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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정현 Oct 31. 2022

5살 아들과 함께 묘지를 산책했다

그리고 아들은 자신이 아는 '죽음'에 대해 이야기했다

 

 5살 막내가 다니는 한글학교에서 '가을'을 주제로 미술 작업을 할 예정이니 여러 가지 모양과 색깔의 낙엽을 주워 오라는 숙제를 주었다. 흔한 가을 시즌의 숙제이지만,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공원이 요즘 담장 공사로 일반인의 출입을 통제하는 바람에 집 근처에서 낙엽을 모아 올 만한 마땅한 장소가 떠오르지 않았다. 아이와 함께 대문 밖으로 나가 집 주변 골목을 서성였으나, 도로변의 낙엽은 행인들에 발에 밟혀 온전한 형태를 유지하지 못했고, 매연과 먼지가 덕지덕지 묻어 깨끗하지도 않았다. 정원에서 낙엽을 몇 가지 주워보았지만, 수종(種)이 다양하지 않고 잎사귀의 색깔이 다채롭지 않아서 많이 아쉬웠다.


 그러다가 문득 큰길 건너편에 있는 공동묘지가 떠올랐다. 집 앞에서 횡단보도만 하나 건너면 커다란 공동묘지가 있다. 17세기부터 있었던 이 유서 깊은 공동묘지에 관해서는 예전에도 브런치에 글을 쓴 적이 있는데, 나 혼자서 산책하는 길에는 그 앞에 들러 가끔 꽃도 사고, 가끔 마음이 동하면 묘지 안쪽까지 들어가 묘비도 구경하곤 하는 장소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아이와 함께 묘지에 들어간 적은 없었다. 이 나라에서는 동네 동사무소만큼이나 마을 어귀에서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장소가 공동묘지인지라 아이들과 묘지 앞을 지나친 적은 수없이 많지만, 그래도 왠지 '묘지'라는 장소가 주는 으스스함이 있달까. 딱히 연고 있는 친구나 친척이 이곳에 묻힌 것도 아니니 가족이 함께 묘지를 방문할 일은 없었고, 더군다나 아이를 데리고 들어간다고 생각하니 좀 조심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이날만큼은 아이와 함께 묘지공원 안까지 들어가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바로 낙엽 때문에. 공동묘지는 그 역사가 오래된 만큼, 그리고 묘지관리인에 의해 매년 잘 관리되는 만큼 오래된 아름드리나무들이 많았는데, 그 나무에서 떨어진 낙엽이 언뜻 밖에서 봐도 수북하니 정말 많았다. 나무 종류도 다양했고, 모두 다 사뿐히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기는 장소이다 보니 묘석 위에 올라간 낙엽들은 사람의 손때 하나 묻지 않고 매우 깨끗한 상태였다. 어쩌면 다양한 색깔과 종류의 낙엽을 구하기에 이보다 더 최적의 장소는 없지 않을까.


 "(공동묘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아들, 우리 저기 안에 들어가서 낙엽을 주워 올까?"

 "에? 저기 들어가도 되는 장소였어?"

 "응, 아무나 들어갈 수 있어. 엄마는 여러 번 들어가 봤어. 일단 담장 밖에서 어떤 곳인지 한 번 볼래?"



 공동묘지의 북쪽 담장은 어른 허리 정도 높이라 5살 아이도 까치발을 들면 내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때까지만 해도 아이와 함께 묘지에 들어가는 것에 대해 약간의 망설임이 있었다. 그동안 아이와 함께 공동묘지를 방문해본 적 없었기 때문에 십자가와 묘비와 묘석이 가득한 공간을 보고 혹시나 아이가 무서워하면 들어가지 말아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는데, 묘지 안을 들여다본 아이가 신나서 탄성을 질렀다.


 "우와! 여기 미로 같아! 나 들어가 볼래!"




 묘지를 보고 미로를 떠올리다니. 아이들은 정말 편견이 없구나. 피식 웃으며 조심스레 아들의 손을 잡고 묘비 안쪽으로 들어갔다. 묘지 관리인이 한쪽 구석에서 가지치기를 하고 있었고, 오늘 장례식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사제와 유족과 조문객들이 우리 옆으로 찬송가를 부르며 지나갔다. 조금은 엄숙하고 진지한 분위기에 눈이 동그래진 아들은 찬송가를 부르는 사람들을 한참 쳐다보았다. 아들도 여기가 단순한 미로공원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 같았다. 장레식에 참석한 사람들을 쳐다보던 아들이 내게 물었다.


 "엄마, 여기는 뭐 하는 곳이야?"

 "여기는 공동묘지야. 음, 그러니까... 죽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야."

 "죽은 사람들? 그럼 사람이 죽으면 여기로 오는 거야?"

 "응. 죽은 사람들은 여기에 묻히고, 그 사람들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찾아오는 곳이야. 저기 있는 사람들은 장례식을 하고 있는 거야. 얼마 전에 누군가가 돌아가셨나 봐. 그래서 여기에 묻히는 거야. 죽은 사람은 살아있는 사람들이랑 함께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죽은 이후에는 여기 묘지에 있어."


 내 답변에 아들은 무언가 떠올랐는지 이내 내게 이렇게 물었다. 


 "내 친구 릴라도 죽었는데. 그럼 릴라도 여기에 있어?"


 아들의 물음에, 그리고 잊고 있었던 그 이름에, 나는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순간 멍해졌다.

 



 릴라는 올해 1월에 교통사고로 사망한 아들의 학교 친구다. 작년에는 같은 반이었고, 올해는 옆 반이었던... 반짝반짝 빛나는 예쁜 금발머리를 가진 4살 소녀. 겨울 방학 중에 교장선생님의 이메일을 통해 부고를 접했다. 사진 속의 릴라의 얼굴이 너무 예쁘고 눈부셔서, 그래서 더 서글펐던 기억이 난다. 이메일을 받고 가슴이 철렁해서, 그리고 아직 어린 아들에게 이 소식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 몰라서 안절부절못했던 기억이 난다. 다음 주에 학교에 돌아가면 이제 릴라는 없어. 이건 전학을 간 것도 아니고, 이사를 간 것도 아니고, 잠시 여행을 간 것도 아니야. 이제 릴라는 만날 수 없어. 이 '죽음'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아들에게 전달할 수 있을까. 


 릴라는 '죽음'이라는 단어의 당사자가 되기엔 너무나 어린 나이였고, 그것은 아들을 포함한 같은 반 친구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어린아이들에게 죽음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것은 엄마에게도, 선생님에게도, 너무 어려운 과제였다. 학교 상담 선생님과, 담임선생님과, 유치부의 다른 보조선생님들이 한동안 아이들이 충분한 만큼의 애도와 추모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했고, 죽음이라는 주제에 대해서 의연하게, 담담하게, 너무 공포스럽지 않게, 그러나 솔직하게 설명할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였다. 아직 마음이 여리고 연약한 아이들 입장에서는 트라우마가 생길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충분한 대화가 필요한 이슈였지만, 상황과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는 데 한계가 있는 어린아이들이었기 때문에 과장하지 않고 자극적이지 않되 이 사고에 대해서 아이들이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을 해줄 수 있어야 했다. 부모로서 고민이 많은 시기였다. 


 그러나 그로부터 열 달이라는 시간이 지났고, 그 사이에 계절에 세 번이나 변했다. 아이는 한 학년 위로 진급하여 새로운 친구들과 새로운 선생님과 함께 새로운 교실에서 수업을 했고, 나는 솔직히 말하자면 어느 순간부터 릴라의 죽음을 잊은 채 살고 있었다. 그래서 아이에게 다소 낯설 수 있는 '죽음'이라는 주제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 그래서 아이가 오랜만에 릴라의 이름을 꺼냈을 때, 아이가 가장 가까이에서 경험한 너무나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나는 그 이름을 잊고 살고 있었는데, 너는 아니었구나. 매일 같은 교실에서 만나고, 매일 같은 놀이터에서 만나고, 매일 같이 점심을 먹던 친구의 죽음은 너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릴라는... 릴라도 어딘가에, 어느 묘지엔가 있을 거야. 그러나 여기는 아닐 거 같아. 폴란드에 묘지는 여기 말고도 여러 곳이 있거든."

 "그래? 아쉽다. 여름방학 전에는 릴라 사물함에 사진이랑 꽃이랑 편지랑 많이 붙어있었는데, 이제는 없어. 그런데 여기는 사진도 있고, 꽃도 있고... 릴라 사물함이랑 비슷해."

 "엄마도 여름방학식 날 릴라 사물함을 봤던 기억이 나. 하늘에 있는 릴라가 좋아할 수 있게 예쁜 그림이랑 꽃이 많이 붙어 있었는데... 이제는 학년이 올라가서 릴라 사물함이 더 이상 없겠구나."

 "응."

 "릴라가 많이 보고 싶어?" 

 "아니, 그렇진 않아. 릴라 말고도 다른 친구들이 많으니까. 3살 반일 때는 같은 반이어서 같이 놀았는데, 4살 반일 때는 옆반이라서 놀이터에서만 가끔 만났어."


 나만 가슴이 철렁했던 걸까. 릴라와 함께 했던 추억에 대해 이야기하는 아들의 말투라든가 표정이 너무 덤덤해서, 이 아이는 '죽음'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 건지 궁금해졌다. 5살 아들에게 그냥 이별과 죽음으로 인한 이별은 어떻게 다를까. 우주선을 타고 달나라에 가듯, 원하면 언제든 하늘나라로 가서 죽은 영혼을 만나고 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 아직은 산타할아버지와 이빨요정을 믿는 것처럼, 아이는 사후세계에 대한 막연한 판타지를 가지고 있는 건 아닐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아이와 함께 묘지를 거닐었다. 어느 묘비 앞에서 아들은 저기 나 같은 어린이가 있다고 손으로 사진을 가리켰고, 1994년에 출생해서 2000년에 유명을 달리한 6살 소년의 오브제가 보였다. 이토록 빽빽한 수백 개의 묘비 앞에서 또래 남자아이를 기가 막히게 찾아내다니. 오늘의 묘지 산책은 아들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을까. 


6살 미하우의 묘비. 어린아이들의 묘비는 볼 때마다 가슴 한편이 시리다. 




 그로부터 보름 후, 학교에서 돌아온 아들이 말했다. 


 "엄마, 나 오늘 학교에서 릴라의 장례식을 했어." 


 이건 또 무슨 말인가. 릴라의 장례식이라니. 학교 게시판을 들어가 보니 5살 유치원생 아이들이 교장선생님과, 담임선생님과 함께 릴라의 사진 앞에 조르르 모여 앉아 있는 사진이 있었다. 11월 1일, 죽은 영혼을 기억하는 날인 만성절을 앞두고 릴라의 '추모식'을 했다고 쓰여 있었다. 그렇다. 올해 만성절은 릴라가 죽은 후 처음으로 맞이하는 만성절이었다. 모든 성인의 날, 세상을 떠난 모든 영혼들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날. 가톨릭 국가인 폴란드의 공휴일이자, 거리보다 묘지에 사람이 더 가득한 만성절. 올해는 릴라의 부모님에게도, 릴라의 선생님에게도, 릴라를 알고 지냈던 모두에게 릴라의 죽음 이후 처음으로 맞이하는 만성절이었다. 5살 아들은 '장례식'과 '추모식'의 개념을 헷갈려했고, 2주 전 묘지에서 만났던 찬송가를 부르던 사람들과 비슷한 일을 오늘 학교에서 했다고 했다. 릴라의 사진을 앞에 두고, 우리가 기억하는 릴라에 대한 추억의 조각을 하나씩 나누고, 그리고 릴라는 책을 좋아하는 아이였기 때문에 릴라가 좋아하는 그림책을 함께 읽었다고 했다. 교장선생님을 비롯해서 학교 유치부의 모든 선생님이 모였고, 새로 입학해서 릴라를 모르는 아이들에게 릴라를 기억하는 아이들이 릴라가 어떤 아이였는지 설명해주는 시간을 가졌다고 했다. 문득 영화 <코코> 생각이 났다. 우리가 사후 세계에 있는 죽은 영혼을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은 그 영혼을 '기억'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기억을 나누고, 그들의 이름을 부르고, 함께 있었던 시간을 잊지 않는 것이었다. 아들이 릴라를 오래 기억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일은 만성절이다. 아들과 묘지를 산책했던 10월 초에 이 글의 초고를 썼고, 만성절까지 이어진 열흘 간의 방학 동안 틈틈이 글을 손보았다. 세상을 떠난 릴라의 영혼을 위해서, 그리고 릴라의 부모님을 위해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글을 썼다. 자식을 잃은 그 해에 처음으로 다가온 만성절이 릴라의 가족에게 어떻게 다가올지, 나는 그 마음을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만성절 즈음해서 글을 발행할 생각으로 문장을 덧대던 와중에, 너무나 많은 아이들의 죽음을 접했다. 꽃 같은 젊은이들을 생을 달리했다. 그들 모두 하나하나 부모에게는 사랑과 눈물로 키운 아이들일 텐데. 얼마나 많은 이야기와 추억이 그들의 시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을까. 내 마음이 이리고 황망하고 참담한데 귀한 자식을 어이없이 보낸 가족 분들의 아픔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너무나도 비통하고 슬픈 주말을 보내고, 애도하는 마음과 기도하는 마음을 담아 글을 마무리한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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