생의 한 시절을 폴란드에서 보내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 이곳의 생활을 떠올리면 어떤 느낌일까. 여행의 마지막 장면이 바르샤바 쇼팽 공항이 아니고 인천공항이 되면 너무 어색할까. 어쩌면 끝나지 않은 여행을 또다시 계속하고 있다고 느끼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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