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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정현 Mar 10. 2023

미술관에서 만난 초록색의 비밀


 3월의 첫 번째 화요일, 지인과 함께 바르샤바 국립 미술관에 다녀왔다. 작년 6월에 방문한 이후 9개월 만이다. 국립 미술관이라고 하더라도 미술관의 크기에 비해 소장품의 리스트는 비교적 단출한 편이다. 이웃한 유럽의 다른 나라들과 달리 폴란드의 미술관에는 볼만한 예술 작품이 없다고들 하는데, 근대 폴란드의 역사가 전쟁과 고난과 학살의 역사였고 전쟁 동안에 많은 문화재가 소실되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안타깝지만 높은 값어치가 있다고 알려진 예술 작품들이 남아있을 리 없다.


 아쉬운 마음을 숨길 수는 없지만 내가 사는 이 나라와 이 도시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미술관을 몇 번 방문하다 보니, 단출하다는 그 컬렉션 가운데서도 내 마음을 울리는 몇몇 작품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오랜만에 미술관에 다녀온 며칠 전의 경험이 아직까지도 기분 좋은 여운으로 남아있어서, 올해 봄에는 시내의 미술관을 더 자주 가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기억에 남는 작품들이 많이 있었지만, 미술관에 다녀온 날 저녁까지도 계속 내 마음에 맴돌았던 그림은 바로 이것, 독일의 초상화가인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케르스팅의 <수놓는 여인(1817)>이다.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케르스팅. 수놓는 여인. 1817년. 목판에 유채. 47.5x36.3cm. 바르샤바 국립 미술관 소장


  평온하고 아름다운 그림이다. 이 액자 앞에 가만히 서서 그림 속의 여인을 오랫동안 쳐다보고 있자니 왠지 아련하고 정겨운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 햇살이 가득한 이 방에는 열린 창문과 커튼 사이로 머리카락을 살며시 간지럽힐 만큼의 가벼운 봄바람이 불어올 것 같은 느낌이다. 최근에 신유진 작가의 에세이, <창문 너머 어렴풋이>를 읽었는데, 작가의 서문에 등장하는 남향 창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이런 모습일 것 같다.


 그 창은 내 방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입니다. 들판과 숲이 보이고, 나무가 있고 가끔은 고라니가 뛰어놀기도 합니다. 그곳에서는 계절의 달력이 넘어갑니다. 얼마 전에는 겨울을 찢었고요, 이제 봄이 걸렸습니다. 빛이 잘 들어오는 창입니다. 하오의 빛은 얼마나 강렬한지 커튼을 쳐도 박력 있게 창문을 넘어옵니다. (중략) 내 글이 방이라면..., 글자 가득한 방에 기억이 보이는 창 하나와 빛이 들어오는 창 하나를 내고 싶습니다. 그리고 거기, 창가에는 당신을 위한 편안한 의자를 가져다 놓을 겁니다.

신유진 저, <창문 너머 어렴풋이> (시간의 흐름, 2022) 중에서


 그림 속의 모델은, 케르스팅의 친구였던 화가 루이즈 자이들러라고 한다. 1) 그림 속 주인공의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그녀의 어깨에서부터 이어지는 곧은 팔과 가녀린 목선, 살짝 올라간 새끼손가락을 보면서, 그녀가 수를 놓는 행위에 아무런 동요 없이 집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실제 그녀는 그림을 그리는 화가이자 수를 놓는 사람일 뿐만 아니라 기타를 연주하는 음악가이기도 했을까. 분홍색 소파에 무심하게 걸쳐져 있는 기타에도 자꾸만 시선이 간다. 그녀의 방에 걸려있는 저 초상화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초상화의 인물이 내려다보는 바로 그 시점에 자이들러가 앉아 있는 것은 화가의 의도적인 연출이었을까 아니면 실제 장면이 그랬을 뿐일까. 그런데 케르스팅은 어떻게 저렇게 옷의 주름을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었지? 군더더기 없이 단순하고 소박한 가구들은 자이들러의 취향인 걸까. 자꾸만 그림 속의 주인공에게 질문을 던지게 되고 말을 걸게 되는, 그런 그림이었다.


 오랫동안 그녀를 쳐다보고 있자니 나는 그녀와 내가 어딘지 모르게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녀의 모습이 나와 닮았다기보다는(저는 저렇게 가녀리지 않아요...) 화가가 담아낸 저 순간의 모습이 내 일상의 한 부분을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 아이들이 모두 학교에 가고, 남편도 사무실로 출근하고 난 어느 오후에, 아무도 없는 빈 집 창가에 혼자 앉아 고요히 무언가를 열심히 쓰고 그리는 내 모습을 닮았다. 그림 속의 그녀와는 달리 나에게는 나만의 책상이 없지만, 나도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봄햇살이 좋아 자꾸 창틀에 기대에 무언가를 쓴다. 나는 따로 개인 책상을 가진 게 없어서 주로 창가에 노트북을 두고 글을 쓰는데, 대문을 바라보고 있는 창문이라 여기에서 글을 쓰고 있으면 집 앞을 지나가는 모든 존재들을 만날 수 있다. 동네 산책하는 강아지들, 우리 집 마당을 제집처럼 드나드는 길고양이들, 택배트럭, 함께 장을 보러 나가는 앞집 노부부 등등… 평일에 집에 혼자 있으면서 창문 앞에 앉아있는 나. 그런 나와 어쩐지 비슷한 모습에 애틋한 마음이 들어서 그림 속의 그녀를 한참 바라보다가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미술관에 다녀오고 난 후 카메라에 담긴 그림을 들여다보다가, 내가 케르스팅의 그림에서 나를 발견할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를 찾아냈다. 이 그림은 사실 이 방의 평온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그러나 실상을 알고 나면 섬뜩하게 느껴지는 초록색 벽지 때문에 유명한 그림인데, 이 그림을 유명하게 만든 자이들러의 방과 내가 머무는 집. 두 공간의 색깔이 놀랍도록 비슷했던 것이다. 4년 전부터 내가 매일을 보내는 집, 하루의 대부분을 머무는 공간. 이 두 공간의 색깔은 한때 셸레 그린, 혹은 패리스 그린이라고 불렸던 에메랄드빛 초록색이다.

그림 속 벽지의 색깔과 저희 집 외관의 색깔이 놀랍도록 비슷하지 않나요? 폴란드에서 이런 색깔의 집이 흔한 건 아닙니다.

 

  1775년, 산소를 처음 발견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스웨덴의 화학자 칼 빌헬름 셸레는 '셸레 그린'이라는 초록색 색소를 발견했다. 기존의 초록 안료로 쓰였던 녹청과 다르게 오랫동안 사용해도 변색되지 않고, 색소를 뽑아내기까지의 가공법이 간단해서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았는데, 18세기에 이르러 유럽에서는 이 에메랄드빛 초록색으로 실내를 장식하는 게 크게 유행했다고 한다. 특히 초록색에 축복의 의미를 부여하는 영국인들은 이 아름다운 초록색의 염료를 벽지나 가구뿐만 아니라 각종 옷이나 장신구에까지 광범위하게 사용했는데 '패리스 그린'이라는 독특한 이름에서 우리는 아름다운 패션의 도시 파리를 연상하게 되지만, 사실 이 초록색에는 무시무시한 비밀이 숨어 있다.


 그것은 셸레 그린의 주 성분이 바로 비소였다는 것. 이미 셸레 그린을 발명했던 칼 빌헬름 셸레는 비소의 독성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것이 제품화되는 것을 꺼려했으나 제조업자들은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오판했고, 실제로 이 초록색으로 실내 장식을 꾸민 사람들 중 상당수가 알 수 없는 두통과 복통에 시달렸다고 한다. 1850년대 영국 런던에서는 원인 불명의 질병으로 죽어간 사람들이 많았고, 특히 면역력이 약한 신생아들의 돌연사가 많았다고 한다. (태어나자마자 죽는 아기들이 부지기수로 많던 시대라 당시에는 아무도 크게 의심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나는 이 부분에서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생각나기도 했다.) 그러다가 1861년 영국의 과학자이자 의사인 윌리엄 프레이저가 이 초록색의 염료가 의문사의 원인일 것이라고 주장했고, 셸레 그린의 독성이 대중적으로 알려지게 되면서 사용량이 급감하였다. 이후로 1930년 이후에는 쥐약 및 살충제에 원료로 쓰이다가 1960년대에 이르러 사용이 금지되었는데, 다행히도 염료 기술이 발달한 현대에는 보다 안전한 염료를 가지고도 이런 녹색을 내는 게 가능해졌다고 한다. 2)


그림 출처. 좌) Liberal Dictionary 우) Wikipedia


 잔잔한 감동을 주었던 케르스팅의 그림은 그래서 예술가들 보다는 과학자들에게 더 많이 인용되고 소개되는 그림이다. 이번 글을 쓰면서 큰아이에게 "우리 집 외관이랑 정말 색깔이 똑같지 않아?" 하며 셸레 그린에 대해 조사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더니 아이는 화들짝 놀라며 "우리 집 페인트는 안전한 거 맞지요...?"라고 물어보았다. 우리 집은 1960년보다 더 이후에 지어졌으니 아마(?) 안전한 초록색일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아마도....?"라고 나도 잘 모르겠다는 식으로 답해주자 대답이 그게 뭐냐고 아이에게 한 소리 들었다. 엄마의 불확실하고 애매한 대답에 아이는 뭔가 미심쩍은 느낌이 들었던 듯 하지만, 안전하다고 인증되지 않으면 화장품도 먹거리도 곁에 두지 않는 세상에 살고 있지 않은가. 이렇게 생각하면 분명 우리가 사는 세상은 아주 조금씩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다가오는 금요일(3월 17일)은 초록색의 날, 성 파트리치오 축일(St. Patrick's Day)이다. 유럽에 살고 있다 보니 이날 옷이든 장신구든 초록색 아이템을 하나는 곁들이는 게 예의인데, 독성을 의심하지 않고 초록색 옷을 꺼내볼 수 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다음 주에 학교에 입고 갈 아이들의 초록옷을 미리 준비하면서(학교에 초록색 옷을 입고 오지 않은 사람은 친구들이 꼬집는다), 올해는 나도 초록초록하게 보내보겠다고 옷장을 뒤져본다. 어머, 그런데 초록색 옷이 하나도 없네. 옷장엔 온통 거무죽죽하고 회색빛의 옷들 뿐. 아마 나는 18세기 영국에 살았어도 패셔너블하고 상큼한 초록색과는 아주 먼 삶을 살고 있어서 독성에 노출되지 않은 채 살아남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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